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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은주 Aug 24. 2023

놀멍 쉬멍 걸어봅세

제주 걷기 여행 | 하영올레 1코스

제주도는 걷기 여행 천국이다. 전국에 도보 여행 붐을 일으킨 제주올레를 비롯해 수많은 길이 여행자에게 열려 있다. 서귀포 원도심을 걷는 하영올레는 자연과 사람, 문화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제주를 더욱 깊게 들여다 보는 길이다. 서귀포시청을 출·도착점 삼아 원도심을 구석구석 둘러보며 잘 알려진 명소들과 지역 주민도 몰랐던 숲길을 복원해 3개 코스로 촘촘하게 엮었다. 하영올레는 모든 코스가 서귀포시청 제1청사에서 출발한다. 1코스는 법장사 골목과 천지연폭포, 새섬을 거쳐 다시 시청으로 돌아오며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동화 같은 골목과 맑은 솜반천

시청에 있는 안내데스크에서 올레길 지도와 팸플릿을 챙겨 넣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시청 주변을 벗어나면 한적한 주택가다. 물건 파는 소리와 자동차 소음, 아이들 웃음소리가 한낮의 적막을 깨뜨린다. 걷기 시작한 지 20분 남짓 되었을까. 토박이들이나 알 법한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풍경이 있는 오솔길’이다. 좁은 길목이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통로 같아 설렌 마음이 되어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단층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길은 흠잡을 곳 하나 없이 깔끔하고 단정하다. 부드러운 파스텔 빛깔 담장에는 꽃과 풍경들이 그려져 있고 옛 사진도 걸려 있다.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 적적한 길이지만 과거의 흔적들이 따스한게 감싸안아 준다. 담벼락 아래엔 쉬어가라고 의자도 놓여 있고 소박한 텃밭과 화단도 가꿔져 있다. 동네 사랑방인 정자에선 숲 너머로 걸매생태공원과 서귀포 시내가 바라보인다. 유명 관광지와 명소들 틈바구니에 이런 동화 같은 곳이 숨어 있을 줄이야. 투명한 원석을 찾아낸 들뜬 기분을 안고 골목길 계단 아래로 내려섰다.   

법장사를 지나 다리 하나를 가로지르면 걸매생태공원이다. 시내에서 조금 비껴있는 위치여서 그런지 찾는 발길이 뜸한 편이다. 덕분에 자연 생태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용천수가 흘러나와 하천을 이룬 솜반천은 한여름에도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큼 차가워 주민들이 피서지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맑고 깨끗한데다 수심이 적당해 물놀이하기 좋아 보인다. 이 물길이 천지연폭포까지 이어진다. 솜반천이 천지연폭포의 원류인 셈이다. 잔잔하게 흘러가다 곧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수가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감개무량해진다.  


추억의숲길과 서귀포 칠십리시공원 

솜반천과 나란히 걷는 추억의숲길은 이름 그대로 옛적 추억 속 길을 복원했다. 어릴 적 이 길을 걸어 다니던던 마을 주민들이 세월 속에 잊히고 사라져 버린 길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한 땀 한 땀 구슬땀을 흘려가며 만들었다. 무성한 수풀을 정비해 다시 이은 길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희망의 끈처럼 느껴진다. 오랫동안 인적이 없던 숲길은 탐험길에 가까워 짧은 구간임에도 꽤 길게 느껴진다. 

추억의숲길과 맞닿은 곳은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이다. 아름답게 잘 가꿔진 공원에는 서귀포를 테마로 한 시비들이 세워져 있다. 1970년대 가수 조미미가 부른 ‘서귀포를 아시나요’ 노래 가사가 적힌 바위가 눈길을 끈다.


