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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Apr 09. 2020

몰타 일요 마켓, 마샬슬록

몰타의 노량진?

몰타를 여행하면서 일요일을 포함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선데이마켓이 열리는 마샬슬록Marsaxlokk. 지명 이름을 보고 처음에 저걸 뭐라 읽어? 하고 찾아보니 마살슬록, 마샬슬록, 마르사실로크, 마셜슬록 다 저마다의 발음을 하고 있다. 아무렴 어때, 외국어인걸. 난 마샬슬록이라 읽기로 했다.


몰타 섬 남쪽에 위치한 마샬슬록은 알록달록한 색감의 항구와 일요일마다 열리는 선데이 피쉬 마켓으로 유명한 곳이다. 역사적으로 수산업이 유명했던 이 마을은 매주 일요일마다 전세계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피쉬 마켓이라 하여 우리나라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호주 시드니의 피쉬 마켓,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피쉬 마켓 등을 연상했으나 그런 거창한 것들과 비교를 하면 안 된다. 여기는 몰타니까.


내가 살던 그지라(Gzira)에서 가는 데만 1시간이 족히 걸리고 오후 2시가 지나면 시장이 마무리되는 분위기라 알람 없이 푹 늦잠 자는 일요일이건만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했다. 그지라에서는 발레타를 거쳐 마샬슬록을 갈 수가 있다. 집 앞에서 발레타 가는 버스를 타고 발레타에서 내려 버스정류장 A6에서 85번으로 갈아탄 후 다시 약 40분을 달렸다. 주거 밀집 지역인 몰타섬 중앙을 벗어나 라임색 건물과 선인장, 밭들이 보이고 한적해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서둘러 나온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혹시 몰라 챙겨간 장바구니를 다 채우고 오겠노라 다짐하지만 마켓의 퀄리티에 그다지 기대는 가지 않았다. 버스 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버스가 서자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함께 내렸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샬슬록에서 내리기 때문에 어디서 내려야 할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리자마자 한숨이 푹 터지는 더위와 어촌 마을 특유의 바다 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전혀 어촌 마을 같지 않은 휑한 길 위에 버스가 정차했기에 여기가 맞나 의문이 드는 찰나, 뒤로 돌자 건물에 가려 반만 보이는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끄트머리부터 시작한 선데이 마켓의 모습. 아, 잘 찾아왔구나.

마켓을 향해 들어가니 바다가 한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알록달록한 색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 몰타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는 몰타의 이미지는 No Color 였는데, 몰타의 온갖 색을 이곳에 다 모아뒀나보다. 오랜만에 무채색이 아닌 선명한 빛깔들을 보니 마치 외국 여행(?)을 온 것 같이 기분이 들뜬다.  아니 근데, 마켓이 열린다는 마을이 왜 이렇게 조용한거야? 마을 깊숙이 들어가도 마켓의 기미는 커녕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 물어보니 페스티벌 기간이라 마켓이 안 열린단다. OMG!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나에겐 장날이 아닌 날이구나.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왔건만 이게 웬 날벼락인지. 마켓이 없는 마샬슬록은 더 이상 관광지로써의 볼거리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 그 다음 주 일요일. 마샬슬록 정복을 위해 또다시 아침 일찍부터 출동을 했다. 피쉬 마켓이 열리는 일요일, 발레타에서 마샬슬록으로 가는 직행버스는 사람이 정말 많다. 긴 줄을 서서 85번 버스에 겨우 올라탔다. 사실 사람이 너무 많아 앞서 2대 정도는 보냈다. 텅 빈 버스를 타고 갔던 지난 주엔 전혀 몰랐던 사실. 일행이 4명 정도라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시간을 생각했을 때 아깝지 않은 결정이다. 그리고 드디어 피쉬 마켓 영접에 성공!  마샬슬록에선 신선한 해산물 뿐만 아니라 각종 채소와 군것질거리, 저렴한 기념품이나 옷 등도 살 수 있는데, 그 때문인지 피쉬 마켓이라기보다는 동네 5일장 같은 느낌이다. 규모는 작지만 절인 올리브나 몰타 문양이 있는 레이스, 각종 싸구려 신발과 가죽가방, 초콜렛과 꿀 등 다양한 품목이 있고 누가처럼 생긴 몰타 전통 과자도 이 곳에서 처음 봤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지난 주에 못 본 것에 대해 기대감이 더 커졌기 때문일까. 작은 규모에 살짝 실망감이 올라온 건 어쩔 수 없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오자 대로변 따라 있는 레스토랑이 전부 꽉꽉 차기 시작했다. 일요일의 마샬슬록은 관광객 뿐 아니라 몰타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외식 플레이스라고 하니 맛집을 선점하고 싶다면 12시 이전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나도 일행과 함께 맛집으로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메뉴를 골랐다. 어촌 마을에 왔으니 생선 요리를 고르고 함께 먹을 파스타와 와인 한 잔씩을 주문했다. 이토록 푸르고 맑은 하늘 아래 바다를 보며 먹는 파스타에 와인 한 잔이라니. 이런 천국 같은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배를 두둑히 채우고나니 이제서야 마샬슬록이 여유롭게 눈에 들어온다. 달콤한 크레페를 한 손에 들고 시장 한 켠의 벤치에 앉아 마샬슬록만(Marsaxlokk Bay)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배 구경을 해본다. 이 작은 배들은 예전에는 노를 저어서 배를 움직였다고 하지만 이제는 모두 엔진을 달아 관광객을 태우고 달리기도 한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여러 조형물이나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 벤치 등이 있어 사진 찍기에도 좋다. 무지개빛의 배들이 사진이 잘 나오게끔 톡톡히 한 몫 해주기 때문에 오랜만에 사진을 많이 찍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온 보따리상이 파는 거북이 모양 조각상을 하나 샀다. 오늘 날짜를 조각상 아래 새기고나니 몰타에서 만든 따스한 추억이 계속 기억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조각상과 함께 장바구니를 채운 건 바로 새우! 섬나라이지만 예상과는 달리 해산물이 비싸 잘 먹지 못했는데 타임세일로 싱싱한 새우 득템이다! 비록 계획처럼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돌아오진 못했지만 마음 한 켠, 이렇게 몰타에서 또 하나의 추억 페이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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