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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Nov 25. 2020

그 섬에 가고 싶다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


군(郡) 전체가 오롯이 섬으로만 이루어진 지역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나이 사십을 넘겨서야 알았다. 몇 달 전 읽었던 21세기북스의 대한민국도슨트 시리즈 신안편을 통해서였다.




동쪽으로는 무안군과 목포시, 서쪽으로는 황해, 남쪽으로는 진도와 완도, 북쪽으로는 영광군 낙월도와 인접한 신안군은 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다도해의 섬 왕국이다. 원시림, 산지, 갯벌습지, 생물다양성 등 자연적 요소와 맨손어업, 염전 등과 같은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신안군 전역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한다.


섬에서 난 사람이자 섬 활동가인 강제윤 작가는 지난 20여 년 동안 400여 개의 섬을 탐방하고 기록해왔으며 난개발로 파괴되어가는 섬들과 소외와 차별 속에 고통받는 섬 주민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했다. 이렇듯 섬을 깊이 사랑하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분이 쓰신 책이라 그런지 대한민국 도슨트 신안편에서도 저자의 섬 사랑이 온전히 느껴졌다.


섬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이 멋진 책을 읽은 후 나는 신안군에 꼭 한번 다녀와보고 싶어 졌다.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이 태어난 비금도가 있는 곳, 한국의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가 있는 곳, 언젠가 꼭 한 점 갖고 싶은 그림을 그린 화가, 김환기 선생이 태어난 안좌도가 자리하고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을지라도 바다에 맞서고 그 푸른 물살과 어우러져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이 사는 섬들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편의상 천사(1004)의 섬이라고 홍보되고는 있지만 실제로 신안군은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가보고 싶은 섬들을 하나하나 꼽다 보니 한 번의 여행으로는 살펴보고 싶은 곳들을 도저히 다 둘러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욕심 내지 말고 한 곳 한 곳 천천히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우선 홍도부터 다녀와보기로 했다. 이 섬은 해 질 녘 석양 아래 불타는 듯 붉게 물드는 섬이라 하여 붉을 홍, 섬 도 자를 따 홍도(紅島)라 이름 붙여졌단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목포항에서 출발한 배는 흑산도를 거쳐 약 2시간 30분 만에 홍도에 가 닿는다.


서해의 파도를 우습게 본 우리 가족은 뱃멀미 약을 먹지 않고 배에 올랐다. 용감한 것인 줄 알았던 그 행동이 사실은 무모한 행동이었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은 배가 바다를 가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내내 속이 불편하다며 몸을 배배 꼬던 여행이가 제 속에 든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내게 매달리는 여행이를 부둥켜 안고 토사물을 봉투에 받아내던 나도 어느 순간 속이 뒤집히더니 엄마도 우웩, 아들도 우웩 난리가 났다. 그런 나와 여행이곁에서 챙기던 울낭군은 다행히 우리 둘이 다다른 지경에까지는 이르지는 않았지만 여차하면 우웩 파티에 동참할 뻔했다고 다. 한 병당 단돈 천 원 하는 멀미약을 안 챙겨 먹고 온 벌이 이렇게나 호될 줄이야. 그래서 우린 그날로 결심했다. 동해든 서해든 그 어느 바다에서든 배에 오르기 전에는 반드시 뱃멀미 약을 챙겨 먹겠노라고.


처음으로 홍도 땅을 밟은 우리의 모습은 마치 소금물에 사흘 낮 사흘 밤 푹 절여진 시금치와도 같았다. 멀미 때문에 머리와 배가 뱅글뱅글 도는 상태로 도착한 터라 기암괴석이고 뭐고, 한국의 하롱베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홍도의 모습이 우리 가족의 눈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홍도에 들어오기 전 예약해두었던 숙소 주인장 어른께서는 고맙게도 우리 가족을 맞이하러 부두에까지 나와 계셨는데 직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여행이를 둘러업고 그 분을 따라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길, 저만치 앞서 익숙한 길을 날듯이 오르는 주인장 할머니의 발걸음이 야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홍도의 기운 덕분인지 역사 깊어 보이는 숙소의 뜨끈한 방바닥 덕분인지 다행히 우리 가족은 오래 지나지 않아 기운을 되찾았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섬을 탐험할 준비가 된 것이다.




홍도에서의 이틀은 평범하지만 반짝이는 기억할만한 순간들로 가득했다.


제주도에만 해녀가 있는 줄 알았는데 홍도에도 해녀들이 있었다. 홍도 제1구 마을 선착장 옆에는 나이 지긋한 해녀분들께서 직접 운영하시는 포장마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인심 좋은 해녀 할머니를 따라간 우리 가족은 어둠에 쌓인 바다 바로 옆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플라스틱 식탁에 놓인 해산물을 마음껏 즐겼다. 작년까지만 해도 불야성을 이루었다는 해녀촌 포장마차도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아 인적이 드문 탓에 우리를 비추는 것은 어슴푸레한 달빛과 드문드문 문을 연 포장마차에 걸린 작은 불빛뿐이었다. 하지만 그 밤, 홍도의 바닷가에서 소주 한잔 곁들여 즐긴 해산물 한 접시의 맛이 기억에 남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 가족은 그 작지만 큰 섬을 밤낮으로 누비고 다녔다. 홍도 토박이 가족처럼 선착장 근처를 하릴없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보고 홍도 한 바퀴를 휘도는 유람선을 타고 기암괴석을 구경하고 유람선 옆에 어선을 대고 그 자리에서 주문을 받아  한 접시 푸짐하게 떠주시는 어부들의 손맛을 즐겨보기도 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몽돌해변과 흑산초등학교 홍도 분교를 마치 우리 가족이 통째로 빌린 듯 차지한 채 물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사방치기도 즐기던 순간들, 깃대봉에 오르는 길목에서 홍도의 전경을 내려다보던 순간들.


작지만 빛나던 그 모든 시간들이 우리로 하여금 다음번 홍도 여행을 기약하게 만들었다.


-2020년 9월, 대한민국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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