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에세이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로 가는 AF1519편을 이용했을 때 일이다. LCC (저가항공) 답게 기내는 협소했다. 다리를 뻗지 못하고, 좌석을 뒤로 지쳐도 원상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약 1시간 비행이라 물이랑 과자 이외에는 제공되지 않았고, 기내 엔터테인먼트 따위는 기대해서 안되었다. 하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 스티커가 있었다. 바로 와이파이 시그널 모양의 스티커가 각 좌석마다 붙어 있었다. 동공의 팽창을 느꼈다.
저 심볼은 스마트폰에서 와이파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상형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내에서 와이파이가 된다는 뜻이었다. 사실 필자는 과거에 인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러 항공사의 조건들을 비교할 때, 특히 중동 항공사들은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문구를 언뜻 본 적이 있었다. 신기해서 가격도 찾아보았고, (대한민국) 지상에서 무제한으로 누리던 인터넷을 성층권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나름 획기적인 마케팅이라 생각했다. 기내에서는 모든 전파가 차단되기에 여태껏 엔터테인먼트 (영화나 드라마 따위)가 제공되어왔고, 각 좌석마다 기념품으로 위장한 면세품들로 진열된 잡지들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이 전통적인 형태가 여태껏 우리의 여행 출발 / 도착 길을 형성해왔다. 물론 필자는 얇은 지갑을 숨기며 중공 항공사를 이용하지 못하고 그 전통에 일조했다.
자고로 기내 공간은 지극히 지루한 법이다. 인터넷에 크게 의존하는 현대인들이 큰돈을 지불함으로써 세속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인터넷 사랑은 비행기가 착륙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탑승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전파를 잡고 인터넷으로 소식부터 확인하는 모습에서 목격된다. 중독이라고, 혹은 집착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인터넷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가피한 필수품이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선명하다.
하지만 인터넷을 향한 수요와 와이파이 송수신의 발전을 항공 시장이 거듭 받아들이면서 새롭지만 기이한 모습이 나타났다. 그동안 지루했던 (아니 그래야 했던) n시간의 비행은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아마 비행기를 탑승하는 그 순간부터 탑승객들은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지 않고, 마치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떠난 아이의 눈빛으로 이어질 긴 비행 동안 무엇을 시청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바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에어프랑스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로 지상 사람과 한 시간을 꼬박 카톡을 주고받았다.
(구애에 눈이 멀어)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부끄럽지만, 나는 와이파이 기술을 기내로 들이는 시도조차 강하게 반대한다. 마치 양반가 시어머니가 답답한 며느리를 대문 밖으로 내쫓고, 소금을 뿌리며, 대문을 쾅 닫아버리는 단호함처럼 와이파이를 기내에서 내쫓고 싶다. 와이파이의 기내 유입은 득 보다 실이 더 크다고 생각하며, 인류가 비행기 안에서 만큼은 인터넷 없이 여행 본연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할 수 만 있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와이파이를 향해 천일염을 아낌없이 뿌리겠다. “어딜 염치없이 게이트를 넘어와?”
우리가 언제 기내에 와이파이가 없어서 여행 중에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다차원적으로 시각으로 보면 지루함이 곧 기내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보람 있는 지루함을 깨지 않았으면 한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고 “여행 본연의 모습”에 대한 개개인의 정의가 다양하겠지만, 필자는 사색과 내면의 모습에 집중하는 시간이 여행이 갖는 의미에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독과 사색을 너무도 쉽게 빼앗긴다. 그리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요컨대 나는 인터넷 회의론자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소음이 가득한 인터넷에 매몰되지 않기 바랄뿐이다.
비행기를 제외하고 장시간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환경이 이 문명사회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내에서 만큼은 인터넷과 잠시 인사를 하고, 투박한 엔진 소리를 들으며, 평소에 보고 싶었던 영화나 책을 준비하거나, 같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과 열띤 계획을 세워도 좋겠다. 가끔 먹는 기내식을 한껏 음미해보고, 창문 너머로 바이칼 호수나, 남태평양의 물결을 감상 일이 유튜브를 보며 키득대는 시간보다 더 값지지 않을까.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사진으로 담아보고, 아련해진 마음으로 옛사랑을 추억하거나, 제공되는 위스키로 밀린 인생 고민에 집중해 보는 시간은 언제나 우리에게 소중하고 유익하다고 천명한다.
엔진 소리, 영화나 책, 계획 정리, 기내식 음미, 호수 감상, 위스키, 밀린 고민 -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성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기내로 와이파이가 들어오는 현상은 앞으로 계속 일어날 것이다. 항공사들이 지원을 확대하고 있으니 이 경쟁 끝에 가격도, 품질(속도)도 더욱 좋아질 것이고, 머지않아 무료로 제공되는 날도 불과 향후 몇 년 안팎이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기내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잘 다녀오겠다는 마지막 안부 문자들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지고, 여행을 앞둔 순수한 기대에 부풀어 더 가치 있는 “지루한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은 여행의 시작과 끝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여행은 더 큰 재미와 자극을 주는 미디어로부터 눈을 돌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장면들을 바라볼 때 시작되지 않을까.
2020년 4’ 15 총선이 코앞이다. 실리적인 계산만을 따지는 정치인들이 나의 논리 정연한 제안에 귀를 기울 일은 없겠지만, 와이파이 서비스 등장이 “필수 불가결한 지루함”을 파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외쳐본다. ‘기내 와이파이 금지법을 국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