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시작했다고 해서 주야장천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 돌아다니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다가오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혼자 있고 싶은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그런 계기들이 참 소중하다. 안 그래도 심심했던 찰나,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주니 잘됐다 싶다. 하지만 반대로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이렇게 생기는 기회들로부터 어떻게 좋은 말로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2년 전 유럽 여행을 할 때, 여행 중반에 한국에서 친구가 여름휴가차 놀러 온 적이 있다. 그때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내다가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때 몰려오는 외로움이란.
한 달 반 넘게 혼자서 씩씩하게 다녔건만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친구와 함께 다니면서, 먹고, 놀고 하는데 벌써 익숙해졌던 것 같다. 친구를 떠내 보내고 울적함이 도통 가시지 않았다. 배웅했던 스위스 취리히 공항을 애써 서두르며 빠져나와 아무 일 없는 듯이 루체른행 열차에 탔다. 창 밖을 보면서도 기분이 우울한 것이 도통 회복될 가능성이 전무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은인이 나타났다. 루체른 숙소에서 같은 방을 쓴 한 명의 한국인 언니가 있었는데 약 두세 시간 동안 숙소 1층 로비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랬더니 정말 예전과 비슷한 감정적으로 멀쩡한 상태로 회복했다. 여행 중에 만난 한 명의 사람으로 인해 내 컨디션을 다시 회복하고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에게 한국인은 어떤 존재일까. 한국인이 드물고 찾아볼 수 없는 숨겨진 이국 땅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그야말로 그렇게 반가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웬만하면 어딜 가든 한국인은 있다. 길을 가다 보면 '어랏. 한국인처럼 생겼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들이 한국말로 대화하며 지나간다. 서양인은 동양인을 보면서 한국/일본/중국/대만 등을 구분하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가능하다. 참 희한하게도.
나 또한 그렇다. 내 눈에 서양인은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각 나라만의 특징을 파악할 정도는 못된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찰떡같이 알아보는 눈썰미는 가졌다.
여행이 아니라 어학연수의 목적으로 한 나라에 간다면 그곳에서 한국인을 멀리하는 것이 어학연수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뉴질랜드에 그런 목적으로 갔을 때나, 주변 친구들이 중국 등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땐 최대한 한국인을 멀리했다. 내 친구는 한국인과 어울리지 않기 위해 한국인 아닌 척을 했다고 한다. 한국어로 떠들어도 대화에 끼지 않고, 최대한 중국인들과 함께 하려고 했단다. 이런 부단한 노력이 그의 중국어 실력에 향상을 가져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에서든, 특히 나 홀로 여행자에게는 어쩌다 마주치는 한국인이 괜스레 반갑다. 나이가 비슷한 또래이거나 여행 일정, 기간, 출발지 등이 같다면 더욱이 그렇다. 적적한 외로움을 달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대화 상대가 되고, 셀카 밖에 없던 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비용을 나눠내면서 경비도 절약하고 여행 정보를 나눌 수 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도 있기 때문에 마냥 좋다고만은 못하겠다.
내 여행 바이오리듬에 맞춰서, 일정에 맞춰서, 상황에 따라서 동행하는 게 좋겠다 싶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기로 한 동행자에게 '오늘 하루는 혼자 여행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만난 새로운 친구에게 '오늘 하루는 같이 다닐래?'라고 하는 게 나에겐 조금 더 쉬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