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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 Mar 04. 2017

05. 400유로 증발사건

현금인출기가 돈을 먹은 어처구니없던 사건

사건이 시작되었던 그날 아침,

2016년 6월 28일 아침, 8박 9일간의 런던 여행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파리행 유로스타에 올라탔다. 이 열차를 타면 2시간 30분 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다. 우리는 티켓에 표시된 자리를 찾아 앉았다. 파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현금을 인출해야 한다. 사실 출발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미리 어떤 거래자에게 예약해 두었던 중고 캠핑장비를 파리 북역에서 만나 인수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열차가 출발하길 기다렸고 잠시 후, 우리를 태운 열차는 출발했다. 서서히 동력을 끌어올려 속력을 올리기 시작한다. 창가 밖 멀어지는 런던의 풍경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전날에 밤샘 피로가 몰려왔다. 이미 우리 슈빙은 곯아 떨어져 있었고, 나역시 무거워진 내 눈꺼풀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눈을 스르륵 덮고 있었다.


한참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어보니 우리를 싣은 열차는 영국과 프랑스를 가로지르는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 평원을 달리고 있었다. 열차 안에서는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20분 후 이 열차는 목적지인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배낭을 챙기고 서둘러 내렸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거래자한테 도착했다는 카톡을 보냈다. 거래자는 북역 정문 쪽에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다. 알겠다는 답변을 보내고 나서 우리는 현금인출기(ATM) 기를 찾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유로를 인출하지 않아서 파리에 도착하면 4일 치 생활비용과 중고 캠핑장비 비용 합쳐 400유로 정도 인출할 생각이었다.


400유로가 증발되다!

지금도 그때 사건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린 그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ATM기를 찾아 현금을 인출하려 하는데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애 집시들이 우리에게 접근했다. 하필이면 돈을 인출하려는 시점에 집시들이 접근이라니... 아마도 집시들은 우리가 돈을 인출할려는 모습을 보고 구걸하기 하기 위해 접근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집시들은 우리에게 달라붙어 돈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집시들의 이런 행동은 돈을 뽑으려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우리의 돈을 빼앗길까 봐 경계를 하였다. 우리는 각자 포지션을 정했다. 난 돈을 서둘러 뽑고, 슈빙은 집시들의 행동을 감시하면서 방어하고 그러는 사이 나는 얼른 400유로를 ATM기에 입력하고 돈 나오는 구멍을 뚫어지게 보면서 돈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응? 돈이 나오질 않았는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어찌 된 영문일까? 내가 잘못 입력해 돈이 안 나왔나 생각해서 바로 옆 ATM기에서 다시 한번 시도하였다. 그사이 집시들은 아무리 돈을 구걸해도 우리가 들은 척도 안 하자 결국 포기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경 쓰이던 집시들이 사라지자 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시 현금인출을 재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400유로가 인출되었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래자와 약속시간이 늦어 일단 거래자를 만났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캠핑용품을 확인했고 생각보다 캠핑용품이 많았다. 거래자는 자신들이 캠핑 여행하면서 사용한 것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거래 장소가 길거리이고 잠시 도로변에 주정차한 상태여서 여기서 거래하긴 곤란했다. 우리는 거래자의 차를 타고 우리가 예약한 숙소 쪽으로 이동해서 안전하게 거래하자고 제안했다. 거래자도 그게 좋겠다고 승낙을 했고 거래자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런데 이동하면서 아까 ATM기에서 첫 번째 인출을 시도할 때 돈이 안 나온 것이 마음에 자꾸 걸렸다. '설마 내 통장에 400유로 두 번 인출된 것이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바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티은행 앱에 접속해 나의 계좌 거래내역을 확인했는데 확인한 순간 난 잠시 내 두눈을 의심했다.


거래내역에는 분명 400유로가 두 번이나 
인출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첫 번째 현금인출을 시도할 때 400유로의 돈이 안 나온 것이다. 즉 400유로가 아무런 흔적 없이 증발되어버린 것이었다!! 


