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가족 Apr 01. 2024

[세계의 도서관 기행]사이프러스 대학교 도서관

[기고]월간 국회도서관


함께 읽을거리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Sandro Botticelli, Uffizi Gallery


천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왔을까? 파도가 잦아든 바닷가에 커다란 조개 하나가 도착해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새하얀 손과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몸의 주요 부위를 가린 여인이 서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프로디테. 올림포스 열 두 신 중 한 명이자 미(美)와 사랑을 상징하는 여신이며 베누스, 혹은 비너스라 불리기도 한다. 여신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립한다. 최고신인 제우스의 딸이라는 설, 그리고 태초의 신 중 하나이자 하늘을 상징하는 우라노스의 잘린 성기에서 흘러나온 정액이 바닷물과 섞여 만들어진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설. 둘 중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에 ‘거품에서 태어난 여인’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후자에 힘이 실리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아름다운 여신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겨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도 그중 하나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림의 배경이 된 섬, 사이프러스*로 여행을 떠난다.

*사이프러스(Cyprus): 동지중해에 위치한 섬나라로 키프로스라고도 불리며 정식 이름은 사이프러스 공화국(Republic of Cyprus)이다.


남 사이프러스 영토에서 바라본 북 사이프러스 방향 니코시아의 풍경. 저 멀리 산에 북 사이프러스 국기가 새겨져 있다


분단의 역사를 지닌 지중해의 섬나라

지중해의 섬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운 바다와 그림 같은 풍경이 어우러진 휴양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동지중해에 자리한 사이프러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강대국들에 의해 분단된 아픈 역사를 지닌 땅이기도 하다. 북쪽으로는 튀르키예,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레바논, 남쪽으로는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잇는 시나이 반도를 두고 있으며 지리적으로는 서아시아에 가까우나 역사적으로는 남부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이곳.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거치는 과정에서 그리스인과 튀르키예인들이 모두 이 섬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양측의 문화와 종교의 차이는 분쟁을 촉발시켰고 오늘날까지도 국토가 남북으로 나뉘어 대립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국제적으로 승인된 합법정부는 사이프러스 공화국(Republic of Cyprus) 하나뿐이지만 튀르키예의 영향권에 있는 북부 지역은 북사이프러스 공화국(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존재하며 아직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두 지역 간 유혈분쟁이 멈춘 상황이라고는 하나 분단국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에 사이프러스로 향하는 발걸음에 긴장이 실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니코시아, 북 사이프러스의 수도이자 남 사이프러스의 수도

사이프러스는 특히 유럽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출생지로 알려진 페트라 투 로미우(Petra tou Romiou)의 유명세는 논외로 하더라도 섬 동쪽에 자리 잡은 리조트 지역이나 서쪽의 유적 지구 등도 연중 방문객들로 붐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곳은 수도인 니코시아(Nicosia)였다. 내륙에 위치한 이 도시는 북 사이프러스의 수도인 동시에 남 사이프러스의 수도다. 신기하게도 도심에 국경이 있으며 그곳을 거쳐 두 개의 사이프러스를 도보로 오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관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계획대로 우리는 니코시아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냈다. 도시 곳곳을 둘러보았고 난생처음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멋진 도서관까지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사이프러스 대학교

사이프러스는 전체 면적이 한국의 약 1/10에 불과할 정도로 크지 않은 나라다. 그렇지만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 온 정부 덕분에 국토 크기에 비해 많은 대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유학생 유치에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한 나라,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두 나라의 수도답게 니코시아에는 각종 기관들이 밀집되어 있다. 교육기관도 마찬가지여서 대학교 또한 이 도시에 여럿 터를 잡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1989년에 설립된 사이프러스 대학교(University of Cyprus)는 역사가 아주 길지는 않지만 나라 전체를 통틀어 세계적으로 가장 인정받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선정된 곳이라 했다. 우리가 니코시아에서 방문했던 도서관 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곳이 바로 이곳, 사이프러스 대학교에 있었다.


