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에 자리한 피사(Pisa)는 피사의 사탑 덕분에 웃고 있지만 피사의 사탑 때문에 억울하기도 한 고장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옆으로 쓰러질 것처럼 삐뚜름한 자세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탑을 보기 위해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관광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탑 모양을 본떠 만든 기념품을 사겠다고 지갑을 여는 것은 분명 미소를 부르는 일일 것이다. 반면, 이 기묘한 모양의 탑이 워낙 유명한 까닭에 피사에는 그것 빼고는 볼 것이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니 그것은 억울하다 할 만하다. 그러나 피사는 오로지 탑 하나만을 목표로 잠시 들렀다 급하게 떠나가기에는 아까운 도시다.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았을 정도로 유서 깊은 이 지역에 볼거리며 짚어볼 역사가 어디 기울어진 탑 하나뿐일까.
* 에트루리아(Etruria):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고대 로마에 통합되기 전까지 지금의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라치오주, 움브리아주 일대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
어쩌면 도시의 이름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를 피사의 사탑. 그러나 피사에는 피사의 사탑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사의 사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때로는 사람 구경이 더 재미있다.
기나긴 역사를 지닌 도시, 피사
오늘날의 피사를 설명하며 항구도시라는 표현을 택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도심에서부터 이 도시의 이름을 딴 항구까지 이르는 길이 직선거리로만 따져봐도 10km 이상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지형의 변화로 인해 바다와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전까지 피사는 분명 항구도시였다. 바다 건너 카르타고 원정길에서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했을 정도로 일대에서 손꼽히는 항구였던 피사는 제노바, 베네치아, 아말피와 더불어 지중해를 주름잡는 중세 이탈리아 대표 4대 해상세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11세기 중반, 피사는 이슬람교도들이 지배하던 시칠리아섬 팔레르모까지 이동해 공격하기도 했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피사의 두오모 광장과 대성당은 그 당시 약탈한 보물들로 짓기 시작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로마 시대와 중세 이탈리아 시대를 증명하던 건축물 대다수가 파괴된 것은 어쨌든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복원을 거쳐 많은 건축물들이 세상과 다시 만났고 그 덕분에 우리는 피사의 번성했던 과거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게 되었다.
피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사라는 지명을 생각하노라면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 수학자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함께 떠오르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같은 높이에서 떨어지는 모든 물체는 질량과 관계없이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 올라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자유낙하 실험을 했던 곳이 정말로 피사의 사탑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은 아직까지도 분분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피사가 이 위대한 인물의 고향인 동시에 그가 처음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도시이자 1589년부터 3년 간 교편을 잡았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갈릴레이가 수학과 교수로 근무했던 곳은 피사 대학교(Università di Pisa, University of Pisa)였는데 이곳에 대한 갈릴레이의 기억은 곱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험적 검증을 통한 학문 연구를 추구했던 그가 당대 사람들이 진리라 굳게 믿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서 오류를 찾아낸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따르는 이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게 되었고 결국 쫓겨나듯 파도바 대학교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사 대학교는 그의 학문의 출발점과도 같은 곳이니 그곳에 갈릴레이에 대한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 이러한호기심에서 출발한 여정은 나를 피사 대학 도서관으로까지 이끌었다.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갈릴레이가 직접 쓴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는 작은 도서관이 피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마침 그곳은 휴관 중이고 언제 다시 문을 열지 모른다 했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피사관광청과 피렌체에 있는 갈릴레이 박물관에 연락을 취했고 갈릴레이 전문가 한 분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그분의 주선으로 피사 대학 도서관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피사 대학 도서관
피사 대학 도서관(Biblioteca Universitaria
di Pisa, University Library of Pisa)의 시작은 무려 1742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피사 대학교가 1343년에 개교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토스카나 지역 최초로 대중들에게 공개된 천문대 건물 안에 문을 열었다는 도서관은 1823년에 이르러 팔라초 델라 사피엔자(Palazzo della Sapienza)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래, 15세기에 지어진 이 고풍스러운 건물은 도서관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서관의 관리 주체도 변했다. 원래는 교육부에 귀속되어 있었으나 이탈리아 정부에 문화환경부가 설립된 1975년부터는 관리 주체가 신설 부처로 변경되었다. 이후 문화환경부의 이름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피사 대학 도서관만은 오랜 전통을 잇기 위해 이름을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단다. 안타깝게도 지난 2012년부터 보수 공사를 시작했다는 팔라초 델라 사피엔자 건물은 2023년 현재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런 이유로 도서관의 내부 공간들은 사진으로밖에 만나볼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재개관 일정을 묻는 나에게 여기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이기 때문에 언제 공사가 마무리될지는 자신들도 전혀 알 수가 없다며 허허허 웃던 도서관 직원은, 대신, 사진과 자료들을 통해 이 역사 깊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충실히 들려주었다.
