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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Nov 07. 2020

엄마가 되니 용감해지고 엄마가 되니 겁쟁이가 된다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며


뒤통수에 '1초 후에 잠들기 스위치'가 달려 있는  마냥, 나는 언제 어디서라도 머리 누일 곳만 있으면 단잠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곁에 있는 사람 당황스러울 정도로 몹시 빠른 속도로. 가끔 내가 울낭군에게 무언가를 묻고는 그에 대한 답을 다 듣기도 전에 잠들어버릴 때면 남편은 말을 하다가 나 지금 뭐하냐, 벽에 대고 말하고 있냐고 느낀 적도 있단다. 아, 내가 뭐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이 정도로 수면욕구에 충실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이야기.


그런데 그런 내가 지난 2주 동안은 잠을 푹 자지 못했다.


특히 이번 주는 내내 그랬다. 잠을 자다가도 무서운 꿈 때문에 화들짝 놀라 깨 보면 새벽 네시 경. 그때부터는 아무리 간절하게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무서운 꿈이란 주로 이런 것이었다. 여행이가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 그런데 그곳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이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어리둥절하다. 여행이 혼자서만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데다 같은 반 다른 아이들은 이미 단짝이 있는 상황. 수업 시간도 괴롭지만 쉬는 시간도 힘든 건 매한가지다. 매일 이 새로운 어린이집에서의 생활이 힘겨우나 여행이는 의젓하게 혼자 견뎌보고 적응해보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내가 몰래 보고는 있는데 어떻게 도와줄 방법은 없다. 그것이 너무 마음 아프고 미안해서 괴로워하다 깨 보면 늘 캄캄한 새벽이다.


여행이가 정규 교육을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리라는 결정이 난 것은 약 2주 전의 일이다.


대한민국의 교육부 웹페이지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던 나는 내년 1월부터 우리가 살게 될 나라의 교육부 웹페이지에서 그들이 공개해 놓은 학교평가 결과를 참고해 여행이가 다닐 수 있을만한 학교를 몇 군데 추려냈다. 그리곤 각각의 학교 웹페이지에 소개된 교육 방향과 커리큘럼, 방과 후 프로그램과 시설 등을 살펴보고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학교에 직접 연락해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진행된 스쿨투어에 참여하고 울낭군과 의논해 어느 학교에 지원할지를 정했다.

우리가 지원한다고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길지만 굳이 구구절절 복기하고는 싶지는 않은 절차를 거쳐 몇 가지 지원 서류와 증빙서류들을 제출하고 동영상을 찍어 보내고 입학 시험비 조로 십오만 원가량 되는 돈을 지급한 후에야 학교 측은 우리가 제출한 서류와 영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엊그제 저녁에 나왔다. 다행히 합격이었다.


또다시 지원서류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어리둥절한 여행이를 앉혀 놓고 밤늦게까지 이것저것 준비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면서도 요즈음 매일 밤마다 나를 무섭게 만들던 상황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하다.

아직 교육의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엄마의 객기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아니, 적어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학원, 학습지 모두 건너뛰고 매일 어린이집에서 놀고 온 아이와 놀이터로 직행했다. 여행이가 자기도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길래 올해 처음으로 어린이집과 놀이터 코스 사이에 태권도 학원을 끼워 넣긴 했지만 요는, 앞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날이 창창한 여행이가 지금만큼은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 며칠 처음으로 여행이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경험자 분들께 여쭈니 아이들은 처음에만 고생이지 금방 적응하고 말도 빨리 배운다고, 걱정하지 말라고들 말씀하셨지만 그럴 것을 알면서도 그 처음의 며칠, 몇 주가 혹시나 여행이의 마음에 상처로 남으면 어쩌나 엄마 마음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이다.


엄마가 되니 때로는 용감해지고
때로는 겁쟁이가 된다.


여행이의 학교라는, 어찌 보면 가장 큰 산을 넘었으니 이제 지금 살고 있는 집 정리하고 가서 살 집 찾고, 처분할 짐과 가져갈 짐을 나누어 각각 처리하고, 추가로 가져가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알아본 후 구매하고, 자동차는 가져갈지 말지 결정해 처리하고, 주변 분들에게 인사만 드리면 준비 끝이네? 그리고 틈틈이 여행이 영어 공부시키고?


이사 준비가 힘들다고 잠시 징징거려 봤지만 사실,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결혼 이후의, 10년에서 일 년 남짓 부족한 기간 동안 우리는 이사를 여섯 번이나 했다. 그중 두 번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국제이사였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가 스트레스로 느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신혼이었을 때는 둘이라 몸도 가벼웠고 여행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어차피 짐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옮겨주시니 우리는 이랑 신분증, 그리고 신용카드만 잘 챙기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올초, 1년을 예정으로 서울에서 지금의 보금자리로 옮겨오면서부터 이사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은 구하면 되고 짐은 옮기면 되지만 어려운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마음이었다.


우리 부부가 맞벌이를 하느라 만으로 한 살이 되기도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닐 수밖에 없던 여행이는 같은 어린이집을 무려 4년 반이나 다녔다. 내가 농담 삼아, 그 어린이집에서 여행이가 원장 선생님 다음으로 고참이라고 말하고 다녔을 만큼 여행이는 그곳에 익숙했다.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공간들까지도. 그런데  아빠의 발령과 새 근무지에서의 근무 개시일까지의 기간이 매우 짧아 나도 급하게 회사에 휴직을 신청했고 여행이도 급하게 서울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 코로나가 확산되던 초기, 다들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때라 정든 어린이집에 인사도 제대로 못 전하고 온 것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낯선 도시에 내던져진 여행이는 매일 아침 새로운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면 나에게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만화영화의 주제가를 틀어달라고 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종종, 정들었던 예전 어린이집 친구들과 선생님께 마지막 등원하는 날 전해주려고 썼다는 편지를 들여다봤다. 그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우리는 어느덧 익숙해진 이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어린이집과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새로운 안녕을 고할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여행이는 이 편지들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이전의 어린이집을 떠나왔다. 이걸 볼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카페 죽순이였던 나조차 코로나 때문에 집 앞 카페에도 거의 안 가고 아니, 못 가고 있던 올해가 어느덧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요 며칠은 코로나고 뭐고 집에 있으면 두통이 너무 심해 내가 좋아하는 카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찻집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이틀 연속으로 다녀왔다. 오가며 오픈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가 몇 달 전 문을 열었을 때 울낭군과 가보고 여기 참 좋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한옥에서 나는 나무 냄새는 두통을 조금이나마 사그라들게 해 주었다. 정성스레 찌거나 덖은 차는 맛도 향도 은은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맛이 너무 심심한 것 같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가끔씩은 이런 건강한 맛이 필요한 시간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둥글둥글한 생김새만큼이나 보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달항아리가 곳곳에 자리한 풍경도 복잡하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왠지 오늘도 어제 갔던 그 카페에 다시 한번 아가 힘을 얻고 싶어 진다. 우리 가족, 이번 이사도, 아니 이번 여행도 잘할 수 있겠지? 힘내자, 우리!

-2020년 11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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