봄을 기다리는 마음

by 여행하는가족


봄을 기다리는 마음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라던데 요즘 나는 꽃만 보면 사진이 찍고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된 지 몇 년 됐다. 집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식물들을 사다 키우기도 했다. 집안 곳곳에 놓인 화분, 그 작다면 작은 세상에서 생명이 움트고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 이런 게 바로 자연이 주는 기쁨이로구나, 깨닫기도 했다.


사지 않겠다는 결심

하지만 두바이로 이사를 오면서는 집에 식물을 들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떠날 날을 미리 받아 들고 도착한 곳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떠올려 보자면, 나는 술래에게 잡힐까 봐 지레 겁을 먹은 채 선두에 선 용감한 친구의 뒤에 숨어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던 아이였다. 앞선 친구가 술래의 등을 탁 치는 순간, 나도 냅다 뒤돌아 원래의 자리로 뛰어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술래에게 잡히는 당황스러운 사태를 맞이하지 않도록 놀이를 하는 내내 나의 몸과 마음은 어정쩡한 긴장 상태에 있었다. 어쩌면 나는, 두바이에서의 삶도 이쪽도 아니요 저쪽도 아닌, 서울과 두바이 양쪽에 한 발씩만을 디딘 불안정한 자세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언제라도 뒤돌아 떠날 준비를 하고 왔으면서도 내가 왜 그랬을까? 이 도시에 평생 뿌리내리고 살 것도 아닌데 도대체 내가 왜 그랬던 걸까?


그런데 샀습니다

두바이에서 맞이한 첫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우리 가족은 화원을 방문했다. 안 그래도 두바이 스타일로 큼직하고 허여멀건한 집에 화초 하나 없으니 썰렁하기 그지없어 작은 화분 한두 개 만이라도 사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랬던 것이 견물생심이라고, 화원을 둘러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 결국에는 트럭을 불러와야 할 만큼 많은 식물을 사고 말았다. 값을 치른 후 화분들이 우리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했던가. 두바이 생활 이제 고작 이 년 남았는데 왜 나는 열 개도 넘는 화분을 샀을까? 게다가 그중 반 이상은 남편의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커다란 나무들인데,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식물집사의 희로애락

두바이의 여름은 사람뿐 아니라 식물에게도 가혹하다. 식물이 죽어나가지 않도록 나는 여름이 찾아오면 더 부지런히 화분에 물을 주고 정성을 쏟았다. 그 덕분인지 우리 집 초록이들은 극한의 계절을 이겨내고 어느덧 우리 가족과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식물을 키우노라니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것들이 인간의 희로애락을 쥐락펴락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렇게 변한 잎들을 땅바닥에 연거푸 떨어뜨리며 나를 절망에 휩싸이게 하던 나무가 어느 날은 금방이라도 옹알이를 할 것처럼 작고 귀여운 연둣빛 잎을 틔워 내며 나 아직 살아있노라 외친다. 그러면 나의 마음은 언제 절망적이었냐는 듯 기쁨에 휩싸인다. 사람이 잠든 밤에도 식물들은 결코 잠드는 법이 없다. 밤사이 준비한 꽃망울을 아침이 밝자마자 터뜨리는 통에 나의 마음은 다시 한번 환희로 가득 차고 만다.


한 번은 발코니 볕 좋은 곳에 내어 둔 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도 했다. 사람이 근처로만 가려해도 후다닥 도망가던 녀석들이 코앞, 아니, 부리 앞까지 다가가도 꼼짝도 않고 제 새끼를 품는 모습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그즈음 우리 가족의 낙은 매일 자라나는 아기 새들과 그들을 키워내는 부모 새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눈도 못 뜨고 꼬물대던 아기 새들이 제 힘으로 날갯짓을 해 둥지를 떠나던 날에는 그 조그만 녀석들이 장해서, 그리고 부모 새의 마음으로 나를 키웠을 내 부모의 젊은 시절이 그려져서 눈물을 훌쩍이기도 했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이런 경험도 모두 다, 무엇에 홀린 듯 맞아들인 식물들 덕분이었다.


한 번은 발코니 볕 좋은 곳에 내어 둔 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도 했다/ 부모 새들은 아기 새들의 첫 비행을 조용히, 그리고 끈기 있게 응원했다. 오른쪽이 아기 새


봄의 의미

언젠가 봄을 앞두고 '지식을 만드는 지식'에서 출간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수필집을 읽은 적이 있다. 일본 근대 문예로서의 '하이쿠'라는 말을 만든,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 문학가인 시키는 나쓰메 소세키와도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고 한다. 『마사오카 시키 수필선』에 담긴 글들은 짧지만 강렬하다. 지병으로 인해 36세에 요절한 작가가 말년에 병상에 누워 쓴 글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자신이 곧 이승을 떠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이의 생각이 담겨 있어 그런지 읽는 내내 주변의 사람과 사물을 더 진지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책에 담긴 글 중에, 이제는 거동마저 불편해 매일 누워 지내는 시키가 활짝 피어났다가 지는 봄꽃을 바라보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봄을 노래한 작품이 있다.


봄의 여신과/ 작별이 서글퍼라/

오는 봄날에/ 다시는 못 볼 테지/ 내가 없을 터인데


하얀 붓꽃이/ 뽀얗게 피어올라/

나의 눈에는/ 올해뿐인 봄날이/ 저 멀리 가려 하네


병이 든 나를/ 달래어 주려는 듯/

활짝 피어난/ 모란 꽃송이 보니/ 절로 애달프구나


이 세상이란/ 변하는 줄 알지만/

내 사랑하는/ 황매화나무 꽃이/ 다 떨어져 버렸네


멀어져 가는/ 봄날의 추억으로/

너울거리는/ 기다란 등꽃 송이/ 그림 그려 봤으면


달맞이꽃 시렁을/ 짜 올리려 하여도/

오는 가을을/ 기다리지 못하는/ 나의 목숨이런가


-1901. 5. 4. 「묵즙일적(겨우 붓을 들고)」 중 발췌


두바이의 봄을 기다리며

두바이에서 맞는 아침마다 나는 발코니로 향한다. 그곳에 놓아둔 식물들이 건강히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시든 잎들을 따주고 힘이 없어 보인다 싶으면 물을 준다. 요 며칠은 유독 레몬 나무에 눈이 갔다. 작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가 주고 간 나무다. 겨울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분명 녹색 열매 하나만 매달려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어느새 제법 레몬 티가 나는 모양새로 성장했다. 게다가 오늘 아침 꼼꼼히 세어 보니 크고 작은 레몬 열매가 스무 개나 열려 있었다.


더운 계절과 더 더운 계절. 외부인의 눈으로 보자면 이 도시는 일 년 내내 여름만 계속되는 곳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아닌 게 아니라 두바이에서 지내다 보니 계절 감각이 조금씩 무뎌져 가는 것도 같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도시에도 미미하게나마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두바이에도 봄은 오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싸야 할 날이 되면 무작정 화분들을 사버린 스스로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오늘 새벽, 오랜만에 마사오카 시키의 글을 떠올리며 나는, 식물을 키우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두바이에 뿌리를 내린 삶은 아니라 해도, 이곳에서 단 하루를 살더라도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그것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으며 사는 삶,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이다.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이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온 일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이미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인 이가 인생의 마지막 봄을 바라보며 적어 내린 글을 읽고 나니 봄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달라진다. 나태하게 봄을 흘려보내지 말자. 올해의 봄이 나의 마지막 봄인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두 발 온전히 딛고 두바이의 봄을 맞이해 보자.




[기고처] 브릭스 매거진


keyword
이전 13화어느 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