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우리의 이야기
서울에는 한강이 있다면, 런던에는 템즈강이 있다. 이 템즈강변을 따라 수많은 레스토랑들과 펍, 카페들이 있는데 이중 마음에 드는 펍에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런던에서 유학생활했던 친구가 내가 런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카톡으로 연락이 왔는데 런던 가면 꼭 이 펍에서 점심을 먹으라고 적극 추천해 줬다.
그 친구가 추천해준 펍 이름은 'Founders Arms' 템즈강변을 따라 테이트 모던 옆에 있는 이 펍은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한 펍이라고 한다. 난 우리 슈빙을 데리고 친구가 알려준 펍에 갔다. 점심메뉴를 주문했고,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생맥주와 함께 영국식 수제버거가 나왔다.
6.99파운드였나? 가격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살인적인 런던 물가 치고는 비싼 건 아니었다. 친구 말대로 여기 수제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맛있게 점심을 먹고 템즈강변의 한가로운 오후를 즐겼다. 평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영국인들이 템즈강변에 나와 휴식을 즐기고 있는 여유가 물씬 느껴졌다.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느끼기 힘든 그런 여유로움...
부럽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이런 여유로운 생활을 모두가 즐길수 있을까?
'Founders Arms' 구글 주소
런던에 가면 템즈강변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이라는 미술관이 있다. 우리나로 치면 국립현대미술관 겪은데 지난 2000년 영국 정부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일환으로 그 당시 화력 발전소였던 건물을 테이트 그룹이 발전소를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오픈했다고 한다.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테이트 모던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으로 떠올랐다. 테이트 모던에는 총 3개층을 전시장으로 쓰고 있고 꼭대기에 올라가면 템즈강과 런던 시내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와 옥상 카페가 설치되어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테이트 모던을 구경하던 그날, 우리 부부는 하루정도는 각자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프리데이(free day)로 정했다. 늘 같이 동행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을텐데 서로에게 맞추느라 사실 못 간곳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내가 먼저 슈빙에게 제안했다. 슈빙도 흔쾌히 받아 들이면서 그렇게 그날 하루는 프리데이가 성사되었다. 나는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회를 감상하고 남은 시간에는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작업을 하는 자유로운 오후시간을 보냈다. 늘 같이 여행을 다니는 우리에게 가끔은 서로에 대한 구속? 은 풀어주고 하루쯤은 자유로이 개인적 시간을 가지는 것은 장기간 여행하는 부부에겐 좋은 것 같다.
6월 23일 그날은 하루 종일 비만 오다 저녁이 될 때쯤 비가 멈추고 날이 갰다. 시간은 저녁 7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여름날 런던은 대낮처럼 환하다. 우리 부부는 숙소를 나와 템즈강변을 따라 산책을 했다. 시원한 강변의 바람을 맞으면서 강변길 따라 쭉 걷다 보니 어느덧 런던의 명소인 빅벤이 보였다.
브렉시트라는 대형 잇슈가 터졌던 그날 런던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빅벤 근처에 여기저기 언론사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나와 열심히 취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취재기자들이 취재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근처 상점에서 맥주 두 캔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샀다. 그리고 빅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빅벤과 유유히 흐르는 템즈강을 바라보면서 맥주 한잔을 들이켰다. 템즈강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유유히 흐를 것이다. 이렇게 자연은 일관된 목적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이런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여행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이 여행의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 질문은 사실 지금도 진행형이다. 여행이 끝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우리가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가졌던 목표와 초심은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일까? '함께 걷는 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 부부의 여행은 평범하고 다른 여행자 부부의 여행과 크게 다를 건 없다. 그저 평번한 부부의 여행일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함께 걷는 길'이란 주제는 적어도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고, 인생 동반자로서 함께 손잡고 가야 할 길을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용기를 심어주고 같은 방향을 보고 한걸음 한 걸음씩 그 방향을 향해 나가는 그것이 우리 여행의 최종 목적이다. 어떤 방향을 보고 길을 떠나던 속도는 의미가 없다. 느려도 좋다. 방향대로 흔들림 없이 가면 되니깐... 그래서 우리의 이번 여행을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행길의 앞두고 도전하는 '인생 연습'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유럽여행을 하게 되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럽 명문팀 구장을 방문하는 것!!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유럽축구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라면 누구나 하고싶은 목표일 것이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어떤 마니아는 아예 유럽 배낭여행의 컨셉을 명문팀 축구장 탐방기로 정해 여행을 할 정도이니깐 말이다. 여자들이여~ 남자의 이런점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남자친구와 유럽여행할때 축구 명문팀 구장 투어를 허락해줘라.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 남자들에겐 로망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영국에 가면 박지성이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트'와 런던에 있는 아스널 홈구장인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중 하군데는 방문하게 됐으니 런던에 있는 아스널 홈구장장이다. 올드 트래포트는 아쉽게 못 가게 되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아스널 홈구장이 나의 이런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북런던에 위치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런던 지하철 아스날 역에 내리면 된다. 아스날역? 응? 축구팀이름을 그대로?? 맞다 지하철 역 이름이 축구팀 이름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인 아스날이름을 그대로 따서 정했기 때문이다.
