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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23. 2020

징비록을 읽고 달려갔다

안동 옥연정사에서의 하루



임진년(壬辰年)의 전화(戰火)는 참으로 참혹했다. 수십 일 동안에 한양, 개성, 평양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 팔도가 와해돼 임금께서는 수도를 떠나 파천해야만 했다. 그러고서도 우리나라의 오늘날이 있음은 하늘의 도움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선대 여러 임금들의 어질고도 두터운 은덕이 백성들 가슴 깊숙이 뿌리를 뻗었으므로 백성들의 나라사랑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경에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이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그 잘못을 뉘우치려 경계하여 나무라고 훗날에 환란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징비록을 집필한 까닭이다. 이 징비록에는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간절한 뜻과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빌기 위한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선조 37년 1604년 갑진년 7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은 조선 선조(宣祖)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의 저술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 조선과 왜(일본)의 관계부터 시작해 임진왜란 발발 후 선조의 평양 파천, 명나라의 도움, 그리고 정유재란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안동하회마을이 건너다 보이는
부용대 기슭에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선조 9년인 1576년에 짓기 시작해
10년 만에 완공되었다는
옥연정사(玉淵精舍)다.


낙동강 대홍수로 지금의 하회마을 살림집을 잃은 서애 선생이 가난으로 인해 새집을 지을 돈이 없어 고생하고 있을 때 한 스님께서 재원을 부담해준 덕분에 완공된 건물이라 한다.

유성룡의 호는 서애(西厓)로 서쪽 벼랑이라는 의미란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자신의 호와 같이 벼랑 끝 홀로 선 옥연정사에 터를 잡은 유성룡은 옥연정사의 원락재에서 징비록을 집필했다.


징비록을 읽고 그것이 탄생한 장소에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그곳이 숙박업도 겸하고 있다길래 안동으로 차를 달렸다.


내가 유달리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큰 것도 아니요 유성룡처럼 그곳에서 내 나라의 더 나은 훗날을 도모하려는 뜻도 없었지만 의미 있는 장소에서 하룻밤 머물며 유성룡이 지은, 또는 그에 대해 쓴 책을 읽어보고 싶은 여행자로서의 욕심에 길을 나선 것이었다.



징비록의 집필장소인 원락재



옥연정사는 크게 세 공간으로 구성된다. 서애 선생의 15대손인 분들이 활용하며 찻집을 겸하기도 하는 투숙객들의 아침식사 공간, 과거에 서당으로 쓰였다는 세심재(洗心齋), 그리고 서애 선생이 징비록을 집필했다는 원락재(遠樂齋)다. 우리 가족은 기왕 징비록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까지 온 김에 숙박비는 조금 더 비쌌지만 원락재에 머물기로 했다.






원락재 마루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노송이 묵직하고도 우아한 가지를 드리운 모습과 그 너머의 강, 그리고 강 건너 하회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앉았다 섰다 누웠다 하며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 온 막걸리를 벗 삼아 징비록을 다시 읽어보았다.


한옥에서의 밤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는데 그 까만 밤 우리 가족 셋이서 마루에 모여 앉아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여행부부는 막걸리로 여행이는 야채주스와 우유로 인심 좋게 채운 컵을 부딪치며 조용히 건배를 외치던 시간이 그립다.


하늘의 달은 휘영청 밝았고
그렇게 크고 둥근달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시킨 거 아닙니다. 스스로 취한 포즈입니다. 우리집에서 이런 포즈, 얘만 취할 수 있어요.


옥연정사에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회마을에서 출발하는 나룻배를 타거나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진 섶다리를 건너가는 방법, 그리고 화천서원 주차장까지 간 후 걸어서 1 ~ 2분 거리의 옥연정사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옥연정사에서 산길을 약 10분, 15분만 걸어 올라가면 하회마을의 전경과 마을을 휘감아 도는 강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부용대에도 가닿을 수 있으니 기왕 옥연정사를 찾은 여행자라면 부용대까지 함께 둘러볼 것을 한다.


-2020년 6월, 경상북도 안동-


◇ 여행팁 ◇

● 옥연정사
주소: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솔밭길 86
전화번호: 054-854-2202
웹페이지: http://www.okye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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