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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7. 2020

바다와 태양과 오래된 도시와 친절한 이방인들

이탈리아 나폴리의 감브리누스 카페에서

나폴리(Napoli, Naples)로 향하는 국내선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탈리아 아주머니는 우리 부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보였다. 우리가 자리에 앉을 때부터 이미 언제 말을 걸어 볼까 기회를 노리는 기색이 뚜렷하더니 내가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자마자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베수비오 화산(Vesuvio) 바로 아랫동네에 살고 계신다는 그분은 직업이 의사인데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아프리카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만남 1주년을 기념해 이탈리아 남부로 여행을 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나폴리에서는 어디를 방문할 예정이냐고 물었다. 계획을 마이크로 단위로까지는 세우고 다니지 않는 터라 나는 어디 좋은 곳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요청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반상회 결과 전달받는 중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는지 때는 이때다 싶은 태도로 근처 통로 측 좌석에 앉아 있던 몇몇 이탈리아 분들이 안전벨트를 풀어헤치고 몸을 돌려 우리를 향해 돌아 앉았다. 좀 더 먼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두 명은 아예 우리 좌석 근처로 걸어와 통로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더니 내가 이탈리아 토박이라 해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몹시 빠른 말투로 다다다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행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여쭈어 보니 놀랍게도 초면이었던 그들은 우리 부부를 위해 하늘 위 긴급 반상회를 연 끝에 나폴리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라며 몇 곳을 찍어주셨다. 그중 한 곳이 바로 감브리누스 카페(Gran Caffè Gambrinus)였다.



오래전, 카프리 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잠시 이 항구도시에 머문 적이 있었다. 유럽 자유여행 초기, 짧은 시간 안에 유럽을 완전 정복할 기세로 훑었던 그 여행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인 도시였기에 오랜만에 다시 찾은 나폴리는 마치 처음 만나는 도시처럼 생경했다.


나와 울 낭군은 잊을만하면 가끔씩 존재감을 내뿜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는 베수비오 화산을 바라보며 해변을 산책했다.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에서 구도자가 된 심정으로 카스텔 누오보(Castel Nuovo)를 둘러보기도 했다. 어차피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긴 했지만 기억 속 모습에서보다 정리가 덜 되어 보이는 이 도시를 헤매던 우리 부부는 커피! 지금 당장 커피를 마셔야겠어!라는 생각이 든 참에 비행기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추천해준 카페엘 가보기로 했다.



감브리누스 카페는 나폴리 항구에서도 멀지 않은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려 1860년에 문을 연 이 카페는 19세기 후반에 이곳을 운영하던 두 번째 소유주, 마리오(Mario Vacca)라는 인물 덕분에 오늘날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한다. 그는 카페를 리모델링하면서 아티스트들을 고용해 화려한 그림과 조각으로 내부를 장식해 당대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을 완성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방문하는 이들로 하여금 벨 에포크 시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감브리누스 카페의 커피는 이탈리아 3대 커피 중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단다. 누군가는 그 커피를 직접 맛보기 위해, 또 누군가는 과거 어느 시절 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오스카 와일드나 헤밍웨이, 모파상, 혹은 에밀 졸라를 떠올리며 이 오래된 카페를 찾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도 테이블 하나를 잡고 앉았다. 유명세에 비하면 다행히 줄은 그다지 길지 않았고 커피맛도 나쁘지 않았다. 백오십 년도 넘는 기간 동안 성업 중인 카페엔 미안한 이야기지만 감브리누스의 명물이라는 아이스커피에서는 한국 슈퍼마켓에서 파는 더위사냥 맛이 났다.


감브리누스 카페의 아이스커피. 이것은 고향의 맛.


시원한 바다와 작렬하는 태양과 오래된 도시와 친절한 이방인들, 그리고 고향에서 맛본 맛을 떠올리게 만드는 낯선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그 모든 것이 새삼 그리운 요즘이다.


◇ 여행팁 ◇

● 한국에서 나폴리까지 직항 편은 없다. 독일 뮌헨 등 유럽 다른 나라를 경유하거나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이동해야 한다.

● 감브리누스 카페(Gran Caffè Gambrinus)
주소: Via Chiaia n. 1 | Piazza Trieste e Trento, 42 80121 Napoli, Italy
전화번호: +39 081 41 75 82
웹페이지: https://grancaffegambrinus.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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