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가족 Nov 04. 2020

가을이 되니 그리워져요

친정엄마와 함께 한 콜로니얼 윌리엄스의 가을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
27시간 동안 진통을 하던 중이었다.


오래도록 사용해온 치약 튜브에서 마지막의 마지막의 맨 마지막에 남아있던 쥐똥만한 치약 한 덩어리를 간신히 짜내는 심정으로 잠시 쉬었다 힘을 주고 또 잠시 쉬었다 힘을 주면서도 이젠 한계다, 이게 과연 될까 싶던 순간 내 발치에 있던 울낭군이 걱정이 되었는지 가능하겠냐고 묻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질문을 들은 담당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걸 본 순간, 아,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니 신기하게도 힘을 조금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여행이는 결국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출산을 준비하던 중, 나는 어디에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연분만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은, 엄마 배를 가르고 그 사이로 쉽게 쏙 빠져나온 제왕절개 출신(?) 아이들에 비해, 태어나려고 용을 쓴 기억이 무의식에 살아 있어 나중에 세상을 살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더 뚝심 있게 일을 해나간다고.


늘 시작은 늦지 않지만 끈기가 부족한 내 치명적인 단점을 잘 알기에 나는 여행이에게 그 무엇보다 끈기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마음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출산을 하면서 한껏 센티멘털해진 나는, 여행이에게 그 선물을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한동안 우울했었다.


안 그래도 낮던 혈압이 제왕절개 수술을 하면서 위험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져 울낭군은 타지에서 홀아비가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퇴원을 했는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출산 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부기가 전혀 빠지지 않아 혼자서는 다리를 위로 단 1cm도 들어 올리지 못하고 걸음을 걸을 때도 보폭이 마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그것과도 같은 상태가 이어졌다. 앞으로의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억울한 마음에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다행히 한 달이 지나면서 부어올랐던 몸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부끄럽지만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 큰 딸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
낯선 나라까지 날아와
세 달 동안이나 매일같이 고생해주신
친정엄마 덕분이다.


아, 물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 글로접해오던 말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진리로 깨닫게 해 준 여행이와 착한 나의 동반자, 울낭군, 그리고 엄마를 우리 가족에서 양보하고 한국에서 오랜 기간 홀로 계시며 고생하신 아빠께도 감사하긴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친정 엄마를 향한 고마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생활하시느라 몹시 답답하고 힘드셨을 텐데도 엄마는 특유의 명랑함으로 무장한 채 씩씩한 에너지를 주변에 나누어주셨다. 오죽하면 나나 울낭군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던 여행이도 제 외할머니 품에만 안기면 울음을 뚝 그쳤을까. 그것이 너무나도 신기해 나는 친정 엄마가 여행이를 는 방법을 자세히 살핀 후 왼팔은 이렇게 오른팔은 저렇게 이 속도로 슬슬 흔들흔들하면서 내 딴에는 똑같이 따라 한다고 따라 했지만 여행이는 귀신같이 외할머니의 손길과 외할머니가 아닌 사람의 손길을 구분해내곤 했다. 


지만 누적되는 피곤에 장사는 없는 법. 하늘이 내린 긍정녀, 우리 엄마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가시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니  달을 매일같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산후우울증 초기 딸내미와 공부하느라 바쁜 사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911 데시벨로 하루에도 몇 번씩 울어재끼는 손주를 위해 밥을 짓고 살림을 챙겨주신 엄마께 조금이나마 숨 쉴틈을 선물하고 싶었다. 친정 엄마는 우리 부부에게 본인은 놀러 온 게 아니니 집에서 몸조리나 잘하자 하셨지만 엄마께 멋진 풍경을 한 번은 보여드리고 싶었다.




안 가시겠다는 엄마를 설득해서 모시고 간 곳은 우리 집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의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Colonial Williamsburg)였다.


우리 부부가 연간회원권을 덜컥 끊어놨을 정도로 참 좋아하는 곳이라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은 엄마를 모시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유럽인들이 미국에 정착하던 1699년부터 1780년까지 식민지 버지니아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오늘날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박물관이 되었다. 당시에 지어진 집과 관공서 등의 건축물이 복원되어 있을 뿐 아니라 18세기 의상을 입고 당시 사람들이 종사하던 일을 직접 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만나볼 수 있는, 한마디로 버지니아를 방문한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역사 도시이자 관광지인 것.

가을로 접어든 도시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바람은 찼고 두더지 굴에서 내내 육아만 하듯 지난 한 달 여를 보낸 우리는 피곤했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계획했던 것만큼 이 멋진 곳을 엄마에게 속속들이 소개해 드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붉게 물든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를 친정엄마와 더불어 산책하는 기쁨은 컸다. 생후 60일 여행이 인생 최초로 호텔에서 잔 것도 기념할만하다.




가을이 깊어가니
온통 붉게 물들었던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를
친정 엄마와 함께 걷던 날이 그리워진다.


씨도둑은 못한다고,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집 꼬마는 벌써부터 제 아빠와 마주 앉아 트로이 전쟁을 논하고 임진왜란을 논하고 지도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기는 어디 어디에 가보고 싶으니 데려가 달라는 말을 한다. 그 폼을 보아하니 여행이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자라면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에 꼭 다시 한번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여행에 친정 부모님이 빠질 순 없다. 지리학을 전공하셨고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우리 엄마. 다음번에는 반드시 친정 엄마와 엄마의 짝꿍, 우리 아빠가 피곤하시지 않게끔 효녀 노릇 좀 하다가 콜로니얼 윌리엄스에 모시고 가고 싶다. 생각만 효녀, 말로만 효녀는 이렇게 오늘도 미래의 여행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 여행팁 ◇

●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Colonial Williamsburg)
주소: 101 Visitor Center Drive Williamsburg, VA, USA
전화번호: +1 888 965 7254
웹페이지:  https://www.colonialwilliamsburg.org/
작가의 이전글 나의 할머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