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야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할슈타트에 가는 날이 되었다.
다행히(!!!)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어제 호스텔에서 만났던 동생은 버스를 타고 할슈타트로 간다고 하던데... 나는 어떻게 가지? 슬그머니 노트북을 연다. 그 옆의 가이드북을 집는다.
버스->기차를 탈까 싶어서 책을 살펴보고 버스 예약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내가 탈 수 있을만한 시간대는 매진이다. 오전 11시 15분 버스는 예약이 가능했는데 지금 당장 준비하고 나간대도 못 탄다. 다음번 버스는 바트 이슐 Bad Ischl 에 들리지 않는다. 바트 이슐에 내려서 기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말이지... 더 늦은 시간의 버스를 타고 갑자기 패닉. 어쩌면 오늘 할슈타트에 못 가는 게 아닐까란 불안감이 덮쳤다. 기차역에 내려서 배를 타고 할슈타트에 들어가야 하는데 버스는 이미 다 매진. 할슈타트로 들어가는 배는 몇 시에 끊키는지 모름.
처음으로 비싼 1인실까지 예약해뒀건만 아예 그 방을 못 볼 수도?
허겁지겁 준비하고 버스든 뭐든 타러 중앙역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플랫폼이 중앙역 바로 앞이었다. 105번 버스 타는 곳이 어딜 가 살펴보니 모르겠다. 기차만 타고 할슈타트까지 가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지만 차선책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버스 티켓 판매기 앞에 섰다. 어렴풋히 감으로 이리저리 버튼을 눌리니 티켓이 슝- 나왔다.
이 티켓이 맞는 거야?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할지도 모르니 옆의 여자에게 물어보니 인포메이션센터에 확인해라고 한다. 곧장 그리로 가서 직원에게 내 티켓을 내보였다. 내가 갸우뚱한 얼굴로 왜 티켓에 영어가 없는지 궁금하단 듯이 쳐다보았다. 직원 아저씨는 티켓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찬찬히 훑어보더니 결국 버스가 1분 전에 갔으니 다음 버스를 타랜다.
뭐? 1분 전? 아저씨가 행동만 빠릿빠릿했어도 탈 수 있었을 시간, 1분 전?
휴...
4번을 고이 접혀있는 버스 노선도 및 시간표를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궁금한 것은 이 티켓으로 105번 버스를 탈수 있냐는 것!! 이때다 싶어 물어보니 드라이버에게 확인해봐란다. 알겠다고 하고 4번을 다시 곱게 펴서 시간표를 확인했다. 직원이 타라고 한 그다음 버스는 바트 이슐에 안 간다.
아... 이런.
호텔 1박을 날리는 일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일단 플랫폼 F에서 타라고 했으니 그리로 향하는데 버스 한 대가 갓 출발해서 슬슬 움직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저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았다. 잽싸게 뛰어 버스 앞을 확인하니, 신이시여. 105번이다.
최고의 타이밍으로 105번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를 타기 전에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을 때는 분명 <매진>이었던 시간인데 예약과 상관없이 탈 수 있다니?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쁨이 몰려왔다.
매번 늦게 오는 버스를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기만 했다. 오늘따라 고작 몇 분 늦게 오는 버스가 나를 살린 셈이다. 이토록 감사할 수가! '빨리빨리'가 아니라 '늦게 늦게'가 오늘 하루를 살려냈다.
버스를 타고 가며 창문 넘어 바깥을 바라봤다. 지나가는 곳마다 경치 좋은 곳 투성이었다. 바트이슐에 도착해서 물 사려고 자판기를 이용했다. 27번 물을 눌렸더니 2번 캔디가 나왔다. 음... 왠지 할슈타트 마을에 가면 물을 비싸게 받을 것 같아서 지금 산 건데...
기차를 타니 금방 내릴 곳에 다다랐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는 앞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따라가기만 해도 도착한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 오솔길보단 조금 넓고 잘 닦여진 길을 잠깐이나마 걸었다. 이 곳에서 반대편 할슈타트 선착장으로 가는 길은 작고 귀여운 배를 이용했다. 왕복으로 티켓을 끊었고,
동화 속의 호수 마을 같은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체크인 시간은 2시부터인데 몇 분이 지난 찰나였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서 노트북을 켰다. 오래간만의 혼자 쓰는 방이라 이리저리 짐을 널브러져 놓고, 옷도 편하게 입고 누울 수 있어서 편했다. 햇빛이 은은하게 스며들 정도의 가벼운 커튼만 쳐두고 방에 있다가 베란다로 나갔다. 자그마한 테이블에 앉아서 사진도 찍으며 쉬었다.
어느 순간, 동네는 조용해진다. 나처럼 이곳에서 하루 이상을 머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마지막 배 시간에 맞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배를 타고 들어와서 내렸던 선착장의 케밥집을 발견했다. 저녁 삼아 하나 사 먹었는데 비리거나 냄새가 심하지 않고 깔끔했다.
배도 부르겠다. 할슈타트 하면 호수지. 멋들어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산책하며 놀고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