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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21. 2020

봄봄한 가을날

김유정을 만나러 떠나는 춘천 여행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 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김유정


지금이야 검색엔진에서 '김유정'을 치면 탤런트 김유정이 가장 먼저 뜨지만 나에게 있어 그 세 글자는 오래전 작고한 소설가, 김유정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날의 강원도 춘천 하고도 신동면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김유정은 1908년에 태어나 1937년에 세상을 떠났다 한다.


참으로 짧고도 짧았던 생이었으나 채 30년이 되지 않는 생애 동안 그가 남긴 글들은 작가의 사후 8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이런 그의 생을 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짧다고 해야 할까.


김유정이 나고 자란 마을 주변에는 김유정 문학촌이 조성되어 있다. 일 때문에 두 어 차례 그곳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가서 보니 그 공간이 김유정 문학의 발자취를 찾아온 이들을 위한 공간뿐 아니라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그리하여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해보고 싶었던 어느 날 나는 울낭군과 여행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 것이었다.


춘천이면 서울에서부터 자동차로 가도 쉽게 가 닿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우리는 경춘선을 타기로 했다.


누군가가 노래로도 불렀듯이, 춘천은 왠지 기차를, 아니, 기차가 아니라면 전철이라도 타고 가야 제맛일듯하고 무엇보다 사람의 이름을 딴 최초의 역이라는 김유정역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경춘선은 가을의 풍경 사이로 달리고 또 달렸다. 중간에 잠이 들어버린 여행이를 번갈아 안고 가는 길, 팔이 아프다는 생각보다 이 목가적인 풍경을 여행이와 함께 즐기지 못해 아쉽다는 마음이 더 컸다.




말로만 듣던 김유정역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잠에서 깨어난 여행이와 함께 그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김유정의 생가와 김유정 문학촌, 그리고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과 그들이 실제로 살았던 집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꾸며진 실레마을은 역에서 멀지 않아 어린아이와 함께라도 슬슬 산책하듯 걸어갈 만하다.





볼거리는 더 있다. 이제는 폐역이 된 또 하나의 김유정역과 그 주변에는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잘 꾸며져 있었고 몸을 조금 더 움직이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는 레일바이크 체험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김유정의 단편소설을 떠올리며 둘러보는 실레마을 산책길이 재미있었기에 그 길을 가족과도 함께 걷고 싶었던 게 사실. 하지만 김유정보다는 공룡에 더 관심이 많았던 여행이와 함께였기에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다행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김유정 문학촌 한편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엄마가 들려주려는 동백꽃이며 봄봄 이야기를 다 제쳐버리고 대신 핑크퐁 공룡 동요를 신명 나게 부르며 땅바닥에 공룡 그림을 그리는 여행이의 모습과 티라노사우루스의 발가락은 다섯 개도 아니요 세 개도 아닌 두 개이므로 손가락을 정확히 두 개만 편 채 제 아빠와 크르릉 크르릉 대결을 벌이는 사납지만 사랑스러운 여행이의 얼굴을 감상하던 순간들.





이제는 더 이상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이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 시간들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으로
내 마음은 가득 차 있으므로.



-2017년 10월, 강원도 춘천-


◇ 여행팁 ◇

● 김유정 문학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문학작가인 김유정을 기리기 위해 작가의 고향인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김유정 문학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관과 작품 속 인물과 장소를 따라 걸어보는 실레마을 이야기길이 조성되어 있고 때때로 이곳에서 문학 행사와 강연 등이 열리기도 한다. 문학촌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거리에는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사람의 이름을 딴 최초의 역이라는 김유정 역도 있다.
주소: 강원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0-14
운영시간: (하절기) 평일 9:30-18:00, (동절기) 평일 9:30-17:00
입장료: 2,000원
웹페이지: http://www.kimyouje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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