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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Jun 04. 2024

[세계의 도서관 기행]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도서관

[기고]월간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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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퀴즈로 가볍게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아라비아 반도 남동쪽 끝에 자리 잡은 나라로 북서쪽으로는 아랍에미리트, 서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남서쪽으로는 예멘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의 이름은 무엇일까? 이 정보만으로 답을 맞히기 어렵다면 여기, 몇 가지 힌트가 더 있다. 공용어는 아랍어, 국교는 이슬람교이며 수도는 무스카트(Muscat).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힌트는 바로 이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명이 알파벳 O자로 시작하는 국가. 자, 여기까지 들었다면 머릿속에 답이 떠오르는가?


그렇다. 정답은 오만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정식 이름은 오만 술탄국(Sultanate of Oman)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국명이 알파벳 O자가 아닌 S자로 시작한다고 해야 옳다. 여하튼 요점은 오만이라는 나라가 약간의 허점이 있는 퀴즈를 통하지 않고서는 떠올릴 일이 드문, 아직까지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라는 것. 오늘은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베일에 싸인 나라, 하지만 모르고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나라, 오만으로 떠나 볼까?


전통을 간직한 항구도시, 무스카트

세계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중동의 도시로 두바이를 꼽는 데 주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수도인 아부다비에 이어 아랍에미리트 제2의 도시인 두바이는 미래 세계를 연상시키는 신기한 디자인의 고층 건물들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또는 자동차로 약 다섯 시간 떨어진 거리에 전통적인 중동 지역의 풍경을 간직한 대도시가 있다. 오만의 수도인 무스카트다. 호르무즈 해협과 아라비아해를 거쳐 인도양으로까지 나아가기 쉬운 곳에 터를 잡은 이 항구도시는 중동지역과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전략적 위치에 자리한 까닭에 오랜 세월 동안 외세로부터 침략을 받기도 했고 반대로 자신들이 외부 세계를 침략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오만은 이웃나라인 아랍에미리트와는 다르게 중동지역의 전통적 삶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은 수도이자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무스카트도 예외는 아니다.


두바이에서 살던 시절, 육로로도 어렵지 않게 오갈 수 있었던 오만에 몇 차례 여행을 다녀왔다. 충동적으로 이뤄졌던 첫 번째 방문에서 오만이라는 나라와 오마니*들의 솔직하고 순박한 모습에 마음이 끌려 이후로도 거듭 국경을 넘게 된 것이었다. 중동지역 여타 국가들에서 그러하듯 오만 국민 대부분도 이슬람교를 믿지만 이들은 이슬람교 신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나 시아파가 아닌 이바디파 무슬림이다. 지금의 오만 땅에서 시작된 이바디파는 온건한 이슬람을 표방하며 다른 종교를 믿을 자유를 보장하는 등 자신들과는 다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도 관대한 편이라고 하는데 무스카트에 그들의 믿음을 살펴볼 수 있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모스크가 있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Sultan Qaboos Grand Mosque)가 바로 그곳이다.


*오마니(Omani): 오만 사람


술탄 카부스, 사후에까지 추앙받는 전 국왕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언급해야만 할 인물이 있다.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Sultan Qaboos bin Said Al Said)다. 국명에 술탄국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오만은 술탄이라 불리는 국왕이 다스리는 전제군주제 국가다. 오만의 호텔이나 상점 등 대부분의 장소에는 이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은 두 남자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그중 한 명은 지금의 술탄이고 다른 한 명은 50년 간 오만을 다스리다가 2020년에 작고한 선대 술탄,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로 사후에까지 자국민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후 1960년대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당시 술탄이었던 아버지의 보수적인 정치에 반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1970년, 스스로 왕좌에 앉았다. 즉위 후 그는 전통을 지켜가면서도 오만을 현대화시켜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나라 전역에 포장도로를 건설하고 통신 인프라를 확충하고 학교와 병원 등의 시설을 마련한 일을 꼽을 수 있다. 교육과 문화에 특히나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오만 국민들이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단다. 오늘 우리가 둘러볼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도 술탄 카부스가 그렸던 비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장소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샹들리에와 두 번째로 큰 카펫을 만나볼 수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샹들리에. 제작에는 24K 금으로 도금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60만 개와 1,122개의 전구가 사용되었다


