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유럽 Day9] 친절함과 돈 사이에서

맥도날드라는 은인

by 진실

하루 뿐인 할슈타트의 날, 어제 평온한 호수에 비친 불빛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할슈타트의 새벽이 궁금했다. 일찍 일어났어야 하는데 늦잠을 자버리는 바람에 무산. 얼마만인지 시내의 북적임이 아니라 새소리가 지적이는 날의 아침이라니. 제대로 힐링하는 기분이다. 1인실을 쓰는 날이 바로 그날 일다 싶어서 침대 위와 바닥 그리고 책상과 의자 등에 걸쳐두고 널브러진 짐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10시까지 정리하고 나가란 뜻의 체크아웃 시간을 지키고 싶었다. 나가기가 아쉬워 내 방에 딸린 발코니로 나갔다. 전망이 끝내주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남의 건물의 창문과 마주 볼 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낫다. 발코니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셀프로 내 사진과 이 방을 함께 남긴다. 다시 묵직하게 챙겨놓은 배낭은 카운터에 맡기고 산책에 나섰다.


날씨는 여전히 후끈하다. 팔이 타고 싶지 않아서 얇은 여름용 카디건을 입었으니 괜찮겠지?

그 전 날 예약한 CK셔틀을 타야 한다. 정류장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했다고 할슈타트 선착장으로 향했다. 할슈타트에 들어올 때만 해도 배를 타고 다시 나갈 줄 알고 왕복으로 승차권을 샀다. 하지만 이렇게 버스를 이용해서 할슈타트를 떠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몰랐다. 하긴 이곳이 섬도 아니고.


호숫가 선착장에서 남은 티켓 한 장을 환불하러 갔더니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배가 왔다 갔다 하는 때애 맞춰 사람이 나타나는 것일까? 음, 그럼 이 티켓은 어떻게 할까? 내가 여행 첫날 프랑크푸르트에서 우연히 시내로 갈 수 있는 전철권을 받은 일이 생각났다. 나도 그렇게 이 티켓을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겠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녀처럼 보이는 두 명이 있다. 다가가서 티켓이 필요하냐고 물으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나는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이 영어밖에 없는데 말보단 행동으로 티켓을 계속 내미니까 엄마가 지갑을 꺼냈다. 내게 돈을 주고 강매(?)를 하는 줄 알았던 걸까? 돈을 주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면서 티켓값인 2.5유로 가깝게 지갑에서 나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손사래를 치며 되돌아갔다. 돈을 줄 줄이야 생각도 못했는데 재미있었다.


바로 옆의 케밥집에 가서 다시 케밥을 사 먹었다. 비리거나 케밥 특유의 냄새 없이 깔끔했다. 그래서인지 작은 가게지만 꽤나 손님이 많았다. 어느새 차량에 타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서 직전에 화장실에 다녀왔다. 숙소에서 배낭을 찾아아와서 픽업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한국 가족이 보였다. 나와 같은 코스로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이었다. 9인승 벤 정도로 기대했지만 신청자가 적어서 딱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 운전자와 나, 그리고 3인 가족이면 딱 들어맞는 5인승 승용차였다. 내가 혼자다 보니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게 3인 가족에 대한 배려로 생각했다. 내가 먼저 자리에 앉았는데 아주머니께서 아저씨가 덩치가 있으니 앞자리에 앉을 수 있게 바꿔줄 수 있냐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해서 바꿔드렸다. 원래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노트북을 이용하려고 배터리를 빵빵하게 채워갔다. 앞자리에선 문제없을 것 같았는데 뒷자리에서 노트북을 펴니 화면이 다 펴지지 않았다. 앞자리와 뒷자리의 간격이 그리 넓지 않아서겠지.


고개를 낮게 떨구고 기어이 노트북 화면을 보려고 하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덮고 잤다. 승용차 운전자는 젠틀해 보였다. 하얀 셔츠와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운전하는 일이 쉽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차를 타고 지나가며 나오는 멋진 풍경에 대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체코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탄 이 차량을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까지 운전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점차 체코에 다가올수록 이야깃거리도 많아졌다. 덕분에 그 가족과 나는 재미있고 흥미롭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체코와 더욱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럴 때 사람들은 팁을 주고 그 마음에 대가를 표시하나 보다.


한편으론 가족과 함께 온 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외동딸인데, 이렇게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외톨이처럼 혼자인 기분도 났다. 이 곳은 중간중간 들리는 외딴 지역의 맥도널드가 휴게소인 셈이었다. 체스키에 도착해서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며칠 머무르고 나는 몇 시간 후에 다시 프라하로 가는 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 찰나, 아무도 못 보게 아주머니가 나에게 5유로를 주었다. 사양했지만 자리를 바꿔줘서 고맙다며 용돈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써라고 했다. 얼떨결에 손에 쥐어 버련 5유로가 그래도 조금의 불편함에 대한 보상이 되었다. 돈보다는 고마웠다는 그 마음에.