400 유로면 그때 당시 환율(2016.6.28  1유로 1303원)로 우리 돈 53만 원이란 큰돈이었다. 53만원이란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믿겨지질 않았다. ㅠㅠ


난 멘붕상태에 빠졌다. 결국 우리는 거래자에게 사연을 얘기하고 다시 역으로 되돌아갔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ATM기 담당자를 찾아 어설픈 영어로 400유로가 증발되었다고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ATM 담당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메모지에 연락처 하나를 알려주었다. 이쪽으로 연락해보고 조치를 취해보라고 한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담당자가 적어준 연락처로 연락을 해보았지만 그쪽에서 해준 답변은 먼저 당신이 사용 중인 국가의 은행에 사고 접수를 하라고 한다. 


우리의 여행비용은 시티은행계좌에 보관해두고 있어서 우리는 시티은행에 연락해 사고를 접수했다. 시티은행 측에선 사고 접수를 받고 해당 ATM기 담당 은행에 클레임을 진행하겠다고 알려주었다. 클레임을 처리하는데 최대 60일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한다. 60일 걸려도 좋다. 잃어버린 400유로가 돌아올 수 있다면 그 이상 시간이 걸린다 해도 좋다. 은행측에선 그 사이 진행되는 클레임 진행상황은 메일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한다. 


결국 그날 우리는 400유로를 어이없이 날려버렸다는 허망감에 휩싸여 하루 종일 자괴감에 빠졌다. 앞으로 여행기간은 창창하게 많이 남아있는데 50만 원이 넘는 큰돈을 잃어버리다니... ㅠㅠ  이 돈이면 유럽에서 우리의 4일 치 여행비용이다. 여행 중에 별에 별일이 발생할 수 있지만 ATM기가 돈을 먹는 경우는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이런 어이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우리가 미친척하고 400유로짜리 호텔방에서 숙박하면 우리를 위한 소비이니 아깝지라도 않기도 하지...


어쨌든, 우리는 시티은행에 현금분실신고를 접수했고 증발해버린 400유로가 다시 내 통장에 꽂히길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머나만 타국인 프랑스에서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액땜 비용 400유로 

사건이 발생하고 다음날, 우리는 일단 400유로 충격을 잊기로 했다. 여행은 아직 많이 남았고, 파리에서부터는 자동차를 렌트하기 때문에 자동차 여행이 곧 시작된다. 어제의 사건 때문에 남은 여행 일정 망칠 수 없었다. 마음이 쓰라리지만 일단 잊고 여행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여행은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깟 400유로, 유럽에서 안전하게 여행하는데 
액땜한 비용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해야 우리 마음이 그나마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60일 뒤 시티은행에 접수한 클레 임건은 결론부터 말하면 환급받는데 실패했다. 해당 은행 측에선 우리에게 돈을 지급 거절한 이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저 어이가 없어 말문이 콱 막혔다. 한국이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어이없는 사건!! 상황이 상황인 것도 아쉬웠다. 우린 외국인이고 여행 중이었다. 불어가 젼혀 안 되는 우리에게 프랑스에서 그 누가가 증발한 우리 돈을 적극적으로 찾아주는 이는 있을까? 하지만 이것도 여행의 일부다. 여행이 항상 좋은 경험만 있는 건 아니다. 당신이 소매치기당할 수도 있고, 분실할 수도 있다. 때로는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여행 중 병이 날수도 있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안정적인 생활을 떠나 불확실한 것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 속에서도 당신은 포기하지 않고 여행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아쉽고 쓰라린 경험도 
결국 여행의 일부라는 것!


한동안 한동안 말인데...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ATM공포증이 생겼다.  ATM기에서 돈을 뽑는데 그때의 안 좋은 추억이 떠올라 돈을 뽑을 때마다 어찌나 스릴 있던지.... 이건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심정 절대 모를 것이다.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400유로의 행방은 알수가 없다이것은 우리 여행의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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