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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Jul 23. 2024

[세계의 도서관 기행]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기고]월간 국회도서관


함께 읽을거리


https://brunch.co.kr/brunchbook/mylibrary



유럽의 북서쪽, 아일랜드 해(海)를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 보고 있는 섬나라가 있다. 아일랜드(Ireland)다. 오랫동안 이 나라의 이름은 가난과 전쟁을 떠올리게 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과거와는 다르다. 물질적 풍요를 일궈낸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적으로도 주목받을 만한 국가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아일랜드의 문화적 뿌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돋아난 것은 아니다. 사회가 안정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먹고 살 걱정을 덜고 나니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 예컨대 예술과 문화에 대해서까지 자연스레 시선이 쏠리게 된 것은 아닐까? 어쭙잖은 추측을 더해보며 오늘은 유럽의 심리적 변방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는 나라, 아일랜드로 떠나 본다.


더블린, 그리고 더블린 사람들


“더블린이라는 도시는 내가 죽은 후에도 나의 마음에 아로새겨져 있을 것입니다(When I die, Dublin will be written in my heart).”


제임스 조이스*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그가 정말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더블린을 향한 작가의 애정은 그가 쓴 작품들을 통해 충분히 드러나고도 남는다. 그리고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오래전 이 세상을 떠난 작가뿐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내가 더블린을 방문하던 날, 수많은 이들이 비에 젖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언뜻 보면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 이 해안도시를 즐기고 있었으니. 인생도 그러하듯 더블린 땅에도 어디 찬란한 햇살만 가득할 수 있을까. 흐린 날은 비와 더불어, 맑은 날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더블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할 것이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비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지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어쩌면 나를 이 먼 곳까지 불러온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를 곳을 향하여.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더블린을 배경으로 『율리시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더블린 사람들』 등의 작품을 썼다.


트리니티 칼리지 캠퍼스 풍경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중심부를 횡단하는 리피강(River Liffey)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긴 역사를 지닌 구시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차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그 거리 한편, 크고 육중해 보이는 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가만 보니 거기에는 조금 더 작은 문이 붙어 있었고 그것은 종종 쩍 하고 입을 벌리며 사람들을 집어삼키거나 토해내고 있었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그 앞으로 다가가 힘껏 문을 열어보았다.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Dublin)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대학교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를 통치하던 엘리자베스 1세가 159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모델로 하여 교육기관을 설립했으며 이후 더블린에 기증한 곳이 바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다. 설립 초기에는 아일랜드의 국교가 성공회였던 까닭에 성공회 교도들만이 이곳에서 수학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1793년부터는 가톨릭 신자들의 입학이 허용되었고 1873년에 이르러서는 성공회와 가톨릭 이외의 종교를 가진 이들도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생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겨우 문 하나를 경계로 두었을 뿐인데 바깥의 거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함빡 담겨 들어온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라도 한때는 푸른 청춘이었을 얼굴들이 누볐을 길을,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늘날의 젊음들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을 캠퍼스를 산책하듯 거닐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The Library of Trinity College Dublin)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문도서관이다. 여타의 고등교육기관들과 마찬가지로 트리니티 칼리지도 하나의 학교 안에서 전공별로 특화된 도서관 여러 곳을 운영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방문한 장소는 올드 라이브러리(Old Library)라 불리는 곳이다.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가장 먼저 생긴 이래 200여 년의 세월 동안 대학 내 유일한 도서관이었다는 이곳은 1592년 문을 연, 다시 말해 트리니티 칼리지와 시작을 함께 한 곳이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단연 켈스의 서(Book of Kells)로 트리니티 칼리지를 방문하는 이들 대부분의 목적이 다름 아닌 이 귀한 책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켈스의 서 © The Board of Trinity College Dublin


