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가장 의미 있는 시간임과 동시에 가장 많은 생각을 들게 한 시간
8일간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몸은 고생스럽고 최종 목적지인 ABC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내려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겨울 히말라야를 8일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잘 다녀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트레킹을 다녀온 다음날 카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해피홈이라는 단체에서 반나절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사실, 봉사활동 계기는 대광이의 10년 전 기억 때문이다. 당시 교회서 네팔 봉사활동을 다녀온 대광이는 그때 만났던 순수한 어린 영혼들의 맑은 눈방울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10년 만에 네팔을 방문한 대광이는 이번 기회 때 봉사활동을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먼저 포카라에서 빈민촌 사역을 하는 해피홈이라는 단체를 인터넷을 통해 알아내서 담당하시는 수녀님에게 연락을 시도한 후 봉사활동 의사를 표시했다. 수녀님은 우리의 봉사활동 의사를 수락해주셨다. 시간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사역.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다음날 오후 12시쯤 수녀님에게 연락이 왔다. 1시에 산촌 다람쥐 앞에서 픽업 오겠다는 연락이었다. 당시 우리는 오전 시간에 자전거를 빌려 국립 산악박물관을 관람하던 중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관람을 끝내고 숙소로 복귀해 봉사활동 갈 준비를 했다. 시간이 1시가 되었다. 약속대로 수녀님이 우리를 픽업하러 나오셨다. 나는 카메라를 대광이는 기타를 챙겨 들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수녀님과 인사를 나눈 후 차에 올라탔다. 해피홈까지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차 안에서 수녀님은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이렇게 시간을 내서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칭찬했다. 괜히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머쓱하면서도 좋았다. 학창 시절 이후 얼마 만에 들어보는 칭찬인가? 한편으론 봉사활동 하면서 괜한 불편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부담도 동시에 들었다.
우리를 태운 차는 공항 근처에 있는 어떤 빈민촌에 내려다 줬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일단 우리의 재능을 가지고 사역을 시작했다. (나는 가족사진 촬영 사역, 대광이는 찬양사역) 보통 우리들은 네팔에 오면 주로 관광지에 머문다. 카트만두의 타멜, 포카라의 레이크사이드 등 이곳들은 관광특구지역으로 중심가에 위치해 있고 (서울로 치면 명동, 북촌과 같다.) 가장 번화가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호텔, 카페, 레스토랑, 상점, 은행, 여행사 등등 온갖 편의시설이 모여있다. 관광하기에는 편하다. 그러나 현지들이 사는 로컬 지역은 우리는 어지간해선 가지 않는다. 낙후되고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현지인들 삶을 알려면 로컬 지역만 한 곳은 없다. 다만, 우리가 알고 싶다고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함부로 침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상호 간의 신뢰와 이해관계가 맞어떨어질때 비로소 다가갈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삶과 터전을 존중해야 하고 그들의 인권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2시간가량 지났다. 그 사이 수녀님은 잠깐 어디 간다고 얘기만 해놓고 훌쩍 가버리시고 우리만 빈민촌 한가운데 남겨졌다. 현지인들의 그런 우리를 신기한 듯 지켜보고 먼저 다가와서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봉사활동 계획이라곤 전혀 없는 상황 속에 나는 계속 동네 사람들 모아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있고 대광이는 공터에서 홀로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고 있다. 대략 이런 상황에 난감에 할 때 때마침 해피홈에서 오신 또 다른 수녀님과 봉사활동하는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안내로 해피홈에 방문하게 됐다. 해피홈에서 만난 봉사활동하는 학생들과 인사를 나눈 후 수녀님이 끓여주신 야채라면을 먹었다.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각자 5000루피씩 후원해 사모사(인도 커리가 들어간 튀김만두) 300개를 사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굶주릴 배를 채워줄 음식. 이것이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해피홈은 두 분의 수녀분이 운영하시는 단체다. 이곳을 도와주는 현지 스태프분들도 몇 분 계시고 여름이나 겨울이면 방학을 맞이해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혹은 봉사활동 단체에서 일주일 단기로 봉사활동하러 온다고 한다. 수녀님들은 한국을 떠나 포카라에 정착해 빈민촌 사역을 한 지 10년이 되셨다고 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곳에서 빈자들을 섬기고 계신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식 때 수상금 전액을 콜카타 빈자들을 위해 썼고 노벨 평화상 수상 기념 축하 만찬도 거절한 채 오로지 빈자들을 위해 헌신하다 생을 마감한 테레사 수녀. 마찬가지로 네팔 포카라에서 빈민촌을 섬기는 수녀님들과 이름 없이 헌신하고 사역하시는 분들을 보면 비록 종교는 다를지라도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꼈다. 오늘날 돈과 명예, 권력에 취해 타락해 가는 한국 일부 교회들을 보면 전혀 예수 그리수도의 향기가 나질 않는데 이는 상당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번 네팔 여행은 트레킹이 주목적이었고 사실 봉사활동은 하루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어쩌면 우리의 잘 포장된 욕심 아닌 욕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채 반나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여행에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고 더불어 나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가져다준 시간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기독교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개신교인이다.
하지만 지금의 부패한 한국 기독교를 보면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악행에 때때로 분노의 마음 들곤 한다. 예수님을 전혀 닮지 않은 기독교인, 하나님이 아닌 맘모니즘을 섬기고, 세상 권력에 아부하고, 아버지 목사가 교단법을 우습게 여기고 아들 목사에게 대형교회를 세습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척, 믿음이 좋은 척, 온갖 지키지 못할 율법을 만들어 정죄의 도구로 삼아 우리를 압박하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척하고, 어쩜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저질렀던 추악한 죄악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현재 2018년 대한민국에 고스란히 그대로 보이고 있단 말인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해피홈 봉사활동은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시간이었다.
<안나푸르나 원정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