1823년부터 피사 대학 도서관이 있었던 팔라초 델라 사피엔자 (c)University Library of Pisa
오늘날의 팔라초 델라 사피엔자의 모습
Sala Riservata (c)University Library of Pisa
일반이용자들에게 공개되는 공간 중에서 가장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은 두 곳이라 했다. 첫 번째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원목 책장에 오래된 희귀 자료가 빼곡히 꽂힌 열람실(Sala Storica)로 여기에 보관된 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 전까지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이 자료들은 때때로 특별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는데 전시 기간 동안에는 열람실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은 교수나 연구자가 예약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는 열람실(Sala Riservata)이다. 법학자이자 피사 대학교의 교수였던 주세페 아베라니(Giuseppe Averani)의 유언에 따라 피사 대학 도서관에 기증된 도서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 방은 이후, 기증 또는 구매를 통해 추가로 입수한 자료들도 함께 소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16세기에 인쇄된 자료부터 시작해 종교역사, 철학, 문학, 토스카나 지역 관련 서적 등 다양한 도서들이 분야별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1830년 이전에 만들어진 자료가 필요하다면 방문에 앞서 담당자에게 자료 이용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며 원본은 사전 협의를 거친 후 허가를 받아야만 살펴볼 수 있다.
성마테오국립박물관 건물에 피사 대학 도서관 임시 사무실이 있었다. 강 쪽에서 보이는 건물이 작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 했다
피사 대학 도서관 사무실 풍경. 도서관에는 수 세기에 걸쳐 수집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자필 편지
"피사 대학 도서관에 연락해 보세요. 그곳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04년에 파올로 사르피에게 쓴 자필 편지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갈릴레이가 자유낙하실험에 관해 쓴 첫 번째 편지입니다."
피사 대학 도서관을 찾아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갈릴레오의 자필 편지를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미리 연락을 나누었던 도서관 담당자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 보니 그곳은 아르노 강변에 자리한 작은 규모의 열람실과 사무실을 갖춘 아담한 도서관이었다. 팔라초 델라 사피엔자에 있던 도서관의 보수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라 했다. 나로서는 정확한 쓸모를 알 수 없는 기계와 크고 작은 서랍, 벽면을 채운 그림들로 가득한 사무실에 앉아있던 담당자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곧이어 옆에 딸린 창고로 들어가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누런 종이를 펼쳐보니 그 안에는 놀랍게도 갈릴레이가 썼다는 편지 원본이 들어 있었다. 나에게 흰 장갑을 건네면서 그걸 끼고 직접 원하는 만큼 살펴보라는 이야기에 혹시나 편지를 상하게 할까 걱정이 되어 마스크까지 끼고 세월에 바랜 종이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비록 도서관 내부를 샅샅이 둘러볼 기회는 없었지만 이렇게 귀한 자료를 내 두 눈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사 대학 도서관 방문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자필 편지
그의 서명이 놀랍도록 선명하다
피사 대학 도서관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편지 사본들도 보관되어 있었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
갈릴레이의 편지를 뒤로 하고 나와 아르노 강을 따라 걸었다. 목적지는 팔라초 델라 사피엔자. 외부공사는 마무리되었으니 사진으로 먼저 만난 공간을 직접 살펴보러 가보겠냐는 말에 흔쾌히 길을 나선 것이었다. 피사 도심을 관통하는 아르노 강은 오랜 역사를 품은 건물들과 이웃하며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피사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오래전 첫 번째 방문에서는 피사의 사탑만 보고 번개처럼 떠난 탓에 이 도시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만들지 못했다. 이번에도 결코 여유로운 일정은 아니었으나 18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이름을 이어오고 있다는 피사 대학 도서관을 둘러보며 수 백 년 전의 어느 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펜 끝에 검은 잉크를 찍어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을 편지를 두 눈에 담고, 이어 아르노 강을 따라 걷다가 피사의 골목길을 헤매며 이 도시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보니 잠들어 있던 역사가 깨어나 나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오늘의 내가 걷고 있다. 이렇듯 피사는 도시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역사이자 박물관이 아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피사 대학 도서관의 오랜 과거를 기억하는 방들이 다시금 대중을 향해 활짝 문을 여는 날, 조금 더 여유 있게 이 도시를 거닐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나는 그 오래된 도시를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