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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Dec 25. 2023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고독이라는 이름

『백 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조구호 옮김), 민음사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조구호 옮김), 민음사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 3. 6. ~ 2014. 4. 17.)는 라틴아메리카를 넘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백 년의 고독』을 읽다 보니 그가 나고 자란 대륙의 과거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소설의 배경이자 뿌리가 되는 곳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을수록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으로 오랜 시간 부침을 겪어온 역사는 이 지역을 부르는 이름에도 오롯이 드러난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널리 쓰인다는 이유로 프랑스인들은 이곳을 라틴아메리카라 불렀고, 인도를 찾아 나섰다가 발견한 이 대륙을 인도로 착각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일화로 인해 서인도라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콜럼버스 이후 차례로 이 지역을 점령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이곳을 신대륙, 즉, 새로운 땅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곳에 (주로 침략의 형태로) 도착한 이방인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진 땅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라틴아메리카의 굴곡진 역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백 년의 고독』은 약 백 년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마치 대서사시*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사촌지간으로,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온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는 성인이 된 이후, 지난 몇 백 년 동안 조상들이 그래왔듯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러나 근친상간으로 인해 기형적인 모습을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을 두려워하던 우르술라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고 그 문제 때문에 이웃과 싸움이 붙은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홧김에 상대방을 죽이고 만다. 이후, 그 싸움에서 패한 뿌르덴시오 아길라르가 유령의 모습으로 신혼부부를 지속적으로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이 문제로 인해 괴로움을 겪던 신혼부부는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몇몇 마음 맞는 이들과 길을 나선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그는 새로운 땅을 찾아 마꼰도라 이름 짓고 그곳의 리더가 된다. 싸움도 죽음도 없는 평화로운 땅, 마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에덴을 연상시키는 마꼰도에서 호세 부부는 두 아들(호세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과 딸 하나(아마란따)를 낳는다. 그리고 6대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7대라고 해야 할까, 너무나도 복잡한 가계도 때문에 콕 짚어 이야기하기도 어렵지만 여하튼 한 세기에 이어지는 기나긴 기간 동안의 부엔디아 가문을 둘러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대서사시: 국가나 민족의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한 신화나 전설, 또는 영웅의 사적 등을 시간의 연쇄에 따라 나열한 시(詩)

 

저자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환상에 기반한 이야기들을 종종 들으며 자라왔다고 한다. 작가로서의 그의 이름에 ‘마술적 사실주의(마술적 리얼리즘)’라는 단어가 수식어처럼 따라붙게 된 데에는 미신과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좋아한 까닭에 그녀의 상상 속에서 키워낸 이야기들을 마치 진실인 양 태연한 말투로 손자에게 전해준 외할머니에게 빚진 부분이 크지 않을까 싶다. 언뜻 생각하면 상상과 현실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 둘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래동화만 예로 들어 보더라도 현실 속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들이 등장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 너무나도 현실적인 우리네 삶의 모습들이 담겨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마꼰도라는, 상상 속에서 탄생한 공간 역시 작가의 삶의 터전이었던 라틴아메리카라는 실존하는 공간으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고, 마꼰도 안에서 벌어지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만 같은 이야기들도 실제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찾아보았지만 아직은 이해의 깊이가 얕아 그 대륙과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고독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대신, 지역적인 관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시대와 장소를 불문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라는 말이 있다.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각자만의 크고 작은 혼자만의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지니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는다. 지금 나의 삶이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해도, 가령 내 삶 가까이에 가족과 친구들이 존재한다 해도, 문득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작가는, 이런 생각이 누구 하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한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비슷한 이름을 지닌 수 세대에 걸친 인물들을 창조해 내, 구체적인 양상은 다를지라도 어차피 쓸쓸하고 종국엔 외로운 혼자만의 시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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