아스날 역에 내려 구글맵을 실행시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찾았다. 10분쯤 걷자 경기장이 보인다.
눈앞에 펼쳐지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아.. 여기가 바로 TV로만 봐왔던 아스널 홈구장이구나...
원래 홈구장 이었던 하이버리 스타디움 시대를 마감하고 2006년부터 바로 옆에 에미레이트 구장을 신축해 새로운 홈구장 쓰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앙리, 파브레가스, 지루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그라운드를 뛰었다.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박주영이 몸담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아스날에서 출장할 기회는 매우 적었고 결국 몇 년 못가 다른 팀으로 방출되었다.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 불리는 그가 아스날이란 팀에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방출됐으니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맨유라는 유럽 최고의 명문팀에서 7년간 밀리지 않고 슈퍼스타들과 당당히 함께 뛰었던 박지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왔다.
에미레이트 구장을 따라 몇 바퀴를 돌아봤다. 6월 말은 비시즌이라 구장 주변은 사람도 별로 없고 조용했다. 시즌때 특히 경기가 있는 날이면 여긴 정말 엄청난 인파 속에 시끌벅적했을 텐데 지금은 시즌 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게 아쉽긴 했다. 경기장 투어를 하고싶어 인포메이션에 문의했다. 경기장 관람 시간은 따로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경기장 관람 시간이 끝나 아쉽게도 아스널 홈구장에 왔다는 것에만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여길 방문했다는 기념으로 경기장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갔다. 정말이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결국 이 진한 아쉬움은 나중에 바르셀로나 갔을 때 FC바르셀로나 홈구장인 '누 캄프' 투어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깐 말이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유럽은 국내서 보기 힘든 다양한 사진 전시회와 사진집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증산동에서 '포토 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를 운영하시는 지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결혼 청첩장 전할 겸 갤러리도 구경할 겸 해서 만나게 됐는데 우리가 유럽여행 간다고 이야기 하니깐 그분이 나에게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런던에 자신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의 원조겪인 '포토그래퍼스 갤러리'가 있으니 꼭 한번 들러보라고 나에게 추천을 해주셨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기억해 두었고, 런던에 와서 찾아간 곳이 바로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였다.
5층으로 구성된 단일건물이 전체가 갤러리인데 지하에는 사진 관련 서적을 구입할 수 있는 서점이 있고, 1층은 매표소 및 카페로 구성되어 있다. 나머지 2층~5층까지는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매년마다 전 세계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주제의 전시회를 기획하고 선보이고 있는데 유명 작가가 아니더라도 작품의 퀄리티가 있다면 갤러리 측에서 소개하고 있다. 약 1시간가량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서 사진이란 작가의 철학과 생각 그리고 작품에 녹아든 메시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매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문자는 민족마다, 국가마다 다르지만 이미지는 세계 공통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이 끼치는 영향력은 영상매체가 발달된 지금도 유효하다. 대표적으로 월남전 당시 미군의 네이팜탄에 온 마을이 불에탈때 벌거벗은 몸으로 뛰쳐나온 월남 소녀를 촬영한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반전여론이 형성되었다. 87년 6월의 항쟁 때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피 흘리는 이한열을 동료가 부축을 하는 사진 한장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끌어냈다. 이 사진들은 역사의 줄기를 바꾼 대표적인 사진들이다. 이래서 사진의 힘은 위대하다.
영국 포토 그래퍼스 갤러리
http://thephotographersgallery.org.uk/
소재 : 영국 런던 옥스퍼드 서커스 근처에 위치
런던 길거리에서 촬영한 몇 장의 사진들... 사실 이것보다 훨씬 많은 사진들을 촬영했지만, 안타깝게도 프랑스에서 외장하드를 분실하면서 유럽에서 촬영한 사진들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맨붕상태에 빠지긴 했다. 그나마 페북이나 블로그에 올린 몇 장의 런던 사진들이 남아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