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 I
그래서 딱 7일 걸립니다.
유 선생이 첫날이자 마지막 날에 나에게 했던 말이다. 인도에 푹 빠져 있는 그는 딱 7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도를 사랑할 것인가, 인도를 미워할 것인가.
나의 항공권은 인천에서 델리로, 델리에서 벵갈루루로 예약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출국 전날 밤, 아니, 새벽 4시에 문자가 왔다. 델리 출국 편이 지연되었다고.
허참, 빨리도 알려주는구나, 하면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델리에 무조건 5시에는 도착을 해야 벵갈루루로 가는 6시 30분 비행기로 경유할 수 있었으니까. 항공사 잘못이고, 연결 편은 무조건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새운 스케줄에 혼선을 빚는다는 사실에 극 노했다. 하지만 나는 힘없는 소비자니까, 체념하며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사실 어떻게든 풀리리라 하는 생각은 있었기에 그리 착잡하지만은 않았다. 소중한 병장의 휴가 하루를 망쳐주신 에어인디아, 정말 번창하세요. 나 혼자 생각했다.
델리에서 벵갈루루로 가는 연결 편은 도착 그다음 날 아침으로 잡았다. 말인즉슨,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델리에서 몇 시간을 숙박해야 되었다. 물론 호텔은 항공사 측에서 해결해준다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들은 바로는- 내가 비행기에서 내리면 나를 기다리는 승무원이 있다고- 지연으로 피해를 보는 승객들이 더러 있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였다.
비행기로 델리까지 7시간 30분이 걸렸다. 길고도 험난한 시간이었다. 사실 가만히 앉아서, 주는 밥 먹으며, 졸리면 자고, 잠 깨면 영화를 보면 되는 간단한 방식이지만, 이런 장거리 비행이 처음인 나에게는 은근히 가혹했던 시간이었다. 기내식으로 치킨 커리와 채식 둘 중 치킨 커리를 골랐다. 인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먹는 커리라니, 기내식은 기내식일 뿐 진정한 인도음식은 인도에서 경험하자고 스스로 다독하며 기내식을 취식했다.
하지만 뜨끈한 밥에 알싸한 치킨 커리를 적셔 입에 사뿐히 넣었고, 그렇게 기내식에 대한 편견은 모조리 깨졌다. 인도 카레는 향신료가 쌔고, 우리가 먹는 오뚜기 카레랑 너무 달라서 쉽지 않을 거야, 라며 나에게 주의를 주었던 많은 사람들에 얼굴이 생각났다. 차파티 (Chapati, 난 naan과 비슷한 납작 빵의 한 종류)는 촉촉하고 뜨거웠다. 커리에 찍먹 한 차파티는 오랜시간 기억에 남을 거라며 델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를 위로했다.
감히 항공사 이야기를 뺄 수가 없다. 에어인디아의 모든 여성 승무원들은 40대 (어디까지나 짐작) 초중반이었다. 유니폼 (사리) 또한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입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획일화가 되어있지 않았다. 여성 상품화가 만연한 대부분의 항공사들, 특히 한국계 항공사들만 주로 이용했던 나였던 터라 충분히 낯설었다. 하지만, 이게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왜 승무원들은 키가 크로, 미모가 출중하고, 서글서글한 이미지를 주어야 하는가. 엄연하게 승무원은 안전요원이고, 승객들이 필요해하는 것들을 제공해주는 이들이다. 말인즉슨, 안전 사항을 잘 숙지하고, 승객들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승무원이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남녀 관계없이 능력주의 제로 항공사를 운영을 하는 에어인디아와, 여성의 사회적 지휘가 비대하게 낮을 줄 알았던 인도에 대해 배울 점이 있음을 느끼는 비행이었다. 주스를 달라고 요청하니 직접 와서 가져가라고 했을 때는 솔직히 서운 했지만.
