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가족 Oct 27. 2020

세계박람회의 추억

Feat. 여수의 밤을 수놓는 빅오쇼


기억 속 화려했던 존재가
초라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몹시 쓸쓸한 일이다.



지난 2012년, 여수 전역을 뜨겁게 달궜던 여수 세계박람회. 흔히 여수엑스포(여수 EXPO)라 알려진 행사가 한창이었을 우리 부부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소노캄 여수로 이름을 바꾼 엠블호텔이 문을 연 직후, 우린 여수 앞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그곳에 머무르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엑스포장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휘젓고 다녔다.


엑스포가 뭐라고. 서울에서 여수까지 KTX를 잡아 타고 한달음에 달려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엑스포라는 행사가 나에게 있어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만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93년으로 이동해보자. 지방 소도시에 살던 나는 외국 문물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다. 책과 티브이, 그리고 몇 년에 한 번씩 낯선 냄새를 풍기며 우리 집을 방문하던 이민을 간 친척들만이 다른 나라와 나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나 같이 간접경험이었다.


그런 나에게
1993년 대전에서 열렸던 엑스포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충격은 엑스포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내 고향 중심가보다도 더 크게 느껴질 만큼 널따란 부지에 신기하게 생긴 건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 건물들 사이 길이란 길은 이번에야말로 진정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진기한 볼거리를 위해 몰려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곳에 있던 건물 중 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을 서고 있었는데 줄이 가장 긴 곳은 뭐니 뭐니 해도 국제관 앞이었다.


미국관, 러시아관, 호주관, 프랑스관 등등. 국제관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며 옷차림, 음식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나에겐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이었다. 흥분에 가까울 정도로 신이 난 나는 두 번에 걸친 방문을 통해, 줄이 너무 길어 결국은 들어가지 못한 미국관과 러시아관을 뺀 국제관의 나머지 부스들을 모두 살펴보고야 말았다. 평생 설 줄을 그곳에서 다 선 것만 같았다.


이제는 신기할 것도 없는 풍경이 되어버린 무빙워크를 처음으로 타고 호주관을 둘러보던 순간, 전통복장을 입고 파키스탄관 앞에 서있던 키가 2미터도 넘는 거인 같은 아저씨 옆에 부끄러운 표정으로 서서 사진을 찍던 순간, 중동 어느 나라의 부스에 계신 분께 더듬거리는 영어로 내 이름 석자를 아랍어로 써달라 부탁한 후 그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생각지도 못했던 진행방향에 놀랐던 기억. 이제는 20년을 넘어 30년을 향해 달려가는 먼 과거의 일이지만 대전 엑스포에서의 기억은 아직도 신기하리 마치 생생하다.


그렇게 대전엑스포는 나에게, 지금은 국제관 구경으로 그쳤지만 나중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그 모든 나라를 직접 방문하고 말겠다는 꿈을 심어주었다.




다시 2012년으로 시계를 돌려 보자. 나만큼이나 세계의 문물에 관심이 많은 이를 평생의 동반자로 얻은 난, 울낭군과 함께 다시금 엑스포장을 찾았다.


이번에도 우리의 주요 타깃은 국제관이었다. 둘이 함께 다른 나라의 전통 음식을 사 먹고 낯선 언어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사는 모습을 가늠해보았다. 대전엑스포의 영향으로 이제는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편해졌고 국제관에 있는 나라들 중 이미 다녀와 본 나라도 많았지만 여전히 신기한 것도 재미있는 것도 많았다.




그렇게 두 번째 엑스포 구경도
추억이 되어가던 즈음,
우리 부부는 부모가 되어
어린 여행이의 손을 잡고
다시금 여수엑스포장을 찾았던 것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엑스포장은 놀라울 정도로 한산했다. 이리저리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여행이를 인파 속에서 놓칠 일 없어 좋긴 했지만 그 낯섦이 너무나도 아쉬워 눈물이 찔끔 날뻔했다.


쓸쓸한 마음을 달랠 겸 여행이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도 제공해줄 겸 우리 가족은 2012년엔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던 빅오쇼(Big-O-Show)를 이번에야말로 보러 가기로 했다.

빅오쇼는 여수엑스포장의 인공호수 가운데 설치된 커다란 동그라미 모양의 설치물을 중심으로 물과 빛과 소리가 어우러져 펼쳐내는 쇼다. 물가에서 진행되는 만큼 물이 관객석으로 튀는 경우가 있단다. 그래서 입구에서 관람객들에게 우비를 나누어 주는데 그걸 입을 때부터 여행이는 물은 언제 맞을 수 있냐며 묻고 또 물었다.




준비되었습니다. 물이여, 나에게로!


그런데 하늘이시여!!! 우리 집 우비소년이 마음의 준비를 그토록 단단히 해뒀건만 안타깝게도 그 날 공연 중에는 물이 단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여행이가 어찌나 아쉬워하던지! 공연을 보는 중간중간 물은 언제 튀냐고 끈질기게 묻던 여행이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물병에 싸 간 물이라도 끼얹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2부로 구성된 빅오쇼는 45분가량 진행된다. 첫 번째 파트는 거대한 O 모양 조형물을 중심으로 음악에 맞춰 진행되는 일종의 분수쇼고 두 번째 파트는 마치 뮤지컬처럼 음악과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형식이었다. 두 번까지는 모르겠지만 기념으로 한 번쯤은 봐도 괜찮을만한 쇼였다. 




오매불망 물 맞기를 학수고대했지만 원통하게 꿈을 이루지 못한 여행이는 공연 중간에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우비까지 입은 그대로 잠이 든 여행이를 둘러업고 엑스포 장을 떠나오는 길. 내 기억 속 화려했던 장소가 초라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쓸쓸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엑스포가 그러했듯 여수 엑스포도 나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었다. 여행이가 훌쩍 자란 어느 날 다시금 우리 셋이 함께 또 다른 엑스포장을 찾아가겠다는 꿈을.


-2018년 6월, 전라남도 여수-


◇ 여행팁 ◇

● 여수세계박람회 빅오쇼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박람회길 1(덕충동)
전화번호: 061-659-2046
운영시간 및 관람요금은 웹페이지 참고
웹페이지: http://www.bigo.expo2012.kr

작가의 이전글 코타키나발루 부럽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