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o Mar 30. 2017

08. 리옹에서 만난 유림이

리옹에서 잠깐의 만남이지만 인상 깊었던 그녀와의 만남

지난 몇 주간 여행기를 올리지 못했다. 나름 바쁜 것도 있었지만, 최근 우리는 'EBS 세계 테마 기행 시청차 큐레이터' 모집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서 몇 주간 여행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브런치에 글을 한동안 올리지 못했다. 어젯밤에 수십 번의 수정 끝에 간신히 여행계획서를 담당자에게 제출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마도 우리 여행 계획이 선정된다는 건 정말 대박 행운이 따라야 할 듯하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도전을 해야 행운이 우리에게도 반드시 올 것이라 난 굳게 믿는다.


이제 그동안 못쓰던 우리의 여행기를 다시 쓸려고 한다. 시간을 되돌려 2016년 7월 우리가 프랑스 여행할 때 당시 리옹에서 만났던 유림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때가 2017 년 3월 말이니 벌써 유림이를 리옹에서 만난 지 9개월이 다돼간다. 유림이를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원래는 그녀를 만날 계획은 없었다. 우리 부부가 샤모니를 가기 위해 중간에 리옹을 경유했는데 리옹에 도착하기 전날, 우연히 슈빙이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대학 후배인 유림이와 연락이 되었다. 카톡으로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며 유림이와 대화를 나누던 슈빙이 우리 샤모니 가는 길인데 중간에 리옹을 거쳐서 간다고 이야기했다. 마침, 유림이가 리옹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고 방학이지만 아직 한국에 들어가지 않고 당분간 리옹에서 머물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딱 맞아떨어져서 우리 부부는 리옹에서 유림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유림이가 찍어준 우리

7월 4일 오후 1시쯤, 리옹 시내에 접근할 때부터 차가 막혀 예정 시간보다 3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유림이를 리옹 미술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처음 만남부터 본의 아니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다. 미술관 앞에 기다리는 유림이를 알아본 슈빙은 차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다고 한다. 나는 주차를 하기 위해 먼저 슈빙을 내려주고 미술관 근처를 한참을 배회하다 결국 미술관 앞에 있는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사실 난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돈 중 하나가 주차비라고 생각한다. 어지간해선 주차비 안 내려고 갓길 주차(소위 불법주차-_-;;)를 많이 하는 편인데 유럽에서는 한국에서 하던 주차 습관처럼 하기에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한국보다 강력하게 진행하는 불법주차단속 그리고 엄청난 벌금, 무엇보다 갓길에 주차를 하면 자동차 도둑들에게 차를 털릴 위험이 농후했다. 유럽에서는 자동차 안에 고가의 물건을(지갑, 핸드폰, 노트북, 카메라 등) 두고 내리면 자동차 도둑을 의 타깃이 되어 차 유리창을 깨고 훔쳐간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절대로 차 안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내리지 않고 되도록이면 차 안을 깨끗하게 비운 상태서 주차를 한다고 한다. 특히, 남부 유럽(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스페인)이 자동차 도둑이 심하다고 하니,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얼마나 치안이 훌륭한 나라에서 사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어쨌든, 난 결국 주차비 아끼려다 자동차 털리거나 벌금 맞아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안전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 생각하고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나마 조금 덜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리옹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점심시간 오랜만에 해보는 칼질

주차를 하고 슈빙한테 연락해서 어디 있는지 위치를 파악했다. 다행히 그녀들은 미술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점심시간을 훨씬 지난 시간이라 유림이와 점심식사를 같이했다. 리옹 시내에서 유림이가 잘 아는 맛집이 있어 그 집으로 갔다. 유학생활을 통해 불어가 어느 정도 되는 유림이 덕분에 식사 주문을 할 때 정말 편하게 주문했다. 생각보다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인 프랑스, 프랑스인들은 자국어 대한 자부심이 유별나게 강하다. 무엇보다 프랑스의 영원한 라이벌 국가인 영국의 언어이니 어떻게 보면 프랑스인들 입장에선 그렇게 달가워할 언어는 아닌 듯하다. 오죽하면 영어를 할 줄 알아도 불어로 대답을 한다고 할까? 그 정도로 자국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우리나라를 보면 가끔 너무 영어를 지나치게 사용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영어가 국제 통용어 인건 맞지만 그래도 우리의 말에 조금 더 자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말도 충분히 아름답고 훌륭한 언어이니깐 말이다. 그래서 난 가끔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지역을 여행할 때면 영어보다 차라리 한국말을 한다. 어차피 현지인들에게 영어나 한국어도 외국어 인건 마찬가지 그럴 땐 차라리 어설픈 영어보다 유창한 한국말이 낫다. 신기한 건 그들도 내가 영어로 말할 때보다 한국어로 얘기할 때 알아듣는다는 게... 미스터리이긴 하다. 


