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대로 구경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름 일찍 일어났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프라하의 트램을 몇 번 타다 보니 어떤 시스템인지 어느 정도 이해했다. 90분짜리 티켓을 끊으면 멀리 갈 수 있을 테니 아예 프라하성까지 타기로 했다. 여행은 늘 낯선 곳에서 시작하지만 며칠 후에는 어느 정도 길을 잘 찾아다니는 정도가 된다. 몇 번의 시행착오(노선 반대방향으로 타기/구글 지도에서 트램, 메트로 그리고 버스 모양 헷갈리기)를 거친 후에는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미리 구입해둔 티켓이 있어서 트램을 탄 후 바로 각인하면 됐다. (트램 티켓을 사용했음을 증명하는 개념, 탑승했으나 각인하지 않았을 시 불법승 차로 간주한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인지 길가에 사람들은 적었다. 우산이 없기에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트램을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올라가 드디어 프라하 성에 도착했다.
어제부터 비 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비가 오는 것은 물론이고 무지막지하게 추웠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흐리멍덩한 그레이색의 하늘과 프라하의 건물의 느낌이 잘 어울렸다. 여행한 지 10일이 지날찰나에 이토록 날씨가 다양한 곳은 프라하가 처음이었다.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핸드폰 액정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전 날 마이클이 추천해준 식당을 재빨리 찾아야 했다. 성 앞에 가면 식당이 한 곳 밖에 없으니 찾을 수 있을 거라 했는데 출입문을 열어놓고 성업 중인 식당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혼자 들어가기엔 꽤 규모가 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훨씬 넓었고 프라하 성 옆에 있는 식당은 천장도 높은 건가 싶을 정도로 널찍하였다. 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정도였고 넓은 테이블도 많았다. 그런 곳에 앉기엔 마치 8인석에 혼자 앉는 기분이라 내가 앉을 만한 자리를 물색했다. 거의 반대편 출입구에 다다라서야 2인석의 자그마한 자리가 있었다. 오늘은 체코 전통음식을 먹어볼 참이었다. 이름이 '슈니첼'이었던가? 돈가스처럼 생긴 것 있냐고 미리 캡처해둔 사진을 직원에게 보여줬다. 돌아오는 답변은 '피그는 없고 ㅇㅇ는 있다.' 혹시 양을 뜻하는 건가 싶어서 램이냐고 물어보자 아니라고 했는데 송아지를 뜻하는 것 같았다. 필스너 우르겔 0.3l도 시켜서 출입문 밖의 비 오는 날을 지켜보니 기분이 좋았다. 역시 비가 올 때는 밖에 있는 것보다 실내에서 비 오는 걸 보는 게 좋다. 비가 그쳐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비가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이 분위기와 기분을 더 즐길 수 있으니까.
그때 아빠가 뭘 먹고 있느냐며 사진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이런 적이 처음이었지만 타이밍 좋게도 오래간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 사진을 찍어 보냈다. 다행히 굶고 있지 않음을 증명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무엇인지 모를 곳이 있었다. 오래된 포도밭길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길을 따라 성벽 같은 돌담이 나란했다.
그곳을 슬슬 걸으면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또 어딘지 모를 곳이 나왔다. 내가 프라하성에 가긴 간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큰 성당이 있었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무료/유로 줄이 따로 있었다. 무료 줄에 서서 입장해서 성당의 창문을 가득 채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구경했다. 독일에서 성당을 보면서 규모에 놀랐는데 체코의 성당도 만만치 않았다.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사진을 촬영하는데 바로 옆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 무리가 있었다.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귀동냥으로 들었다.
그곳을 나와서 다리가 너무 아파서 쉴 곳 그리고 와이파이가 필요했다. 다시 쇼핑몰을 찾아 나섰다. 푸드 코트 같은데 마련되어 있었는데 중국음식, 초밥 등을 아쉽게도 스쳐 지나갔다. 중국음식점에서 맛없어 보이는 옅은 색상의 짜장 색상의 면을 보고 있자니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식당이 생각났다. 저런 누들과 여러 음식들을 덜어서 주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하루 2시간, 한참 바쁨 점심시간에 어학원 수업 끝나고 앞치마만 두르고 시작했던 일. 한국인 사장님과 사모님이 일 끝나면 도시락도 챙길 수 있게 해줘서 그곳의 음식은 거의 다 먹어볼 수 있었다. 배가 고파서 도시락에 밥을 꾹꾹 눌려 담아서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공원으로 가서 잔디밭에 누워있곤 했는데 그 시절이 떠올라 그리웠다. 그때는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니. 모든 일은 지나고 나면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 되나 보다. 가본 곳에 다시 가기보다 새로운 곳에 가길 원하는 나지만, 이상하게도 오클랜드에는 다시 가고 싶다.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6개월 정도 시간을 보냈던 나라. 처음 살았던 리차든슨로드와 시내에서 살았던 집, 학원, 공원 등...
그땐 내 나름대로 힘든 점이 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한참 흘러서 내 나이 때의 친구들이 유럽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니. 얼른 현실로 돌아와 스타벅스로 가서 59 코루나의 저렴한 살구 요거틑 시켜서 앉았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어서 꽤 피곤한 상태였다. 마이클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신고 있는 신발 때문에 발가락이 아팠다. 집에서 보자고 연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마이클이 퇴근을 하고 돌아왔고 근처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나가면서 내가 점심때 먹은 체코 음식 사진을 보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마이클이 그동안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었냐고 물어봐서 나는 주저 없이 어제 먹은 파스타라고 답했다. 그러니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미안하고 고마웠지만 흔쾌히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니 식당이 아닌 마트로 방향을 바꿨다. 베이컨과 햄, 파스타, 와인을 고르고 집으로 돌아와서 요리를 시작했다.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서성이는데 어느새 어제의 크림 파스타와는 다른 토마토파스타가 완성되었다. 토마토파스타를 원래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정말 레시피를 알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음식이었다.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 틈틈이 가이드 활동을 하는 마이클에게 체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늦어져 처음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선 다음날 떠나야 하는 날은 짐을 챙기고 잠에 들었다. 내일 아침에 마이클이 출근할 때 일어나서 굿바이 인사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