올드 라이브러리에서 만나는 아일랜드 최고의 보물, 켈스의 서

올드 라이브러리의 방문자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이 켈스의 서다. 9세기에 만들어져 17세기 후반 이래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켈스의 서는 아일랜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보물인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화려한 그림과 더불어 그림에 버금가도록 아름다운 캘리그래피가 매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이 책에는 예수의 삶을 다루는 신약의 네 개 복음(마태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가 복음, 요한 복음)이 담겨 있으며 워낙 아름답게 완성된 덕에 사람이 아닌 천사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책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은 9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나 섬에 살던 수도승들이 만들었다는 설이다. 바이킹의 잇단 침략으로 인해 고통을 받던 그들이 아일랜드 켈스 지역에 자리한 자매 수도원을 피난처로 삼았고 그곳으로 옮겨가 책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제작에 참여한 것은 18세, 혹은 그보다도 나이가 어린 수도승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송아지 185마리의 가죽으로 만든 귀한 피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옮겨 적는 일은 체력은 물론 시력까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모국어가 아닌 라틴어로 쓰인 복음서를 옮겨 써야 하는 어려움까지 있었으니 완성본에 오탈자, 또는 같은 페이지가 거듭 등장하는 등의 오류가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을 책의 아름다움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잡아끌고 있다. 켈스의 서에 숨겨진 상징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등장하는 뱀은 껍질을 벗고 재탄생한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고 주요 페이지마다 그려진 공작새는 육신이 분해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인해 불멸을 상징하는 식이다. 이 책을 보기 위해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 매년 100만 명에 이른다니 과연 작지만 강한 책이라는 매체가 지닌 힘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트리니티 칼리지 올드 라이브러리의 롱 룸 Gillian Whelan, © The Board of Trinity College Dublin
올드 라이브러리의 서가에는 도서관이 보유한 가장 오래된 도서 약 20만 권이 보관되어 있다


보는 순간 감탄사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 롱 룸

켈스의 서를 향해 감탄사를 내뱉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다시 한번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대상과 마주하게 된다. 롱 룸(Long Room)이라 불리는 공간으로 올드 라이브러리의 중심과도 같은 이다. 대략 65미터에 이르는 길쭉한 회랑 형태를 한 롱 룸엔 양쪽으로 늘어선 서가를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며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아이작 뉴턴 등 고금을 아우르며 이름을 떨친 이들의 대리석 흉상이 배치되어 있다. 반원 형태로 둥글게 솟은 천장과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2층 형태의 서가, 그리고 새하얀 빛깔 흉상들의 조화가 참으로 우아하고도 장엄하게 다가왔다. 서가에는 도서관이 보유한 가장 오래된 도서 20만 권이 보관되어 있다. 귀하게 다루어져야 할 오래된 책들이지만 필요시 사전에 요청을 하면 도서관 내 별도의 공간에서 직접 살펴볼 수도 있다고 한다.


고서(古書)와 더불어 롱 룸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보물은 브라이언 보루의 하프(Brian Boru Harp)다. 10세기부터 11세기 초까지 아일랜드를 다스렸던 브라이언 보루 왕의 이름을 땄지만 사실은 그 시대보다 몇 백 년 후인 15세기경에 만들어진 악기로 추측된다. 중세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하프라는 사실 이외에도 이것의 존재가 중요하게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 아일랜드의 역사에 있어 음유시인들의 역할은 매우 긴요했었다고 한다. 그들이 하프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행위는 단순히 즐거움을 전하는 것만이 아닌, 자칫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브라이언 보루의 하프는 아일랜드의 국가 상징으로 채택되었으며 전 세계인으로부터 널리 사랑받고 있는 기네스 맥주의 로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중 버클리 도서관


문학의 도시 더블린, 사랑할 수밖에 없는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한때는 유럽의 변방처럼 느껴지던 곳이지만 알고 보면 더블린은 세계적인 문학가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다. 우리에게는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너선 스위프트,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무엘 베케트, 어쩌면 가장 유명한 아일랜드 작가일지도 모를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공포소설인 『드라큘라』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브람 스토커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분모는 바로 트리니티 칼리지. 책이 있는 어떤 공간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작가들과 비록 시간은 달랐으나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나니 그들이 책에 파묻혀 시간을 보냈을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기고처]월간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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