무스카트의 보물,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서로 닮은 하나의 모습으로 수렴되어 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무스카트는 무스카트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주변 환경과 유사한 색깔을 택한 건물들은 이 지역의 전통적인 문양과 디자인을 뽐내며 이국적인 풍광을 완성한다. 그래도 규모 있는 도시이고 한 나라의 수도인데 모던한 디자인의 고층 건물 밀집 지역이 한 군데쯤은 있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갈 줄이야. 낮은 건물들이 주를 이루는 무스카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지상 90미터 높이의 미나레트*를 자랑하는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술탄 카부스의 주문으로 1993년 착공해 2001년에 문을 연 이곳은 종교적인 기능만을 지닌 곳이 아닌, 이슬람 세계를 아우르는 과학과 지식의 원천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세워진 공간이라고 한다. 이슬람과 중동, 그리고 오만의 건축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모스크는 무려 3만 톤에 이르는 인도산 분홍빛 사암과 오만에서 채석된 화강암, 그리고 흰 대리석이 사용되어 지어졌다고 한다. 416,000제곱미터의 부지에 지어진 모스크답게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도 어마어마한데 가장 큰 기도실에 6,500명, 여성 전용 기도실에 750명, 외부 공간에 8,000명 등을 포함, 한 번에 최대 2만 명까지를 수용할 수 있단다. 과연 오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종교시설답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는 실내 외 곳곳의 미적인 요소나 분위기가 두루 아름답지만 특히나 인상적인 공간은 두 곳이었다. 첫 번째는 가장 큰 기도실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공간 자체의 크기에 한 번 놀라고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지름 8미터, 천장에서부터의 길이 14미터, 무게는 8.5톤에 이른다는 이 샹들리에를 만들기 위해 24K 금으로 도금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60만 개와 1,122개의 전구가 사용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은 1위 자리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였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샹들리에 주변에는 같은 디자인의 절대적으로는 작지 않지만 상대적으로는 작은 샹들리에가 서른 개 남짓이나 더 매달려 있어 방문자들을 황홀경에 빠뜨리고 만다. 이번에는 눈을 돌려 바닥을 바라보자. 그곳에 또 다른 놀라운 광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4,200 제곱미터 크기의 기도실 바닥에 깔린 카펫이 한 장의 거대한 카펫이기 때문이다. 무게만 21톤이라는 이 작품이란 여성 600명이 4년에 걸쳐 손으로 짠 것이라고 하는데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셰이크 자이드 모스크에 깔린 것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카펫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미나레트(Minaret):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에 딸린 첨탑. 아랍어로 ‘등대’라는 의미를 지닌 이 건축물에서는 하루 다섯 차례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육성 공지)이 울려 퍼진다. 일반적으로 미나레트의 개수는 그것이 속한 모스크의 중요도와 신자 수 등을 나타낸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에는 다섯 개의 미나레트가 있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도서관 내외부 풍경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도서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또 다른 공간은 모스크 내부에 자리한 도서관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중동지역에서 거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이태원에 있는 모스크를 호기심에 한 번 다녀와 본 것을 제외하고는 모스크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을 볼 일도 방문할 일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곳이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에게 있어 신성한 공간, 기도의 공간이라는 사실 이외에 또 다른 역할을 지닌 곳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에게 있어 모스크는 예배 장소일 뿐만이 아니라 신자들의 생활을 관장하는 무슬림 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단다. 이러한 이유에서 모스크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 또한 지니고 있다. 도서관은 이 기능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이며 따라서 모스크 내부에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 그리 흔치 않은 일은 아니라고 한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도서관이 교육기관으로서의 모스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하더라도 이곳이 단지 이슬람교 신자들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은 아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라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총 3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에는 종교 이외에도 법률, 과학, 역사, 철학, 심리학, 언어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 2만 여 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세미나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과 개인 학습실도 마련되어 있다.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프린터, 복사기 등도 비치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도서관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이 도서관도 마찬가지로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도서관은 무스카트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 하나란다.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도서관을 이용 중인 오마니들의 모습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 도서관 풍경. 타국의 여느 도서관과 다를 바 없다


한국과 오만은 올해로 수교 5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974년 관계를 맺은 이래, 한국은 오만의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고 오만은 한국에 천연가스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등 두 나라는 상호 협력을 유지해 왔다. 경제적인 면에 비하면 이외 분야에서는 아직 발전의 가능성이 큰 관계지만 그렇기에 두 나라 간 미래는 더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한국과 오만 사이에 문화와 관광 분야에서도 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져서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와 모스크 내부의 도서관에 다녀와 보게 되기를, 그리하여 우리와는 다른 종교와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을 지닌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는 기회를 누리기를 바란다.


[기고처]월간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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