사이프러스 대학교 도서관-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

니코시아 도심에서부터 운전대를 잡고 남동쪽 방향으로 십오 분쯤 달렸을까? 도시가 끝나고 자연이 드러나는 위치에 사이프러스 대학교의 새로운 캠퍼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향한 곳은 사이프러스 대학교 도서관으로 정식 이름은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Stelios Ioannou Learning Resource Center)다. 사이프러스 출신의 성공적인 사업가이자 자선가인 스텔리오스 이오아누가 세상을 떠난 후 아내인 엘리 이오아누는 남편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사이프러스 국내외에서 자선사업을 펼쳤다고 한다. 이의 일환으로 800만 유로가 사이프러스 대학에 기부되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다. 이곳은 유럽지역개발기금(ERDF: European Regional Development Fund)으로부터 2,300만 유로의 지원을 추가로 받아 완공되었으며 연구와 혁신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동시에 유럽을 대표하는 도서관 중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은 사이프러스 대학교 주변 풍경을 도서관 디자인에 담아 냈다고 한다


장 누벨이 지은 자연을 담은 도서관

도서관 안팎의 풍경을 사진으로 먼저 만난 후 찾아간 길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코앞에 도착해서까지도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약 15,700 제곱미터 면적에 자리 잡은 5층짜리 건물은 외부에서 볼 때 마치 커다란 가림막을 덮어 씌워 놓은 것처럼도 보이는 까닭에 혹시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의 건축을 맡은 이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다. 후원자 측에서 그에게 이 프로젝트를 맡길 것을 주문했다는데 리움미술관의 현대미술전시관 건축을 맡기도 했던 장 누벨은 사이프러스 대학교 주변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도서관 건물을 디자인했다 한다. 설명을 듣고 난 후 주변을 둘러보니 캠퍼스를 둘러싼 들판이며 낮은 언덕, 그리고 키 작은 건물들이 머리 위에 이고 선 푸른 하늘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실험적인 디자인이 아닌가! 거장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도서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는 기본적으로 사이프러스 대학교에 적을 둔 학생, 교수, 연구자들을 위한 도서관이지만 소속은 물론 국적과도 상관없이 외부인 그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자인 우리 일행도 입구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간단히 등록을 마친 후 열람실 내부로 입장했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빛이 중앙 원뿔 기둥의 표면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밝은 빛을 흩뿌리는 바람에 도서관 내부는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 열람실 풍경


일면 기이하게도 느껴지던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열람실 중앙에는 커다란 동그라미 형태로 비어 있는 공간이 있고 그 둘레로는 마치 동심원을 그린 듯 점점 퍼져나가는 모양새로 좌석과 서가가 배치되어 있었다. 중앙을 차지한 구멍 가운데에는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솟은 거대한 원뿔 기둥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돔 형식을 따 만들어진 둥근 천장을 통해 외부의 빛이 도서관 안쪽으로 고스란히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인공적인 조명이 과하게 설치된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유입된 빛이 중앙 원뿔 기둥의 표면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밝은 빛을 흩뿌리는 바람에 도서관 내부는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사이프러스의 건축적 기준이 될 도서관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한 열람실에서는 더욱 놀라운 광경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를 띤 공간의 둘레가 모두 창문으로 이루어졌기에 좌석에 앉아서도 창을 통해 들어온 도서관 바깥의 풍경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록을 머금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까마득하게 먼 곳으로는 희미하게 산이 보이기도 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 이것은 어딘가에서 본 장면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뒤늦게야 장 누벨이 사이프러스 대학교의 주변 풍경을 담아 이 도서관을 지었다는 게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 기이하다고까지 생각되었던 도서관의 외부가 사실은 이 풍경을 담은 것이었구나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는다.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는 건축적인 관점에서 사이프러스의 기준이 될 것을 목표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도서관 내부를 샅샅이 둘러보고 나니 그제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한 열람실에서는 좌석에 앉아서도 창을 통해 들어온 도서관 바깥의 풍경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다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는 건축적인 관점에서 사이프러스의 기준이 될 것을 목표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는 최대 100만 권의 인쇄본과 더불어 19만 건 이상의 전자 도서, 3만 건 가량의 전자 및 인쇄 저널, 그리고 180개 이상의 데이터베이스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된 건물에는 도서관뿐만이 아니라 정보시스템 서비스 센터, 교육 기술 지원 센터, 언어 센터가 함께 둥지를 틀고 있고 다양한 쓰임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원형 극장부터 컴퓨터실, 강의실, 멀티미디어 연구실 등의 공간도 갖추고 있다.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900석 규모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도서관을 방문했던 것은 평일 낮 시간이었으며 상당히 북적이고 있었다.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그 사이에 끼어 앉아 책을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그곳을 함께 방문했던 나의 어린 아이에게도 책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나 보다. 도서관을 나서는 길,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대학교에 가면 어떤 공부를 할 수 있고 자신이 무엇을 공부할지는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냐고. 나의 짧은 설명을 듣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꼬마의 모습을 바라보니 낯선 나라에서 짧은 일정으로 머물렀을 뿐이지만 사이프러스 대학교에서 만난 스텔리오스 이오아누 학습 자료 센터가 아무래도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고처]월간 국회도서관


작가의 이전글 [세계의 도서관 기행]폴란드 과학 아카데미 도서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