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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21. 2020

섬 아닌 섬

남해도(南海島)가 아닌 남해(南海)로의 여행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들어서면서
섬 아닌 섬이 되어버린 곳들이 있다.


배가 없으면 섬을 떠나지도 못하고 설령 배편이 있다 해도 날씨가 허락해주지 않으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리는 섬사람들에게, 그러나 다리는 마냥 반가운 존재만은 아니라고 한다.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물건이 모여드는 조금 더 큰 도시로 가는 길이 쉬워지는 게 그저 좋은 일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란다. 어차피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은 데다 뜨내기 외지인들이 많아진다한들 섬사람들의 살림이 갑자기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 다리가 놓이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했다.


보리암으로 가는 길, 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1973년, 경삼남도 하동군과 남해도(南海島)를 잇는 남해대교가 개통되었다.


이 다리가 만들어진 위치는 육지와 육지 사이가 불과 600미터 남짓에 불과하지만 수심이 깊고 물살이 매우 빠른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이었던 노량해전이 벌어진 노량해협(露梁海峽) 이 바로 여기.

이런 위치에 다리를 만드는 것은 보통을 뛰어넘는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 관련 유적지와 남해도의 뛰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관광지를 개발하고 특산물인 감귤을 보다 효율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라도 남해대교는 건설될 필요가 있었다 한다.


이렇게 한국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 덕분에 남해도는
더 이상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서울에서부터 차를 몰아 남해로 가는 길. 그 길의 중간 정도까지는 소복이 쌓인 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덕유산 휴게소에 차를 세운 우리 부부는 눈 구경도 하고 눈싸움도 하고 그렇게 겨울을 만끽하며 여행을 시작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눈은 그 자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단히 여몄던 코트와
내내 목에 말고 있던 머플러까지 풀어헤치게 만드는 남해는,
이미 봄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덕에 남해를 오가는 여행자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 여행길에서 묵었던 숙소에서 우린 우연히 갓 스무 살쯤 된 여행자 둘을 만났다. 한때 우리가 그랬듯 뚜벅이 여행자였던 그 둘은 친구사이라 했는데 숙소에서부터 다음 목적지까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야 한다 했다. 어차피 우리 차엔 우리 부부 둘 뿐이라 그 둘에게 뒷좌석을 내어주고 함께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 두 친구와 함께 남해 보리암에 올랐다. 다도해가 내려다보이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풍광을 자랑하는 위치에 절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느 계절에 가도
남해 바다 위로는
햇살이 쏟아질 것이고
그 햇살은 너무나도 반짝여
눈이 부실 것이다.



손 잡고 여길 보세요.
아니, 조금 더 다정하게요.


우리 부부와 두 친구는 보리암을 둘러보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서로를 찍어주기도 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꺼내본 남해 여행 사진첩에 그 두 사람의 얼굴이 몇 장이나 들어있는 걸 보니.

그렇게 반나절쯤 함께 돌아다녔는데 미안하게도 이제는 그 둘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참으로 아쉽고도 미안한 일이다.




얼마 전,
남해에 다시 한번 다녀왔다.


몇 년 전 겨울  그곳에서 만나 잠시나마 함께 여행했던 두 친구가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7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울낭군은 엄마, 아빠가 되었고 이빨이 나고 어른들이 먹는 음식도 먹고 제 발로 걷고 뛰며 하고 싶은 말까지 다 하는 어린이로 자란 여행이가 우리 부부 곁에 있었다. 세월은 참 느린 듯하면서도 야무질만큼 꾸준하게 흘러가고야 만다.





지금보다 7년 반 젊은 우리 부부가 둘이서 다녀왔던 보리암과 독일마을에 여행이와 함께 다.




남해의 별미라는 죽방멸치를 아낌없이 넣어 만든 멸치쌈밥을 먹으러 그때 그 식당에 다시금 다녀오기도 했다.


비슷한 시간이 흐른 후
남해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그때도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감동을 받게 될 테지.


다행히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보다 오지 않은 날에 대한 기대가 더 큰 탓에 이번에도 우리는 이 섬 아닌 섬을 기분 좋게 떠나올 수 있었다.


-2013년 2월/ 2020년 9월 경상남도 남해-


◇ 여행팁 ◇

● 보리암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65
전화번호: 055-862-6115
웹페이지: http://www.boria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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