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작은 섬마을, 그곳에 마리오 히메네스라는 이름의 청년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 어부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마리오는 매일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광고 하나를 보게 된다.
“구인 광고를 보고 왔습니다.”
마리오가 버트 랭커스터 뺨치는 미소를 지으며 관리에게 말했다.
관리는 지루해하며 물었다.
“자전거 있나?”
마리오는 얼씨구나 싶었다.
“네.”
관리는 안경을 닦으면서 말했다.
“좋아, 이슬라 네그라를 담당할 우체부 직이야.”
“우연이네요. 제가 이슬라 네그라 옆 포구에 살거든요.”
“그것 참 잘됐군. 하지만 문제는 수신인이 단 한 사람뿐이라는 거야.”
“한 사람뿐이라고요?”
“그렇다니까. 포구 사람들은 모두 까막눈이야. 계산서조차 못 읽으니까.”
단 한 사람뿐이라는 수신인은 다름 아닌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칠레 출신의 저항 시인인 그가 정부와의 갈등 끝에 이슬라 네그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마리오가 문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부가 되기 싫다면 다른 직업은 도대체 언제 구할 거냐는 아버지의 닦달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던 청년은 당장에 우편배달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정말로 한 명뿐이었지만 워낙 유명한 시인이었기에 그에게 배달할 우편물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도착했다. 그리고 마리오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들을 들고 언덕 꼭대기 외딴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지내고 있는 시인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언젠가부터 배달을 가는 그의 가슴에는 네루다 시인이 쓴 『일상 송가』라는 제목의 시집 한 권 꽂혀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시인으로부터 사인을 받은 책을 들고 다니면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꼬시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적당한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책을 들고만 다니다 보니 어느 틈에 시집 한 권을 다 읽어버렸지 뭐야!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두 권이 세 권이 되려 하고, 게다가 시인과도 대화까지 시작하게 되면서 시의 시옷자도 모르던 마리오는 자신 안에 숨겨진 시심(詩心)을 일깨우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리오와 네루다의 우정은 싹을 틔운다.
네루다는 급히 호주머니를 뒤적거려 지폐 한 장을 꺼냈다. 평상시보다 후한 액수였다. 마리오는 돈 때문이 아니라 눈앞에 닥쳐온 이별 때문에 괴로워하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슬픔이 마리오를 돌부처로 만들었다.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시인은 마리오가 드러내놓고 풀 죽어하는 통에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다.
“무슨 일 있나?”
“네?”
“전봇대처럼 서 있잖아.”
마리오는 고개를 돌려 시인의 눈을 찾아 올려다보았다.
“창처럼 꽂혀 있다고요?”
“아니. 체스의 탑처럼 고즈넉해.”
“도자기 고양이보다 더 고요해요?”
네루다는 문손잡이를 놓고 턱을 어루만졌다.
“마리오. 내게는 『일상 송가』보다 훨씬 더 괜찮은 책들이 있네. 그리고 온갖 메타포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건 부당한 일이야.”
“뭐라고요?”
“메타포라고!”
“그게 뭐죠?”
시인은 마리오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저자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ármeta, 1940. 11. 7. ~ )는 칠레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이다. 같은 나라 출신의 세계적인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에 심취해 있던 그는 시인이 등장하는 소설을 집필하고 그것을 영화로까지 만들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고 한다. 사실 파블로 네루다는 작가로서 만큼이나 정치가로서도 유명한 인물. 칠레 공산당에 입당해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인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운명과 희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설득력을 갖춘 시”를 써왔다는 평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인의 문학이 던지는 메시지와 거쳐온 정치적 행보는 그에게 진지하고도 무거운 이미지를 덧입혔지만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소탈하고 사람을 좋아하던 시인의 모습이 반해 그 부분을 부각해 소설 속 네루다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칠레의 민주화를 염원했던 시인의 소망을 담아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소설보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먼저 접했다.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일 포스티노(Il Postino)>라는 제목의 이탈리아 영화였다. 시네마 천국에서 영화기사, 알프레도 역을 맡았던 필립 느와레가 네루다 역을 맡았고 마시모 트로이시라는 배우가 마리오 역을 맡았던 작품으로 원작자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도 제작에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네루다의 시를 읽으며 사랑하는 여인에게 건넬 시를 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어쩐지 아슬아슬해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리오 역을 맡았던 배우는 영화 촬영 당시 심장병을 앓고 있었고 이런 이유로 배우의 얼굴이 분명하게 보이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역을 써가며 간신히 연기를 했다 한다. 하지만 그조차 그에게는 힘겨운 일이었는지 촬영을 마무리하고 열두 시간 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스토리부터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배경 음악까지도 너무나 훌륭해 나는 영화가 담긴 DVD를 사서 몇 번이나 거듭 돌려보았고 감독의 코멘트까지도 샅샅이 살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 영화에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영화만큼 소설도 몇 번이고 읽고 싶어질 만큼 재미있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유머를 섞어 속도감 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쓴 작가의 솜씨가 감탄스럽다. 발랄한 시작에 비해 마지막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난 후 마음을 어둠 속으로 마냥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소설은 아니다.소설과 영화 양쪽 모두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