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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Nov 12. 2020

우리, 아프지 맙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는 처음 하는 엄마, 아빠 노릇이 힘들고 아이는 처음으로 그 자리에  몸만 큰 어른이들이 우왕좌왕 어설프게 부모 노릇 하는 장단에 맞추느라 아이대로 힘이 든다. 그래도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다 보면 부모도 아이도 서로에게 맞춰 사는 노하우가 제법 쌓이고 관계는 편안해지게 마련. 


하지만 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부모가 변함없이 당황하는 순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아이가 아플 때라 하겠다.


몇 년 전 추석 연휴를 맞이해 우리 가족은 일본 큐슈 지방을 여행했다. 후쿠오카로 대표되는 북큐슈부터 남큐슈의 가고시마까지 동서남북으로 꽤나 부지런히 돌아다녔는데 그 여행에서 방문했던 미야자키(宮崎/ Miyazaki)에서 우리 부부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렸다. 사건은 어느 밤늦은 시각,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아침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좋았던 여행이가 밤이 되자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도 몇 차례나.


사실 나나 울낭군은 감사하게도 여행이를 키우며 아이의 건강이나 식습관에 대해 걱정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일단 여행이가 한 끼에 밥 두 공기씩을 기본으로 뚝딱 해치울 정도로 식욕이 흘러넘쳤고 특별히 가리는 음식 없이 세 끼 식사와 간식까지도 참 잘 먹어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딘가가 특별히 아팠던 적도 없었는데 가령 아직 이유식을 시작하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분유를 게워내는 일조차 여행이에게는 거의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입에는 먹을 것이. 아직까지 충치가 생기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여행이의 왕성한 식욕과 건강은 여행을 할 때도 아이 곁에 머물렀다. 한국이 아닌 나라를 여행할 때면 어떤 나라음식이든 큰 어려움 없이 잘 먹어왔고 이동하면서도 거의 늘 입에 무언가를 넣고 오물거릴 정도로 언제나 복스럽게 잘 먹었다. 배탈도 한번 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웩웩거리며 속에 든 것을 쏟아 내니 그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이지 않은 장면이었던 까닭이다. 토하는 본인도 당황스러울 텐데 그 곁에 있는 부모까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면 여행이가 더 놀랄까 봐 겉으로는 별일이 아닌 척 행동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두려웠는지 모른다.

다행히 이 상황을 들은 미야자키에 사는 일본인 친구가 두 팔 걷고 나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맙게도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 해 평이 좋다는 소아과를 찾아주었고 혹시나 외국인인 우리가 병원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데 문제가 있을까 봐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나와 우리 가족을 자기 차에 태우고는 함께 병원과 약국에까지 다녀와 준 것이다. 여행이의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으면 나머지 여행을 접고 바로 귀국을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돕고 하늘이 돕고 여행의 신이 도우사 여행이는 하루 만에 컨디션을 회복했다.



일본의 아주 매우 몹시 조용했던 소아과 병원에서


여담이지만, 여행이 덕분에(?) 처음으로 가본 일본의 소아과는 아이들이 다니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 정도로 쥐 죽은 듯 조용해서 실로 쇼킹할 정도였다. 대기하는 부모들부터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까지도 너도나도 음소거 캔디를 잡순 것인지 어쩜 그렇게 소리도 안 내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아침 나는, 여행이가 내년부터 다니게 될 국제학교에서 보내온 서류를 읽고 필요한 자료를 작성했다.


학생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학생과 그 가족의 병력을 기록하고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학교에서 아이에게 처방해도 되는 약과 그렇지 않은 약을 기록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먹고사는 데 큰 불편 없을 정도로는 할 수 있다고 믿어온 언어라도 의학용어가 등장하면 단숨에 나를 꼬리 내리게 하곤 하는데 오늘 아침도 같은 이유로 난 온라인 사전을 겸손하게 뒤적여 가며 학교에 제출할 서류를 완성했더랬다. paracetamol, prolyte, epistaxis... 뭣이라?!!!

내 아이의 다가올 학교 생활을 더듬더듬 준비하는데 문득 몇 년 전 미야자키에서의 분수 토 사건이 떠올랐다. 한국만큼 마음 편히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나라도 없는데 여행이도 그리고 우리 부부도 제발 향후 몇 년간은 아프지 않길, 그래서 병의 이름과 약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할 일도 없기를 빈다. 나, 그것들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도 모르겠단 말이여.

-2017년 10월, 일본 미야자키 미야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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