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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Jan 01. 2024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간다

『폴란드의 풍차』 장 지오노(박인철 옮김), 민음사

『폴란드의 풍차』 장 지오노 (박인철 옮김), 민음사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는 제 딸들이 단순히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살았으면 했다.


부와 명예를 비롯한 그 어떤 것에 대한 욕심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나의 핏줄이 그저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 그것은 얼마나 간절한 바람이었을까.


프랑스의 작은 마을 변두리에 폴란드의 풍차라 이름 붙여진 영지가 있다. 조제프 씨라 불리는 키 크고 활달한 사십 대의 남자가 소유하고 있는 땅이지만 한때는 코스트라는 이와 그의 가족에게 속한 곳이었다. 아내와 두 아들을 차례로 사고로 잃은 코스트는 남은 두 딸이 잔인한 운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저 조용히 평범한 삶을 이어가기만을 바라며 살아왔다. 하지만 운명은 그의 소망을 묵살한 채 코스트로부터 시작되어 5대에 이르는 이 집안사람들의 삶을 잔인하게 뒤흔들고 만다.


독자가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만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가계도로 이것은 보통 등장인물이 많거나 인물 사이의 관계가 복잡할 때 등장하지만 코스트가(家) 가계도의 경우는 소개되는 이유가 조금 달라 보인다. 각각의 이름 아래에 해당 인물이 어떻게 죽거나(낚싯바늘에 찔려 죽거나 기차 사고로 일가족이 몰살되거나) 세상으로부터 잊히게 되었는지(정신 병원에 수용되거나 가출 후 실종되거나)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비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일 텐데 과연! 작가가 서두에서부터 툭 까놓고 입을 열었듯 이야기는 시작되자마자 비극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코스트들에게 앙심을 품고 노리고 있었던 것처럼 운명은 그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들을 하나, 둘 집어 들어 비극 속으로 던져 넣는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웃들마저 코스트가의 불행이 자신들에게까지 전염될까 두려워한 나머지 그것을 피하고자 이미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일가를 더 깊은 어둠의 수렁 속으로 내팽개친다


희생양의 삶을 쥐고 정신없이 흔들어대던 운명은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조금 너그러워지는 듯하다. 굴곡진 인생의 길을 편평하게 다질 능력을 갖춘 인물(조제프)의 등장으로 인해 코스트가 사람들이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그저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사는’, 다시 말해, 특별할 것은 없으나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삶으로 새 출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착각이었을 뿐 소설은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하필이면 왜 코스트가 사람들인지,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토록 비참한 길을 몇 대에 걸쳐 걸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들과는 달리 ‘평범하게’ 살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이유로 잔인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은 따라붙지 않는다.


코스트를 분격시킨 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죽음이 다가올 때의 그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죽음은 언제나 느닷없이, 그리고 마치 북극광처럼 나타났다. 예외가 있다면, 붉고 극적이었다. 그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화약 상자 위를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사람 같았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는 화약이 폭발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보지나 않나 하고 기다렸다. 그는 사람이 악의를 갖고 운명을 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것은 기다리는 것임을 깨달았다.


저자인 장 지오노(Jean Giono, 1895. 3. 30. ~ 1970. 10. 8.)는 남프랑스에 자리한 소도시, 마노스크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고향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살다 간 작가다. 그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조화를 그리는 작품들을 다수 발표했고 20세기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가정환경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일터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지만 독서와 문학에 대한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당시 그가 주로 탐독했던 책은 성서와 호머의 일리아드, 그리스 비극 등 고전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우리 인간들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존재, 즉, 한낱 인간의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드러난다. 지오노의 초기 저작에서 나타나는 자연으로 대표되는 세계와, 『폴란드의 풍차』를 비롯한 중기 저작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에서 보이는 운명이라는 화두는 어쩌면 유년시절의 그가 독서를 통해 만났던 강력한 힘이라는 존재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숙명(宿命)이라는 단어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미리 정해진 운명, 고로 인간의 의지로는 피할 수는 없는 운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숙명은 실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은 정말로 그것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일까. 나에게, 혹은 나의 가족들에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사건들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얌전히 고개 숙여 맞이해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러고 싶지는 않다. 힘 있는 세상이 제 손바닥 뒤집듯 이리저리 변화할 때 힘없는 우리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놀아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지워진 운명을 수동적으로 맞이하고 싶지만은 않다. 비록 처참한 운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에 맞서 싸우고자 했던 코스트 씨처럼, 그리고 코스트가와 인연을 맺었으나 제 몫의 삶을 충실히 살다 평범하게 저 세상으로 떠난 조제프 씨처럼 울퉁불퉁한 인생길을 반듯이 펴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살아가고 싶다. 비록 실패의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런 마음으로, 그런 태도로 나의 삶을 꾸려가고 싶다.


그래서 그는 분격했다. 그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자기 딸들도 내부에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술에 물을 타면 희석이 되니까 이런 방법을 이 예외적인 운명에 적용함으로써 모름지기 그 농도를 약하게 만들 수 있을 법도 했다. 아내란 자기 남편과 흡사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 그렇게 하면 위험 없이 약한 포도주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칼을 들고 신에게 공격하는 것은 벽에 자기 머리를 들이받는 일과 다름없겠지만, 평범하게 산다면? 물론 속임수지만, 그래도 그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발췌한 부분은 파란 글씨로 표기하였습니다.



2024년 새해를 여는 첫 번째 이야기인데 너무 비극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을 집어든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고민 끝에 준비한 글을 나누어 봅니다. 소설을 쓴 저자의 의도와는 다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린 독자로서의 제 결론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 있다 하더라도 단순히 그것에 이끌려 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여 운명이 이끄는 방향이 내가 원치 않는 방향이라면 나의 힘을 보태 움직여나가는 방향을 바꿔보자는 마음으로 2024년을 살아가겠습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브런치에서 또는 다른 매체를 통해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24년 초에는 국제이사와 둘째 출산 등 굵직한 이벤트들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여유가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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