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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Aug 25. 2023

[기고]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본 실패의 역사

[국립세종도서관: 정책이 보이는 도서관]이 책을 읽고 난 후

오래전 찰스 디킨스는 소설, 『니콜라스 니클비』에 ‘나쁜 소식은 빨리 퍼진다(Ill news travels fast)’라고 적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 부정적인 이야기에 이목이 집중되는 현상은 현대를 사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톰 필립스(Tom Phillips)에 의하면 인간은 일을 말아먹는 재주가 대단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320만 년 전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바람에 자신의 종(種)에서 가장 유명한 개체가 된 ‘루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온갖 바보짓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위대한 지도자나 천재적 발명 등 인류가 이루어낸 위업에 대한 책은 그간 많이 출간되었다고. 개인이나 집단의 실패에 관한 책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처참하게 파국적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바보짓을 주제로 한 책은 별로 없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톰 필립스가 어떻게 했냐고? 그는 스스로 나섰다. 인간이 벌인 바보 같은 사건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잠시만요, 내가 아닌, 남들이 벌인 바보짓이라고요? 귀가 솔깃해진 이는 당신뿐만이 아닌 게 분명하다. Humans: A Brief History of How We F*cked It All Up이라는 제목으로 2018년에 출간된 그의 첫 저서는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를 넘어 30개국에서 번역∙출간되었으니까.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일까? 이제부터 『인간의 흑역사』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소개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인류, 역사적 사건을 통해 들여다본 문제의 창조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라틴어로 ‘지적(知的)인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현생인류는 지구상에 존재해 온 시간 동안 지적인 결과물만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지적인 것과는 영 동떨어진 사건들을 발생시킨 것도 주로 인간의 몫이었다. 10장으로 구성된 본문을 통해 저자는 인류사 전반에 걸쳐 인간이 저질러온 실패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각 장은 서로 다른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데, 제3장 ‘생명은 살 길을 찾으리니’에서는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어설픈 시도와 그로 인해 발생한 재앙이, 제7장 ‘식민주의의 화려한 잔치’에서는 대항해 시대의 영웅들이 그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였던 곳에서 일으킨 끔찍한 사건들이 언급되는 식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1949년 말, 중국은 전염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문제의 책임을 동물들에게 돌렸고 그 동물들 중 하나는 놀랍게도 참새였다. 대대적인 소탕 작전 끝에 이 작은 새와의 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천적이 없어지자 참새가 잡아먹던 메뚜기가 창궐했고 중국의 논밭은 메뚜기떼로 인해 초토화되고 만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에 의하면 인간은 부족한 점이 많은 존재다. 우리는 자신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멀리 내다보기보다는 눈앞의 결과만을 좇아 잘못된 선택을 내리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고르는 등 많은 오류를 지닌 채 살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다시금 유사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인간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의 말이 옳다면 인류는 앞으로도 꾸준히 흑역사를 만들 가능성이 큰데 그것은 너무 암울한 일이 아닌가!

 저자는 시종일관 조롱 섞인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지적인 존재라고 스스로를 칭하지만 사실은 그 오만함으로 인해 인류에게는 얼마나 큰 재앙들이 닥쳐왔었느냐고 타박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비난 섞인 목소리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그 안에 담긴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모든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지금 우리는 바뀔지도 모른다. 과거를 통해 배우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한 얘기들은 다 과도한 비관일지도 모른다…(중략)… 어쩌면 언젠가는, 우리가 나무에 올라가 떨어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팩트에 기반한 술술 읽히는 역사서

『인간의 흑역사』는 역사의 ‘역’ 자만 들어도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독자라 하더라도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로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체에 빚진 부분이 크다.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수다 떨기 좋아하는 내 친구 톰이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조잘대는 것만 같은 말투로 쓰였기에 읽는 족족 귀에 쏙쏙 들어오고 내용이 뇌리에 팍팍 새겨진다. 하지만 같은 이유에서, 정확한 역사에 기반한 내용이 아니라 저자가 재미에만 집중해 허술하게 쓴 책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살 수도 있을듯하다. 경중이 다른 사건들을 똑같이 가벼운 이야깃거리처럼 서술한 점도 아쉽다. 그런데 내가 말했던가? 저자가 역사학도였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인류학, 그리고 역사와 과학철학까지 공부한 인물이다. 게다가 현재는 팩트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풀 팩트(Full Fact)라는 기관에서 에디터로 근무해오고 있단다. 그러니 이 책에 담긴 내용이 거짓은 아닐까라는 의심은 붙들어 매고 마음 편히 독서를 즐기시길 바란다. 만약 그래도 미심쩍은 내용이 있다면 가장 마지막 페이지, ‘읽을 만한 책’ 부분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그 안에는 책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주제와 사건들을 더 깊이 알아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도서 목록이 담겨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역사가 단지 과거의 고루한 이야기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없이는 현재도, 미래도 없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기왕 읽는 역사, 재미를 곁들여 즐기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인간의 흑역사』를 추천하고 싶다. 즐거운 독서 끝에, 미래의 우리가 어떻게 하면 흑역사를 덜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혜안까지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기고처] 국립세종도서관 <정책이 보이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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