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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실 Jan 03. 2017

곱씹을수록 맛있는 여행

씹어보면 맛없는 여행은 없다.

아, 맛잇쪙

씹어먹을수록 맛있는 게 있다. 쫄깃쫄깃한 식감의 음식이거나 씹을수록 달달한 껌이 그렇다. 비단 먹을 수 있는 음식만 씹어먹는 것은 아니었다. 교과서를 문제지를 씹어먹듯 공부하란 말을 듣기도 했다. 국가고시 시험을 준비할 때도 공부 한 페이지를 찢어서 잘근잘근 씹는 장면이 영화 속에 꽤나 등장하곤 한다. 첫 번째 책의 출간을 준비하면서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일기와 메모, 그리고 외장하드 속의 사진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100일 동안 유럽을 여행한 후에 남겨진 것은 점점 잊혀 가는 기억을 대비라고 하듯 준비해둔 것이다. 여행이 끝난 후 점차 가물가물해져 가는 기억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믿을만한 녀석이었다. 그때 그것들을 재료 삼아 원고지를 가득 채우는 글을 써야 했다. 


만만치가 않았다. 학창 시절 언어영역은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잘 하는 편이었다. 결국 그걸 믿고 점차 더 공부를 하지 않아서 점점 더 성적은 떨어지긴 했어도 괜찮은 점수를 유지했다. 그보다 훨씬 더 어렸을 적에는 백일장이든 글쓰기 대회에 나가선 첫 글자를 떼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잘 쓰고 싶은 부담감과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어려움이었다. 그 증상이 고쳐지지 않았지만 어느새 한 권의 책을 완성시켜야 했으니 말이다. 


여행기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여행하면서 쓴 먹고 구경하고 잤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박한 날은 물론이고,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한 날 등 여행한 많은 날들이 남아있었다. 그 글을 그대로 옮겨 쓰기엔 한낯 여행일기뿐이었다. 더 재밌고, 독특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다. 혼자서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매 순간 재미있고 충만하지 않았다. 보통날처럼 평범하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여행이 끝난 후의 지금의 나로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했다. 평범한 날의 기록, 소소하게 끄적인 낙서들이 하나의 완성품이 될 수 있는 구성품이었다. 쓸만한 내용을 찾아내기 위해 기록을 읽고 사진을 뒤적였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사진 한 장이나 일기 한 줄로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둘이 어울려지자 지금 내가 글을 쓰고자 앉아있는 독서실이 아니라 여행 중이던 나로 돌아갔다. 아 참, 내가 그랬었지. 아, 이런 일도 있었지. 하는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럴수록 현실로 돌아와서 다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아쉬움과 우울함이 위로받았다. 내가 그토록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이 있었지. 이미 지나간 시간이더라도 정말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했음을...


벌써 나의 꿈같은 여행이 지나갔음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지금 달콤했던 여행에서 깨어나 다시 일상생활의 바쁘고 치이는 생활을 하더라도 나에겐 그 시절이 있어서 행복했음을 잊지 않게 해줬다. 여행을 곱씹어보니 여행할 때도 모르고 지금도 몰랐던 감정들이 더 새어 나왔다. 신기하면서도 특별했다. 내가 여행하는 순간 더 충실하지 못하거나 모든 감각을 쏟아붓지 못해서일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 과기분은 과거의 여행과 현재의 일상이 있기에 더욱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밋밋하고 또다시 반복된다고 느껴지는 일상에 다녀온 여행을 곱씹어보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때 겪은 일에 웃음 짓고 또 아쉬움도 남기에 다시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 곱씹을수록 맛있는 여행이여.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말처럼 그때의 힘듦도 어려움도 기쁨 모두 지나가서 결국 행복만 남는 것 같다. 최악의 여행을 경험했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곱씹어보면 그때는 몰랐던 맛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여행은 두고두고 먹어야 알게 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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