2시간가량 남은 시간, 주황 지붕이 인상적인 체스키를 구경하다 이번에는 중국인 가족과 함께 벤을 타고 프라하로 향했다. 이번의 드라이버는 말 한마디 없이 운전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젠틀하고 친절했던 그 전의 드라이버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래, 본연의 일에 집중하는 거겠지.


프라하의 중심가 같은 곳에 내린 것 같다. andel에서 트램 10번을 타고 프라하 에어비앤비 숙소에 가야 했다. 하지만 티켓을 사지 못한 채 10번이 보이길래 냅다 달려서 일단 탔다. 미리 알아둔 바에 의하면 31개 정류장이 지난 후(거의 종점)에 내려야 해서 세고 있었다. 하지만 그제야 알게 된 것이 반대편의 마지막 정류장까지 온 것이다. 이제 다시 10번을 타고 끝에서 끝까지 가야 하는데... 내가 내린 이곳은 사람도 없고, 트램도 안 다니고 서있기만 하다. 지나가는 부부가 오길래 티켓 사는 방법과 10번을 탈 수 있는지를 물어보려고 했더니 카메라를 냅다 내민다. 이 상황에 사진이라니, 그래도 아직 탈 수 있는 트램도 없으니 찍어드려야지 싶어서 카메라를 받으려고 하니 나보고 저리 가라고 손을 흔든다.


부인이 남편과 나의 사진을 같이 찍어줬다. 이 시점에서 기념촬영이라니. 하하 그래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난다. 사진이라도 찍었으니 좀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계속 영어 못한다는 말만 하면서 사라진다. 다음 타깃이 필요하다. 드디어 한 명 등장한 사람은 역무원 같아 보였다. 정장을 갖춰 입고 모자를 쓴 것이 딱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난 것 같았다.

9번 트램은 내가 가는 곳의 반까지만 가니 10번을 타야 한단다. 오, 그래 무조건 10번을 타야겠구나. 알겠다고 하고 승차권을 사려고 기계 앞에 샀건만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알파벳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 체코식 기계. 이미 아저씨는 나를 두고 걸어가고 있다. 부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아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왜 영어가 하나도 없어.. 정말 난처했다. 이대로 갔다간 호스트와 만나기로 한 시간에 100% 늦을게 뻔했다. 영어식 티켓 자판기도 없는 이곳에 와이파이가 될 리 만무했고, 급하게 유심카드라고 사고 싶지만 팔 데도 없어 보였다. 불안하였고 걱정되었다. 점점 날은 어두워졌다. 그런 내 모습을 아저씨가 봤나 보다. 만국 공통어 바디랭귀지를 아저씨는 이해했나 보다. 내게 다시 돌아왔다.


아저씨는 아무 말없이 24 chk라고 된 티켓 하나를 눌러줬다. 나는 여전히 왜 그 티켓을 사는지, 이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다. 아저씨는 갔고 10번 트램은 왔다. 저녁 9시 10분에 보기로 한 호스트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다. 이럴 때는 인터넷이 너무 간절하다. 인터넷만 되면 메시지를 보내서 한방에 늦을 것 같다고 하면 되는데, 체코 트램 승차권 사기를 검색하면 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번역하면 되는데 말이다. 기술의 편리함이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의 종착역을 지나 점점 내가 처음 트램을 탔던 시내 쪽으로 향했다. 상점들도 많았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트램이 멈춰 설 때마다 근처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금방 트램은 이동하니 와이파이 신호는 사라졌다. 결국 방법을 바꿨다. 처음부터 빵빵한 와이파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을 따라 곧 나올만한 곳의 와이파이를 잡는 것. 그리고 호스트에게 보낼 메시지를 미리 타이핑해뒀다. 복사해뒀으니 붙여 넣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맥도널드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맥도널드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여러모로) 대충 도착시간을 어림잡아서 만나는 시간을 변경했다. 중요한 숙제를 해결해놓곤 무사히 내려얄 정류장에 내려서 마이클을 만났다. 역에서 조금 걸어 숙소에 도착한 후 짐을 푼 후 호스트가 만들어주는 절인 토마토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먹었는데, 대단한 맛이었다. 먹을 걸 많이 나눠주었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맛있는 음식으로 보상받았다. 다음 날 태풍이 온다더니 바람소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자는 동안 잠깐 깼지만 피곤했는지 다음날까지 푹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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