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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Nov 26. 2020

취미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빈 여행 가방을 들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십 대 초반의 나는, 나중에 커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린이다운 솜씨로도 충분히 입상이 가능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각종 미술대회에서 상을 꽤나 많이 수상했었고 서예도 오랫동안 즐기며 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이든 조각이든 여하튼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나의 꿈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 지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어린이의 눈으로 살펴도 동생이 아주 어려서부터 전공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하느라 돈이 많이 드는 것 같은데 나까지 예체능을 하겠다고 나서면 부모님께 너무 큰 부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 물론 오로지 이런 효녀 심청 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결국 그림을 그리는 사람 대신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고 그 결심은 지금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취미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지금은 남편이 된 그와 처음으로 만나던 날, 나는 그가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이 당시의 내 입장에서는 처음 듣는 이름의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그를 만나는 자리에 나갔더랬다. 그런데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그렇게 최소한의 정보만을 듣고 나간 자리에서 시작된 대화는 첫날부터 어? 이 사람, 나랑 좀 코드가 맞는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더니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짧은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생활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우리 부부는 다른 점도 많지만
굵직굵직한 취미가 신기할 정도로 일치한다.
여행이 그러하고 책 읽기가 그러하다.
그리고 그림 보는 것을 즐기는 것이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틈 날 때마다 각자 읽을 책을 챙겨 여행을 떠나고 여행지에서는 종종 함께 미술관을 방문하곤 했는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 Saint Petersburg)를 방문하던 날에도 우리의 발걸음은 어김없이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이 도시에는 그 한 곳만을 방문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들이 찾아올 만큼 어마어마한 미술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르미타시 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Hermitage Museum)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무려 1764년에 개관한 이곳은 3백만 개 이상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규모로 보나 소장품의 질적 수준으로 보나 세계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은 곳이다.




예르미타시의 시작은 1754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러시아 제국의 황후이자 여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Екатерина II Великая/ Elizabeth Petrovna)의 명에 따라 건축가인 라스트렐리(Bartolommeo Francesco Rastrelli)는 바로크 양식의 겨울궁전을 짓기 시작한다. 유럽의 다른 화려한 궁전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던 예카테리나 2세는 엄청난 돈과 러시아의 내로라하는 장인들을 포함한 4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장장 8년에 걸쳐 공사에 투입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화려하게 치장된 수 백개의 방을 갖춘 겨울궁전을 완성한다.




오늘날의 예르미타시 미술관은 겨울궁전뿐 아니라 근처의 많은 건물을 포함하는 대규모 미술관이 되었다. 소장품의 개수만 들어도 가늠이 될 테지만 하루 이틀 만으로하늘이 두쪽 나도 절대 다 살펴보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 상황이 그러하건만 우리 가족이 이 공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일정상 단 하루뿐이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아쉬울 따름이다.


여담이지만, 미술관의 이름에 얽힌 사연이 흥미롭다. 프랑스어인 예르미타시(hermitage)는 고대 그리스어로 은둔자를 뜻하는 eremites라는 단어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처음 미술관이 문을 열었을 때는 대중에게 공개할 계획이 없었다 한다.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하그녀의 전용 미술관으로 시작된 곳이기에 소수의 인원에게만 공개된 (은둔의) 장소라는 의미를 담아 그렇게 이름 지었단다. 참고로 예르미타시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예카테리나 2세만큼은 아니지만 그림을 사서 집 이곳저곳을 장식하기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을 앞두고 일부러 커다란 여행가방 하나를 텅텅 비운 채로 챙겨 갔다. 마침 러시아 루블화 환율이 우릴 미소 짓게 하는 상황이었기에 예르미타시 미술관 샵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잔뜩 사 트렁크를 꽉 채워오겠다는 계획을 했던 것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았고 우리 가족은 예르미타시로 향했다. 여행이를 데리고 미술관 이곳저곳을 즐기던 우리 부부는 세기의 효자, 여행이가 낮잠을 자기 시작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유모차를 전속력으로 밀고 끌며 미술관 샵으로 달려갔다. 이럴 때는 참으로 놀랍게도 몸과 마음이 착착 들어맞는단 말이야. 그렇게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미술관 샵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판매하는 그림을 한 점도 빼놓지 않고 다 살펴본 후 크고 작은 그림 수십 장을 사 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한번 빈 트렁크를 챙겨 예르미타시를 찾을 계획을 세우는 나를 아마도 울낭군은 말릴 생각이 전혀 없겠지? 이것은 취미가 일치하는 부부의 장점인가, 아니면 맹점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에필로그)

캔버스에 인쇄한 탓에 종이에 인쇄한 그림보다 고급스럽게 보이는 데다 착한 루블화 환율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저렴하게 구매한 예르미타시 소장품들은 오늘도 우리 가족의 집 이곳저곳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추억하게 해주고 있다.


-2018년 10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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