오랜만에 만난 슈빙과 유림이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난 사실 유림이를 그날 처음 봤다. 아무래도 슈빙의 지인이니깐, 그래서 유림이가 처음인 나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난 유림이와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오늘의 메뉴라고 프랑스식 오리요리인데 먹어보니 매우 맛있었다. 매일 캠핑장에서 음식을 해 먹다가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정통 프랑스식 요리를 맛보는데 정말 프랑스 음식은 일품이었다.


유림이와 우리부부 

유림이는 지난 우리의 결혼식 때 한국에 있었는데  참석을 못해 미안하다며, 대신 점심을 사주겠다고 한다. 사실 어찌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안 사줘도 되는데 오히려 우리가 사주고 싶었는데 한사코 자기가 사주고 싶다고 하니 결국 자신이 그날 점심값을 지불했다. 유림이한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우리가 가난한 유학생에게 얻어먿은게 미안하긴 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리옹 시내를 흐르는 강인 숀 강에서 강변의 풍경을 즐겼다. 유림이는 우리에게 리옹의 이것저것을 설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7월의 리옹은 날씨가 너무나 맑고 좋았다. 대신 햇빛이 너무 강해서 대낮에는 선글라스나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외출을 나가는 게 좋은 것 같다. 숀 강변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유림이의 추천으로 차를 타고 리옹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푸르비에르 대성당에 갔다. 이성당은 리옹 시내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 여기에 올라가면 리옹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과연 푸르비에르 대성당에 올라가 보니 리옹 시내가 한눈 펼쳐졌다. 뷰가 너무 환성적이었다. 날씨까지 맑고 쾌청해서 저 멀리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이 보였다. 세상에 리옹에서 몽블랑까지 약 250km 넘는 거리인데 여기서 몽블랑이 보인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일이면 우리는 저기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몽블랑 근처 마을인 샤모니에 도착한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유림이와 우리는 성당 전망대 매점에서 파는 허니 맥주와 오렌지주스 주문했다. 꿀이 들어간 맥주라고 해서 슈빙과 유림이는 허니 맥주를 주문해서 마셨고 난 운전을 해야 하므로 맥주 대신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우리는 뷰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유림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통해 유림이가 어떻게 유학생활을 하는지 고충을 듣게 되었다. 외국에서 혼자 하는 유학생활이 얼마나 외로움과의 싸움인지 유림이를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유학생활하느라 힘들어도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눌 한국 친구들이 거의 없는 리옹에서 유림이는 많이 외로웠나 보다. 슈빙과 나를 만났을 때부터 유림이의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 생각하지도 못한 우리의 리옹 방문에 무척 반가웠나 보다. 그리고 외국에서 아는 지인을 만나니 우리도 유림이 못지않게 무척 반가웠다. 타국에서 말이 통하는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 그것도 아는 지인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가뭄 속에 한줄기 단비처럼 느껴진다. 

난 유림이가 리옹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유림이한테 물어봤다. '학교에서 전공이 뭐니?' 그러자 유림이가 대답을 해줬다 '오빠 저 사진 공부해요' 아... 유림이는 현대 예술사진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구나. 내심 그 순간 유림이가 부러워졌다. 사진가를 꿈꾸는 나에게 있어 늘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있던 사진 유학... 

비록 사진 유학은 현재 상황상 못 가지만 나만의 사진의 철학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결혼을 해서 슈빙과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유림이랑 사진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유림이가 이번에 '아를 사진축제'에 꼭 가보라고 추천해 줬다. 아를 사진축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진가들의 축제인데 매년 7월~9월까지 아를 시내 전체가 거대한 전시회 공간으로 변신한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남프랑스 여행할 계획인데 아를에 들러서 사진축제를 꼭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으이곡, 시간이 흘러 리옹을 떠날 시간이 됐다. 리옹을 떠나기 전 유림이가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책 제목은 <사진에 관하여>였다. 책 앞면에 자필로 편지까지 써주면서 말이다. 정말 고맙고, 감동이었다. 그날 처음 봤는데 같은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에 대해 공감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짧은 시간이지만 말이다. 나는 여행 내내 유림이가 선물로 준 책을 소중하게 가지고 다녔다. 같은 사진가의 꿈을 가지고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우리의 앞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서로에게 기도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편 10절



작가의 이전글 07. 자동차 캠핑여행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