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에서 1
꽤 오랫동안 잠을 자고 느릿느릿 일어났다. 얼른 준비를 하고 나가야하는데 쉽지 않다. 차라리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나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행지에서 종종 이렇게 행동이 굼떠진다. 친구와 통화를 하느라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앞으론 준비를 어느정도 마친 후에 전화를 해야지, 전화를 하면서 준비를 하는 멀티가 잘 안되나보다.
어디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마이클이 추천해준 곳 위주로 가면 되겠지 싶어서 무작정 숙소를 나섰다. 카메라 배터리를 아침까지 충전시켜놓다가 완전히 잊고 나왔다. 충전은 왜 시켜뒀을까 싶으면서 오늘 사진 찍을 것도 별로 없겠다 싶어서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이드북에서 체코의 소개미치 우험에 대해서 봐서인지 카메라나 가방메기가 불안했다.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정류소까지 걸어가는 일이 이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딱 하나의 버스 번호만 기억하는 나는 105번 버스릍 탔다. 티켓이 없어서 버스 드라이버에게 40ck를 주고 티켓을 샀다. 왜 40을 내는지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 그래도 가장 비싼 티켓은 내가 어디서 내리든 그곳까지 허용하겠지란 막연한 생각이었다. 나중에 마이클에게 물어봐야지.
중앙역에 도착하고나니 내가 머무는 숙소는 5존이라서 버스비가 비싼 편에 해당했다. 5존에 위치하긴 해도 버스티켓에 나와있는 시간인 90분(최대 90분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추정됨) 은 걸리지 않으니 다음엔 조금 더 저렴한 티켓을 사야겠다. 소매치기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사러 쇼핑몰로 향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을 찾으려고 H&M, 오딧세이를 떠돌다 망고에서 원하던 스타일을 찾았다. 게다가 가격이 799였다가 399로 세일중이다. 이곳 물가가 100ck가 5천원이 안됬으니 2만원 안되게 마음에 드는 가방이 생겼다. 평소에 망고에서 구매해본 적도 없는 내가 스페인 브랜드에서 가방을 샀으니, 이제 나를 현지인처럼 볼까?
가로세로 30cm씩 되는것같은 호보 스타일이라 카메라랑 노트, 물 등이 다 들어간다. 이렇게 합리적인 소비를 할줄이야. 노트를 다 써서 문구류 파는 곳으로 향했다. 쇼핑몰이 크다보니 이곳저곳 필요한 것을 한번에 살 수 있게 해둬서 편리하다. 새삼스럽게 실내쇼핑몰의 냉방과 구조의 편리함을 깨달았다. 매대위에 올라간 수첩들을 보고 또 몰스킨 노트들도 봤지만 가격면에서나 디자인면에서 마음에 쏙 드는게 없었다. 몰스킨은 깔끔하고 예뻐서 갖고 싶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다른 노트들은 디자인이 너무 옛스러워서 선뜻 집어들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유화작품이 은은하게 다이어리 전체를 덮고 있는 노트와 작은 메모용 수첩을 샀다. 이것저것 붙일 수 있는 딱풀도 하나 마련했다. 여행지에서 딱풀을 살거란 예상은 미처 못했는데 여행을 기록하다보니 티켓이나 종이 등 붙이고 싶은게 생겼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치고 스타벅스에 와이파이도 사용할 겸 갔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시원한 프라푸치노를 먹고 싶었는데 가격이 비쌌다. 한국만큼 비싼 스타벅스도 없다고 했는데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아이스 카라멜마끼아또로 메뉴를 변경했는데 99c이니 한국돈으로 약4천원 정도니까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지하에 위치한 스타벅스지만 위로 뻥 뚤려있는 구조라 내 머리 위로 층층히 위치한 매장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침에 챙겨나온 크로아상과 얼음이 거의 녹아서 카라멜 마끼아또인지 잘 모를 정도의 액체와 함께 먹었다.
HK여행작가아카데미 단체 카톡방을 보니 얼마전에 둘째 딸을 여행을 보내며 배웅해주신 분의 글이 짧게 남겨져있었다. 따님 혼자 마카오로 간다고 해서 서울역에 새벽 일찍부터 배웅을 하셨단 글에서 아빠가 생각났다. 내가 집을 떠나 대학 때문에 서울로 갈때 버스터미널에서 마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 지방에서나 여태껏 함께 살던 자식이 타지로 향할때 마음이 뭉클하고 머리속이 복잡한게 우리 부모님뿐이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고 감정이다. 그 상황이 지금 내가 겪게 된 것이다. 엄마아빠의 하나뿐인 딸인 내가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의 아빠가 느껴졌다. 아빠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마음은 누구 하나 다를 바 없구나. 문득 이렇게나마 우리 아빠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한 편의 글을 띄워준 그 분에게도 감사해졌다. 단체 카톡방에서 활발히 활동하지 않는 나이지만 늘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기억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했다. 여행을 하는동안 나에게 먼저 잘지내냐며 연락을 주신 어르신 분들만 해도 그렇다. 내가 먼저 해야함이 마땅한데 그러지 못했으니 나는 참 별로였다.
한때는 타인 때문에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다.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결정권을 내가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말에, 생각에, 조언에 따라 그렇게 내가 바껴버린다거나 혹은 그 사람의 기대대로 산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것이 내 고집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게다가 그분들께 해드릴 수 있는게 없을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한 것을 말이다. 그렇게 바뀌는 나라면 결국 내가 원해서 바뀌는 것이다. 그들의 강요가 아니라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 뿐이었다.
참 다행이다. 좋은 자극과 생각을 지속할수있음에 또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