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의 찰나를 기억하기 위해서,
사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굉장한 기록가였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얻는 성취감과 상을 타야겠다는 승부욕으로 더 많이 읽고, 썼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하는 유일한 과외였던 매주 2회 있던 글짓기 수업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학교 밖에서 하는 유일한 놀이이자 학습이었다. 매번 쓴 글에 선생님이 주시는 별 점에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다. 매우 잘 쓴 글에는 큰 별 하나와 작은 별 다섯 개, 잘 쓴 글에는 작은 별 다섯 개, 그다음에는 작은 별의 개수로 평가해주시곤 했는데, 친구들과 묘한 경쟁심을 느끼면서 난 항상 큰 별과 작은 별 다섯 개를 꼭 받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독후감을 써야지 인정되는 다독왕을 매년 놓치지 않고 싶어서, 학교 끝나고 매일같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그때부터 프로 속독러인 나는 빠르게 읽었고, 빠르게 독후감을 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린이 신문에서 공모전을 보고 글을 쓰고, 교외 대회에서 상을 타오기도 했다. 교내의 글짓기 대회에서는 빠지지 않고 글을 제출하고 무조건 상을 타 왔다. 나름 그 당시에는 글을 좀 쓴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교내외 글짓기 대회로 받은 상들이 꽤나 많았다. 그렇게 많은 글을 썼던 나의 동시, 산문, 독후감, 논술문 및 동화는 아직도 원고지채로 우리 집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성취욕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많은 글을 쓰고, 많은 책을 읽었던 나는 고등학교를 올라 가면서부터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와 작문은 딱 학교에서 숙제로 시키는 만큼만 했다. 물론 그 당시에 외국에 있어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읽고 쓰는 것이 재미없고 어려웠다. 지금은 재밌기만 한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잘하지 못하니 성취감도 없고,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두꺼운 영어 교재 읽는 것만으로도, 전공과목 에세이 쓰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서 읽고 쓰는 것과는 담쌓고 지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책은 오히려 잠 못 자는 날 잠을 푹 자기 위한 도구로 읽었고, 신문은 네이버의 자극적인 연예 기사만 읽었던 것 같다. PPT 보고서의 짧은 글로만 익숙해져서 문단으로 완성된 글을 쓴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글과 책과는 담쌓은 시간을 보내온 나에게 코로나는 전환점을 남겨주었다. 안 그래도 점점 퇴보해가고 있는 나의 문해력에 갈증을 느끼던 차에, 어쩔 수 없이 집순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책장에 장식처럼 쌓여 있던 책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한 달에 12권은 족히 읽었던 것 같다. 독서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읽어보니 점점 생각이 확장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싫어하던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여러 고전들이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독서를 다시 시작하며, 예전처럼 책의 줄거리와 느낀 점을 자연스레 기록하게 되었고, 점점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며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글을 쓰지 않던 지난 20여 년의 세월 동안 참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라도 기록하기로 했다. 그 찰나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제는 다시 시작한 글 쓰기와 독서를 놓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