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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Apr 14. 2022

봄아, 봄이 왔다.

이번 봄에는.

이른 새벽,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뜬다. 블라인드 뒤로는 희미하게 밝은 빛이 새어 보인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면, 내 창문 높이만 한 나무에 분홍 벚꽃 잎이 활짝 피어 있다. 언제부터 새들이 새벽에 지저귀기 시작한 건지, 이 시간이 이렇게 밝았는지, 벚꽃은 언제부터 핀 건지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요즘같이 벚꽃이 필 때 즈음이면, 내 친구 봄은 레스토랑의 테라스를 열었다. 테라스를 오픈했다는 카톡이 뜨면, 나와 내 친구들은 2~3주에 한 번 토요일 오후 느지막이 봄의 레스토랑 테라스에 모였다. 약속한 적 없는데, 가보면 항상 그 자리에 친구들이 있었다. 보통은 브레이크 타임 때라 봄도 같이 함께하곤 했다. 레스토랑 테라스는 1.5층에 있었는데, 밖에 심겨 있는 벚나무와 딱 키가 맞았다. 그 테라스에 앉아 우리는 내추럴 와인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거의 2주에 한 번씩 보는데 어찌 그리 할 말이 많은 지, 회사, 요즘 만나는 사람, 가족 이야기 등 일상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간혹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 반응하는 듯, 바람에 벚 꽃잎이 흩날리는 게 참 예쁘면서도 신기했다. 느지막한 오후에 만나 보통 해가 지고 헤어졌다. 캄캄한 저녁 조명에 비친 벚나무가 낮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봄이네 테라스에서 모이는 것은, 새 계절을 맞이하는 우리만의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이 의식은 6월 내 생일을 지나 보통 7월 초까지 유지되곤 했다.


가족들 없이 한국에 홀로 살고 있던 봄이는 항상 자유분방하고 즐거운 아이였다. 외동딸에,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해외에 가서  달을 살고 싶으면 살고, 인터넷 쇼핑몰도 한번 오픈하고 금방 닫고, 놀고 싶으면  없이 노는 그런 아이였다. 봄이는 딱히 하고 싶은 것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었다. 보통 6개월이면 무엇이든 금방 시들해지는 봄이를 보고, 나와  친구들은 진득하게 무엇 하나 못하는 의지박약이라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봄을 맞던 이 레스토랑에는 봄이의 열정이 담겨있었다. 목표도, 꿈도 없어 보이던 그 아이가 우리에게 말도 하지 않고 혼자 8개월 정도 열심히 준비한 그런 사업이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실내장식, 작은 소품, 플레이팅까지 밤낮없이 노력하여 준비했다. 우리에게 본인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느 정도 구체화할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봄이에게 이 레스토랑은 그만큼 의미가 있었다. 오랜 가오픈 기간이 끝나고 처음 정식 개업하는 날,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너의 인생의 봄날”이라고 축하해주었다. 그게 3년 전 봄이었다.


일 년 반쯤 지나고 레스토랑은 연예인도 찾는 유명한 곳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1주일 전 예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처음에 서로 약속도 하지 않고 테라스에 가던 우리는 그곳에 가려면 약속을 따로 하고 미리 예약해야 했다. 친구가 하는 일이 잘되니 너무 기뻤다. 인기가 많아 휴무 없이 브레이크 타임 없이 일한다고 했을 땐,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치르던 봄 의식은 레스토랑 장사가 잘되면서 그 주기가 뜸해졌고, 설령 만나더라도 봄이는 고객 응대에 너무 바빠 그 의식에 함께할 수 없었다.


인생의 봄날이라고 생각했던 그 레스토랑이 내 친구를 겨울보다 더 외롭고 아프게 만들 줄은 몰랐다. 레스토랑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점점 야위어 갔다. 조그만 식당 안에서의 사람 관계, 경영 스트레스, 그리고 표현할 수 없는 우울감들로 봄이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작년 어느 날, 그녀는 너무나도 덤덤한 얼굴로 불면증, 무기력증,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안아주고 기도해 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나의 보직 변경, 반복적인 주말 출근, 그리고 코로나 상황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이전보다 자주 보기 어려웠지만, 심리 서적, 신앙 서적을 보내기도 하고 전화를 하며 주기적으로 상태를 체크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항상 나아지고 있다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거리 두기 강화 지침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레스토랑 운영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백신 알레르기가 있어 백신을 맞지 못하는 봄이에게 델타와 오미크론은 매 순간 고비였다. 자꾸 금방금방 관두는 아르바이트생들 때문에 힘들어했고, 다른 직원들과 의견 차이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외줄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연락 온 건 작년 크리스마스였다. 그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레스토랑은 그만하기로 했다고, 그리고 자신이 아팠을 때 계속 챙겨준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참 고마웠다고 했다. 조금 푹 쉬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겠으니 기다려 달라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좀 더 시간을 많이 보내자고 했다. 당분간 부모님 집에도 가 있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몸과 정신을 회복하고 4월쯤 연락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떠났다. 워낙 자유분방했기에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할 건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꼭 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내가 찾은 기가 막힌 뇨키 바에 가자면서.


4월이다. 내 친구 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 이제 봄이네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봄을 맞는 의식은 더 할 수 없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그 아이를 새로운 계절을 맞는 의식으로 환영하려 한다. 봄아, 봄이 왔다.


이미지 출처:unsplash.com @Andreas B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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