밀감 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내 고향 

칠 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동백꽃 송이처럼 예쁘게 핀 비바리들  

콧노래도 흥겨웁게 미역 따고 밀감을 따는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시원한 그늘 아래 놓인 편백나무 의자는 신의 한 수다. 등을 대고 편안히 누워 있으면 세상에 이만한 휴식이 없다. 주르르 흘러내린 땀을 식히는 달고 시원한 바람. 눈을 감으니 스르륵 잠이 몰려온다. 아쉽지만 더 깊은 잠에 빠지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으니 말이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폭포 소리가 들린다. 점점 거세지는 소리에 발걸음도 빨라진다. 칠십리시공원이 품고 있는 기막힌 전망, 천지연폭포다. 

폭포 전망대는 물이 떨어지는 상류와 주변 숲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다. 먼 길 마다 않고 온 여행자들에게 근사한 선물을 안긴다. 폭포가 힘차게 쏟아지 굉음이 수 킬로는 떨어진 전망대까지 생생하게 들린다. 마침 청아한 새소리가 어우러져 독특한 하모니를 이룬다. 날씨가 맑았다면 한라산까지 또렷하게 보였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무척 만족스럽다. 폭포와 함께 시와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꽃과 나무들을 즐기다보니 이런 곳을 매일 찾을 수 있는 지역민들이 부러워진다. 아, 부러우면 지는 건데. 


새섬은 필수천지연폭포는 선택

공원을 나서면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이다. 차가 다니는 도로 가여서 앞뒤 살펴가며 조심히 걸어야 한다. 야자나무가 뻗어있는 길 끝에는 새연교가 있다. 전통 고기잡이 배인 ‘테우’를 형상화한 다리가 이채롭다. 원래도 이름난 명소였지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따. 

새연교를 건너면 무인도인 새섬에 닿는다. 새섬은 초가지붕을 잇는 새(띠) 풀이 많이 자라서 붙은 이름이다. 옛적 사람이 거주했다는 섬에는 풀과 나무, 새들이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섬 입구에서 옛 노래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통에 어깨가 들썩이며 흥겨워진다. 나무 덱이 깔린 탐방로를 따라가면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탐방 시간은 20~30분 정도면 적당하다. 

새섬에서는 걸음을 조금 늦춰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충분히 음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곧게 뻗은 탐방로를 따라 섬 반대편에 도착하면 맞은편에 문섬이 바라보인다. 문섬 아래 바닷속이 국내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로 꼽히는 절경이라지만 수면 위로 보이는 모습도 아름답고 신비롭다. 문섬을 어깨에 걸치고 섬 동쪽까지 걸어가니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송이 흙길이 밟힌다.    

다시 새연교를 걸어 나와 천지연폭포로 향한다. 폭포 관람은 선택사항이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다면 다녀오기를 권한다. 칠십리시공원에서 바라본 것과는 또 다른 감흥을 받을 수 있다. 상록수가 우거진 숲길을 빠져나와 계단을 오르면 순식간에 도심 분위기로 바뀐다. 맛집들이 모여 있는 아랑조을거리를 지나 중앙로터리에 이르면 올레길은 거의 마무리된다. 길이 끝나는 것이 아쉽다면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쉬어가거나 아랑조을거리 맛집 탐방을 나서보자. 이쯤이면 굳이 도착점인 서귀포시청까지 가지 않아도 올레길을 완주한 거나 다름없다.



하영올레 1코스 : 8.9km / 약 3시간

서귀포시청 – 법장사 골목길 – 걸매생태공원 – 추억의숲길 –칠십리시공원 – 새연교, 새섬 – 천지연기정길 – 제주올레여행자센터 – 아랑조을거리 – 시청    


TIP.

담장이나 전봇대, 거리 바닥에 화살표와 간세를 본 뜬 올레길 표식이 붙어 있어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분홍색 화살표를 따라 가면 된다. 길을 걷다가 벽이나 바닥에 올레길 표식이 보인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여행전문지 <여행스케치>에 2022년 10월 호에 연재된 기사입니다. 여행정보는 변동될 수 있으니 방문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 기사에 대한 텍스트,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기사에 대한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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