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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실 Aug 11. 2017

여행에서 혼자 걷기의 중요성

나를 '쓰다'듬다.

여행이 시작될 땐 (빨리 여행을 끝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숫자가 막연하게 느껴져서) 언제 끝나는 건가 했다. 여행할 날이 한참이나 남았을 때는 그런 마음이더니 어느새 여행 막바지인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없어서 한 손에는 지도가 들려있었다. 빗방울이 지도 위에 또르르 흘러내리는가 싶더니 금세 종이가 젖었다. 어디서부터 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의도된 방황은 비를 만나 조금은 주춤해졌다. 하지만 여태껏 100일 동안 우산 하나 없이 다닌 나에게 이 정도 비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어차피 숙소 들어가서 씻으면 되는걸, 여긴 황사나 산성비는 아닐 거야.'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뗐다. 이제는 지도가 거의 찢어지려고 할 정도로 꽤 젖어서 지도를 집어넣었다. 

'그래, 그냥 느낌대로 가보는 거야. 그러다가 정 모르겠으면 지도를 꺼내자.'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주변 환경에 위험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비에 젖어 촉촉하고 적당히 텅 빈 거리여서일까.

혼자 여행하면서 좋은 점이 내가 걷고 싶을 때 걷고, 힘들 땐 쉴 수 있는 것이다. 

그 날은 걷고 싶은 날이었고 계속 걸었다. 


비오는 날 걷기



나는 '걷기'의 진짜 효능에 대해 잘 몰랐다. 원래 잘 걷기도 하고 편한 신발만 신고 있다면야 꽤 오래 걷기도 한다. 국토대장정을 완주했고, 어쩌다 나간 마라톤에서 10km인 줄 알고 갔더니 하프 코스여서 완주한 기억도 있다. 근데 목적 없이, 목표 없이 그저 걸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날은 그랬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걷기는 과거를 소환했다.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과정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갑자기 뜬금없이 희한한 일이었다.

'음, 나는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지만 공부도 하고 회사도 다녔고, 지금의 나는 그토록 원하던 유럽 여행을 하고 있네?.' '나'라는 주인공으로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이런저런 안 좋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이 정도면 멀쩡하고(!) 행복하게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어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었을까. 욕심 없이 그저 걸으며 머릿속에 피어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가 허락돼 서다. 


가장 가까운 옆에서 내가 아닌 '나'라는 또 한 명의 존재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노력 만이 했고 잘 해냈다고, 너 참 장하다고. 


단순히 여행을 잘 마쳤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여행을 계기로 과거의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그 과거는 계속해서 나와 점착돼있었지만 인지하지 못해을 뿐이다. 캐캐 묵은 과거를 꺼내는 느낌이 아니라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제대로 거친 기분이었다. 그러니 내 마음이 감격과 감사로 벅차서 눈물이 났다. 

뭐랄까, 훨씬 그 이전부터 내가 살아온 날들을 이해받고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어느덧 비는 그쳤고, 위로받은 나는 다시 지도를 꺼내 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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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을 가려는 직장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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