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순간에 희망이 있다.
지유의 여덟 번째 생일날 오랫동안 갖고 싶어 하던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로 주었다. 틈만 나면 연습하던 아이는 바람이 선선한 어느 오후, 용기를 내 앞마당 쪽으로 향했다. 집 앞은 막다른 골목이라 오후가 되면 드나드는 차가 거의 없다. 도롯가는 빗물이 빠지는 곳으로 아주 약간의 경사가 있어 평지처럼 보이지만 막상 스케이트에 올라타면 길의 모양을 따라 바퀴가 굴러가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은 난코스이다.
잠시 중심을 잡아보더니 안되겠는지 애타게 나를 찾는다. ‘엄마, 내 손 좀 잡아줘.’ 오랜만에 초여름 오후 해를 등진 채 딸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던 날이 떠올랐다. 그 시절로 시계를 되돌려, 지유의 앞에 서서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아이가 한발 한발 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던 주먹 대신 이제는 내 손이 꽉 찰 정도로 커진 손이지만, 온전히 나에게 자신을 맡긴 모습이 그대로였다.
잊고 있던, 하지만 사무치게 그리웠던 순간 속에 시간이 멈추었다. 과거의 한 장면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상상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살랑, 바람이 불어왔다. ‘지유야, 앞으로도 엄마가 이렇게 너에게 손잡고 무언가를 가르쳐줄 날이 있을까?’ 혼잣말에 가까운 질문에 지유는 ‘나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줘. 그러면 평생 가르쳐줄 수 있어.’라고 대답했다. 그렇네. 너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줘야겠다. 두 손 꼭 잡고.
잡은 손을 떼는 순간 아이는 큰 도약을 한다. 도약 직전의 순간이 가장 나약하고 위태롭지만, 그렇기에 아름답다. 미완이 주는 아름다움은 피지 못한 꽃봉오리에 있고, 저무는 노을 속에 있다. 그것은 결론에 도달하기 직전의 순간에 존재하며, 동시에 삶의 모든 순간에 존재한다. 우리는 결과가 아닌 순간을 살아가기에.
벼랑 끝에서 아이는 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는 떨어진다는 현실을 본다. 희망에 용기를 걸지 않는 건 넘어진 아픔을 알아서일까? 주저하는 두려움에, 망설이는 시간 속에 희망은 시간과 함께 속절없이 날아가 버린다. 아이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선 나부터 날아야 한다.
저무는 노을 속에 시간이 조금 더 멈춰있길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도약을 꿈꾼다. 곧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