예정보다 2시간 늦게 출발한 비행기가 1시간 일찍 도착했다. 하늘에서도 과속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인천에서 들은 것과는 달리 나를 포함해 지연으로 환승을 못하게 된 승객들을 따로 안내해주는 항공사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내가 혹시 지나친 건가, 아니 애당초에 없던 게 아녔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 그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이미그레이션에 도착해있었다. 여기서 팁을 주자면, 도착비자 (Visa on arrivals)보다 인터넷 비자 (E-visa)가 훨씬 좋다는 것이다.
1.) 도착비자가 허용되면서 하는 사람이 많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2.) 인터넷 비자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3.) 가장 좋은 점은 기다릴 필요 없이 줄 서다가 이민국을 통과하면 된다는 것.
이미그레이션을 지나 수화물을 찾으러 갖다. 마침 에어인디아 직원이 보였다. 나는 냉큼 말을 걸었다.
"오늘 항공편 지연으로 벵갈루루로 가는 환승 편을 놓쳐서 (인천에서) 내일 아침 항공으로 변경했는데, (나 말고 인천에서) 에어인디아가 호텔을 잡아 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죠?"
(I've missed my transfer flight to Bengaluru due to the delay today and I heard that I would be provided with accommodation for a night at a hotel in Delhi. What am I supposed to do now?)
"기다려 봐요. 내가 물어보고 올게요"
항공사 직원의 대답과 표정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아니, 젊은 한국 양반, 여기선 그런 거 없어,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며 나는 후회했다. 10분 후에 직원이 돌아왔다. 나를 잊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심했다. 직원은 말했다. 얘기해봤는데 우리는 잘 모르겠다며 나보고 국내선 카운터에 가서 문의를 하라고 했다. 스케줄이 꼬인 것도 성질나는데, 호텔까지 사라질 것 같아 아찔했다. 그래서 무작정 뛰었다. 어딘가에 위치한 에어인디아 국내선 카운터로.
결국은 물어 물어서 찾아갔다. 공항에 있던 대부분의 공항 직원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영어로 물어보면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경찰까지도. 걷다가 뛰다가, 멈춰서 길을 물어보다가 결국 10분을 소요하고 도착했다. 나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호텔. 그것도 공짜 호텔. 가장 낮은 등급으로 항공권을 구매한 나는 샹그릴라, 포시즌스, 메리어트 같은 호텔들을 기대했다. 사실 국내선 카운터로 왔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쪽에서는 저쪽으로, 저쪽에서는 저기로, 저기는 반대로 가라고 했다. 시간도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배가 고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지만 이게 해결되지 않은 체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있었다. 나랑 같은 처지였던 그는 한국인이고, 50대 중반에 어디서나 볼 것 같은 평범한 아저씨였다. "내가 말이 짧아서 그래요" 하며 내가 하는 김에 자신을 도와 달라고 했다. 그의 서류와 여권을 받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는 나와 같은 델리행 항공을 탔지만, 벵갈루루가 아닌 하이데라바드로 가야 했다. 연결 편을 받는 것은 무척 쉬웠다. 문제는 호텔이었다. 그를 나와 같은 호텔에 배정해 달라고 했다. 30분을 기다렸다. 또 10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택시기사가 우리를 대리고 공항에서 차로 10분 걸린다는 호텔로 우리를 운송했다. 그리고 30분이 걸렸다.
여행중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한다. 이 문제들을 마주한 우리는 해결책과 돌파구에 집중하고, 이로 인해 우리는 한번 더 성장한다. 하지만, 에어인디아 택시기사는 우리의 바우처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이렇게 까지 성장을 해야하나 나는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와 동승한 한 인도 아저씨의 바우처는 챙겼다. 나와 한국인 아저씨의 바우처는 없어 쓸쓸히 또 기다리게 되었다. 호텔 로비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호텔은 샹그릴라와 다르게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았다.
나의 도움을 받은 아저씨가 늦은 저녁식사를 청했다. 허기에 시달렸던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잠시 머무는 호텔 1층에 (인도는 Ground floor을 사용한다) 레스토랑이 있었다. 물만 마셔도 달콤했다. 메뉴로는 계란 볶음밥 (Egg frie rice), 치킨 커리, 그리고 치즈난 (Cheese naan)을 시켰다.
