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쁘렌띠안 섬에서의 휴가
6개월 입사 선후배 사이인 주영과 미진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고만고만 시스터즈’라고 불린다. 나이도 고만고만, 키도 고만고만, 성격도 고만고만하게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장 기억 남는 여행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고만고만 시스터즈’와 함께했던 쁘렌띠안으로의 여름휴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나만 알고 싶은 곳, 나만의 파라다이스로만 간직하고 싶은 곳이다.
여행 블로거인 주영이가 없었다면 쁘렌띠안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나도 거북이랑 헤엄쳐보고 싶어!” 외치던 주영이가 바로 여기라며 찾은 그곳은 한국인에게는 매우 생소한 곳이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비행기로 1시간, 자동차로 1시간, 그리고 통통배로 30분이나 걸려, 거북이랑 같이 수영을 해보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의지 없이는 섣불리 가겠다고 도전하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강조해온 인재상인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우리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쁘렌띠안으로 떠났다. 한국을 출발한 지 꼬박 이틀 만에 도착한 쁘렌띠안에서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강렬한 태양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투명의 가까운 에머럴드 색의 바다였다. 쁘렌띠안 제도는 두 개의 섬으로 되어있는데, 우리는 ‘큰 섬’이라 불리는 조용한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많은 바사르에서 묵었다. 일주일 내내 푸른 바다와 하얗고 고운 모래가 깔린 섬에서 수영하고 책을 읽으면서 과연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먼바다에서도, 얕은 해안가에서도 스노클링으로 바닷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보고 있노라면, 30년 내 평생에 꾹꾹 묵혔던 스트레스들이 단번에 날아가는 듯했다. 하늘에 비가 갑자기 우두둑 떨어지며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다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쨍쨍해지는 날씨의 ‘밀고 당김’에도 푹 빠져버렸다. 깜깜하고 고요한 저녁과 새벽녘, 모스크에서 들리는 기도소리가 유일하게 이곳이 천국이 아닌 말레이시아라고 일깨워주었다.
하루는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어 배낭 여행객들이 많이 모인다는 ‘작은 섬’으로 가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바다에 조그만 뗏목 하나만 의지한 채, 여자 셋이 무슨 용기로 그렇게 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배로 15분 떨어진 ‘작은 섬’의 분위기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 충분히 갈 만했다. 밤에도 시끄러운 음악이 끊이지 않는 활기찬 분위기의 ‘작은 섬’은 평온하고 잔잔한 ‘큰 섬’과는 사뭇 달랐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랜만에 맥주도 마시고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여행 목적이었던 거북이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와도 거북이와 헤엄치는 것은 매우 ‘럭키’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무언가 불편한 일이 있었던지 거북이가 바닷속 모래 바닥에서 올라오고 싶지 않아 해서, 우리도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거북이를 가까이 보는 것에 실패했다. 하지만 거북이 체험 마지막 날, 한 번만 만나보고 싶다는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들었는지 거북이는 해수면으로 올라왔고, 우리는 마침내 거북이 옆에서 수영하는 서로의 찰나의 순간을 담을 수 있었다. 드디어, 거북이 옆에서 헤엄치고 싶다는 지윤이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천국을 상상할 때마다 나는 쁘렌띠안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한다. 그곳에서의 일주일은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그 머나먼 여정을 감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들기도 하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나만의 파라다이스로 남기고 싶기도 한 곳이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요즈음, 새침했던 거북이도, 변덕스러운 날씨도, 보석같이 반짝반짝 빛나던 에메랄드 색 바다의 모습도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