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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Mar 25. 2024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박찬기 옮김), 민음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박찬기 옮김), 민음사


18세기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가장 넓게 회자되어 온 독일 출신의 작가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8. 28. ~ 1832. 3. 22.)가 아닐까? 평생에 걸쳐 문인으로서의 활동만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장수를 한 편에 속했을 작가는 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중에서도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은 아마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일 것이다. 괴테가 20대 중반에 발표한 이 소설은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주인공의 운명에 과하게 감정이입을 한 독자들 사이에서 주인공의 의상을 모방해 옷을 입고 심한 경우에는 주인공이 그러했듯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니 작품에 쏠렸던 관심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온전히 작가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이야기는 아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괴테는 알고 지내던 법관의 딸인 샤로테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괴테의 온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청년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도 그녀는 그에게 우정 이상의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한 현실에 절망한 괴테는 샤로테의 곁을 떠나 고향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함께 대학시절을 보냈던 예루살렘이라는 친구가 또 다른 친구의 부인을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을 받다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괴테가 자신과 친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작품이 다름 아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내가 특별히 독문학을 챙겨 읽는 독자도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이 작품을 대 여섯 번쯤 읽었다. 같은 작품을 거듭 접하다 보니 이제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책장을 넘기는 셈이 되어버렸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내가 지루해하는 대신 오히려 점점 더 흥미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의 내가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이 이야기를 만났을 때는 등장인물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굳이 수긍이 될 만한 행동을 하는 인물을 꼽자면 샤로테의 약혼자였던 알베르트 정도였는데 하필이면 주인공인 베르테르의 생각이며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상대방이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약혼자가 있을 뿐인데 그게 스스로 생을 마감할 정도로까지 고통스러울 일인가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회를 거듭해 가며 읽을수록 나는 점점 더 그의 마음이, 그의 절망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의 슬픔에 동조하기까지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놀라기도 했다. 이번에 읽은 버전은 가장 최근(이라고는 하지만 기록을 찾아보니 거의 10년 전)에 읽었던 것과 같은 판본이었는데도 이토록 다른 감정을 선사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책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게 분명하다. 작가의 집필 의도와 독자의 해석은 일치할 수도, 혹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하나의 스토리는 그 둘의 접점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처음의 그 자리에 머무를 테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의 상황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니 한 권의 책은 늘 같은 책이 아닐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 10년 동안의 나의 경험, 그로 인해 싹튼 태도와 생각 등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 똑같은 소설이 이리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니.


작품에서 그려진 시대와 그것을 읽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간극은 무척이나 크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지만 다음번에 같은 소설을 다시 손에 쥐게 될 즈음엔 베르테르의 슬픔에 동조하여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다는 괴테의 시대 독자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부터 10년쯤 후, 같은 작품의 독자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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