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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22. 2020

회혼시(回婚詩)에 담긴 마음

남양주 다산생태공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부인 홍씨(홍혜완)는 다산이 15세 되던 해에 결혼하여 만 60년을 부부로 살았다. 이중 다산이 유배지에서 보낸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은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다산은 아내에게 언제나 따뜻한 남편이고자 했단다.


다산이 유배지로 떠난 날로부터 몇 년 후 아내는 자신이 혼례복으로 입었던
다홍색 활옷을 다산에게로 보냈다.


몇십 년을 간직해온 옷이었으니 원래의 빛깔도 다 날아가고 희미한 노을빛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핑계는 그것으로 책이나 장정하라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유배가 장기화되고 있는 마당에 직접 남편을 방문할 수는 없으니 옷에라도 마음을 실어 보낸 것이었다.

다산은 자신들의 혼례복이었던 아내의 빛바랜 다홍치마로 공책을 하나 만든다. 그곳에 그는 아들들에게 전하는 당부를 적었고 남은 옷감엔 매화병제도를 그리고 행복한 결혼을 기원하는 시를 적어 결혼한 외동딸에게 주었다. 그는 말했다.


이 책과 그림에 깃든 사연을 생각한다면 너희가 어떻게 이 책에 적힌 당부,
이 그림에 담긴 기원,
부모의 이 애절한 바람을 어길 수 있으랴


다산은
결혼 60주년이 되던 회혼일 아침에
세상을 떠난다.
다산이 남긴 마지막 시는
회혼시(回婚詩)였다.



산과 물이 함께 하는 풍경은 언제 봐도 보는 이의 마음을 충만하게 만든다. 서울 동쪽에서 출발해 차로 30~40분이면 닿는 경기도 남양주에는 팔당호의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는 멋진 장소가 있다. 바로 다산생태공원이다.


공원 바로 옆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여유당(與猶堂)과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실학 전문 박물관인 실학박물관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도 좋다.




절기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어서 입추가 지나고 처서에 가까워 오니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한달음에 물러나고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낮의 길이도 놀라울 만큼 짧아져 이제 곧 여름도 끝이구나라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들 즈음 우리 가족은 다산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우리는 주말에만 통행이 허용되는 팔당댐 관리교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늦은 오후에 집을 나선 탓에 우리 가족이 다산생태공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다섯 시를 넘긴 시각. 하늘은 벌써 오늘의 해를 떠나보낼 준비를 마친 듯 천천히 노르스름해지고 있었다.




떼를 지어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밸런스 바이크를 타고 공원을 누비던 여행이도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갈라치면 제 자리에 멈춰 서 고개를 쭉 빼고 구경하느라 바쁘다.





팔당호 주변 드넓은 부지에 조성된 다산생태공원에는 인공적인 놀이 시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연을 배경 삼아 공원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충분한 놀이요 휴식이 된다.




동그라미였다가 반원 모양이 되었다가 이내 산 너머로 쏙 사라져 버리는 해를 바라보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드디어 주위가 어둠이 잠기자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진짜로 먹고 싶은 것은 숭어회나 빠가사리 매운탕이었지만 회나 매운 음식을 아직 먹지 못하는 여행이를 위해 장어구이를 주문했다. 다음에 다시 가면 숭어, 빠가사리, 둘 중 한 놈 기다리거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까지 채웠으니 이런 게 바로 행복이다 싶은 저녁, 정약용이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회혼씨를 떠올리며 다산생태공원을 떠나왔다.





회혼시

回婚詩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갔으니

六十風輪轉眼翩


복사꽃 무성한 봄빛은 신혼 때 같구려

穠桃春色似新婚


살아 이별, 죽어 이별에 사람이 늙지만

生離死別催人老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오

戚短歡長感主恩


이 밤 목란사 노랫소리 유난히도 좋으니

此夜蘭詞聲更好


옛날의 하피첩은 먹 흔적이 아직 남았소

舊時霞帔墨猶痕


나뉘었다 다시 합함은 참으로 우리의 모습

剖而復合眞吾象


한 쌍의 표주박을 남겨 자손에게 주노라

留取雙瓢付子孫



-2018년 8월, 경기도 남양주-


◇ 여행팁 ◇

● 다산생태공원
경기도 남양주시 팔당호를 조망하는 위치에 자리한 생태공원이다. 도보거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와 실학박물관도 함께 둘러본다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될것이다.
주소: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767
주차: 공원 부근에 무료 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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