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가 지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하루에도 수십 번은 아니지만 한두 번 퇴사를 생각한다. 사원 3년 차 때부터, 끊임없이 퇴사를 꿈꿔왔는데 13년 차인 지금도 퇴사를 못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신입 사원 때부터 나를 오랫동안 보아 온 선배들, 그리고 동기들은 퇴사 이야기만 13년째 듣고 있다며, 이제 퇴사 이야기는 메신저에서 내 이름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맨날 퇴사할 것이라는 아이가 회사를 제일 오래 다닐 것이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하곤 한다.
나도 안다. 나에게 매일 퇴사 이야기를 한다고 면박을 준 여러 사람보다 이 회사를 제일 오래 다닐 것임을 말이다. 내가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직을 준비하는 것을 귀찮아해서도 맞다. 퇴사를 원하지만, 딱히 대안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맞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13년간 회사에 다니면서 소중하게 얻은 나의 인연들 때문이다. 남들은 회사에서 만난 인연들은 어차피 나가면 다시 볼 일 없을 것이라고, 마음 약해지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주말과 잠자는 시간 빼고 대부분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이 직장에서 어쩌면 가족들보다 더 자주 보는 회사 사람들 때문에 나는 퇴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다 소중한 것은 아니다. 정말 다시는 마주치기 싫은 신입사원 시절 나에게 연신 성희롱 해대던 과장님,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던졌던 상무님, 온종일 핸드폰만 하던 후배 등 정말 다시는 마주치기 싫은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회사로만 엮였다는 사이이기엔 오빠보다 더 오빠 같고, 친구보다 더 친구 같고, 언니보다 더 언니 같은 몇몇 사람들이 매일매일 업무로 찌든 회사 생활 가운데에 숨 쉴 틈을 만들어 준다.
신입 사원 때 사수였던 유 차장님은 당시 엄해서 내 눈물을 쏙 빼놨지만, 내가 아주 슬프고 아팠던 일이 있었을 때, 지방 근무 중 단숨에 달려와 위로하며 술을 사 주셨다. 요즘은 본부가 달라진 탓에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뜬금없이 안부를 물어봐 주시고 생일날은 선물을 꼭 챙겨 주신다.
나보다 훨씬 늦게 입사했지만, 동갑 친구인 지윤이 역시 본부가 달라졌지만, 해외여행, 전시회, 맛집, 야구장 등을 같이 가는 나의 데이트 매이트다. 누구보다도 서로의 업무 고민, 진로 고민, 가족사, 경제 상황 등을 잘 알고 있고, 매일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얼굴을 오랜만에 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친구이다.
매일 보는 주영과 소은 차장님은 선배지만, 내가 사석에서는 언니라고 부르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출근하면 함께 커피를 사러 간다. 이 시간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중 우리가 모두 제일 즐거워하는 시간이다. 팀장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집 이사 이야기, 재테크 이야기, 소개팅 이야기 등등 짧은 찰나이지만,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이 사람들과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어쩌면 아침 커피 타임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반나절 동안 쌓인 많은 이야기, 그리고 아까 아침에 못다 한 이야기들로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내가 집안일로 그리고 이별 때문에 힘들어할 때도 항상 이 언니들은 자기 이야기처럼 아파해주고 공감해주었고 여러 모습으로 힘이 되어주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아기를 기다리던 주영 언니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그녀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소은 언니가 승진을 했을 때도, 내 일처럼 무척이나 기뻤다.
머리가 크고, 어른이 되어 만난 많은 인연은 그 인연을 지키기 위해 서로가 혹은 한쪽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주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애쓰지 않아도 내 모습 그대로 나의 일상을 채우는 몇몇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퇴사 생각을 접고, 그들과 함께할 즐거울 내일을 꿈꾸며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