이 또한 맛은 훌륭했다. 식사를 마치고 맥주를 마시러 근처에 있는 바로 자리를 옮겼다. 맥주 한잔 정도는 내일 스케줄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낯선 땅에서 만난 20대 청년과 50대 중년의 어색한 조합은 생각보다 유익했다. 맥주는 그가 추천한 인도 국산 맥주 킹피셔 Kingfisher를 마셨다. 프리미움과 스트롱이 있는데 스트롱에서 소맥 맛이 난다고, 자신의 입맛에 너무 잘 맞아서 계속 찾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인도는 법적으로 주류 판매를 규제하고 있어, 일반 음식점에서는 판매하지 못하고, 관광청에 허가를 받은 바나 펍에서만 마실 수 있고, 구매를 할 때도 지정된 주류 가게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킹피셔의 톡 쏘는 강렬함과 시원함은 공항과 항공사와 호텔이 주었던 피로를 시원하게 날렸다. 주세 (alcohol tax)가 얼마라도 지출을 강행할 의향이 생겼다.
우리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유 선생은 (나는 예의를 갖추어 선생님이라 불렀고, 그의 성이 유 씨라 유선생이라 기명하겠다) 이번 인도 여행이 4번째라 했다. 그가 인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짝이던 눈빛은 생동감이 넘쳤다. 인도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여행을 좋아한다. 중국 여행만 70번을 다녀왔고 (여권에 도장이 70개더라), 남미 30일 여행으로 돈 3,000만 원을 태웠다, 아니 지출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끝내 묻지는 못했지만, 나이를 먹어서라도 혼자서 자신의 자아(Ego)가 바라는 곳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와 거뜬한 체력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와 같은 반백살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각자 킹피셔 5병을 비웠다. 인도 이야기에서 군대 이야기, 끝내 정치 이야기 (이건 응하지 말았어야 했다)로 술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일어나기 전 그가 말했다. 경찬 씨, 인도 여행 처음이라니까 이야기할게요. 절때 여유를 잃지 마세요. 나는 무슨 여유를 잃지 말아야 하냐고 되물었다. 그가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인도라는 나라는 7일의 기회를 줘요. 모두에게, 아주 공평하게 말이에요.
그리고 7일이 지나면 단 두 분류의 그룹으로 나뉘어요.
인도에 빠진 사람과 인도를 등지는 사람.
'인도 다움'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에 여유를 두세요.
여유가 없으면 무엇에든 등을 져요.
반대로 한번 빠지면 저처럼 못 잊고 계속 오는 거예요."
그의 말에 수긍했다. 취해서도 아니고, 여행 첫날 기대에 부풀어서가 아니라, 여행뿐만이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할 만한, 멋있게 나이 먹은 기성세대의 조언이었다. 서로 기분 좋게 취해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4시간 뒤 (새벽 4시에) 호텔 로비에서 다시 만나 공항으로 이동했다. 델리 공항에서 커피 한잔을 대접했다. 전날 저녁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 마셔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유 편이 그의 경유 편보다 한 시간 빨라 먼저 움직였다. 그는 나에게 건승을 빌어주었다.
우리 인생에도 얼마나 많은 '인도 다움'이 있을까, 벵갈루루로 가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혹시 나의 생각과 이상과 다르다고 시기를 당겨 등을 돌린 적이 있었을까. 또한, 같은 방식으로 등을 돌린 사람이 있었을까.문득 여유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상기했다. 이번 인도 여행에서, 그리고 언젠간 돌아갈 나의 삶의 터전에서 여유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비행기는 이륙과 착륙을 했고, 벵갈루루의 아침 10시 날씨는 푸르게 나를 반겼다. 그리고 밤이 되었고, 어제 만난 그가 그리워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맥북 옆에 킹피셔를 두고, 혼자서 건배사를 외쳤다. 여유를 위하여. 7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