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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27. 2020

이웃사촌이 되고 싶다

국립중앙박물관,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


가끔, 아니 종종,
이촌동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근거리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두고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일까?




우리 가족이 서울에서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National Museum of Korea)이다. 부모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 울낭군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가 시작되면 같은 전시를 함께, 그러니까 동시에 살펴보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여행이는 어려서부터 상당히 순한 아이였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행이 정도라면 발가락으로도 키울 수 있겠다는 소리까지 여러 번 들어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순한 아이에게도 밝은 곳에서 갑작스레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들어가 오래된 것들의 냄새를 맡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던가 보다. 엄마, 아빠가 품에 꼭 안아준다 하더라고 조도 낮은 전시장에서 갑자기 울음을 앙 터뜨리기도 하는 여행이를 보며 울낭군과 나는 동반 관람의 욕구를 내려놓기로 했다. 한 명이 전시장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여행이를 돌보며 바깥에서 기다리는 식으로 시간차를 두고 전시를 즐기기로 한 것이다.


이대로 계속 따로따로 전시장에 들어가야 하나 싶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여행이를 포함한 우리 세 가족이 전시를 같이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공평하게. 이번에는 어린이박물관 차례!


아이가 자라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여행이가 네다섯 살이 된 즈음부터는 우리 가족 셋이서 다 함께 전시장에 들어가되 우리 부부 둘 중 한 명은 전시에 집중하고 나머지 한 명은 여행이와 함께 다니며 아이에게 그 안에 펼쳐진 낯선 세계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 여행이는 아직 어려도 분위기 파악이 빠른 아이인지라 전시장에서 소란을 피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람 시간이 길어질라치면 아무래도 지겨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게 사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보고 싶었던 전시를 관람한 날에는 여행이가 좋아하는 어린이박물관에서도 공평하게 시간을 보낸다.


문득문득 뒤돌아보면
아이는 그새 또 훌쩍 자라 있다.


2019년 초,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을 보러 갔을 때만 하더라도 전시를 관람하다가 탈출을 시도했던 여행이가 그해 9월,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를 보러  날에는 스스로 마음에 드는 전시품을 골라 살펴보며 엄마, 아빠에게 질문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해 여름, 이탈리아로의 휴가를 앞두고 보러 갔던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에서도 여행이는 나름 진지하게 주머니에 손 넣고 짝다리를 하고선 전시를 관람했다. 그 뒷모습이 꽤나 형님처럼 보여 뭉클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이탈리아 베로나(Verona)를 여행하던 중 전시에서 본 것들이 생각났는지 문득,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전 다시 보고 싶다.''는 이야길 꺼내 어찌나 신기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여행이와 함께 즐긴 전시들


어린 시절을 지방의 소도시에서 보낸 나는 전시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고향에 있던 국립박물관이 거의 유일한 전시장이었는데 그래서 그곳에 갈 때면 얼마나 신이 났나 모른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되었다는 조그만 그릇 조각 하나도 박물관의 조명 아래에서는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크고 작은 전시를 즐길 기회가 많아졌지만 라떼는 말이야, 서울과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의 문화시설의 격차는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미라와 스핑크스,
그리고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이집트는 나에겐 특히나 의미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나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소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영국과 프랑스였다. 늦은 밤 도착했던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당시 최고의 유행가였던 셀린 디온의 Because You Loved Me를 들으며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던 길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로부터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다른 나라 공항에 도착할 때면 셀린 디온의 목소리가 귓가에 리는 것 같고 뒤돌아보니 별 거 없었지만 당시엔 너무나도 특별해 보였던 런던 외곽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다.


런던에서는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이며 조각들이 내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가장 놀랍고도 소름 끼치도록 강렬했던 순간은 바로 이집트관에 전시된 미라를 가까이에서 봤을 때였다. 팔팔하게 살아있는 십 대의 내가 몇 천 년 전 저세상으로 간 누군가의 완벽하게 죽은 몸 앞에 서있다는 것, 그것은 비현실적으로 현실적인 놀라움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관


2019년 말 국립중앙박물관은 3층의 아시아관을 세계문화관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장했다. 이름 그대로 세계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로 구성된 이곳엔 놀랍게도 이집트관이 포함되어 있고 진짜 미라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이집트에서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한국의 서울로 옮겨온 미라는 자신이 죽은 후 이렇게 전 세계를 떠돌아다닐 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여하튼 그 미라 앞에서 난, 다시 한번 난생처음 한국을 벗어나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두리번거리던 새파란 고등학생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의 내가 신기한 세상 문물에 목말랐었기 때문인지 여행이에겐 일찍부터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싶다. 세상은 넓고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을 지닌 이들도 많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해외로 나가는 문이 봉쇄되다시피 한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여전히 세계 여러 나라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휴관과 개관이 반복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온라인 전시는 언제나 열려 있으니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팔 기회는 언제나 열려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서울-


◇ 여행팁 ◇

● 국립중앙박물관(National Museum of Korea)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전화번호: 02-2077-9000
운영시간: 월, 화, 목, 금, 일, 공휴일: 10:00-18:00/ 수, 토요일: 10:00-21:00(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입장료: 상설전시 무료/ 특별전은 전시마다 다르니 해당 전시의 안내 페이지를 참고할 것
웹페이지: https://www.museum.go.kr/

●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 박물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건물에 위치)
전화번호: 02-2077-9647
운영시간: 매일 10:00-17:50(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입장료: 무료. 단, 공식 웹페이지에서 예약 필수. 현장 발권도 가능하나 관람일 30일 전부터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고 시간당 선착순으로 90인만 입장 가능하니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방문하는 것이 헛걸음과 부모 자식 간 불화를 피하는 길이다.
웹페이지: http://www.museum.go.kr/site/child/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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