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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Nov 18. 2021

금식과 축제의 반전 매력,
브루나이의 라마단을 만나다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shutterstock


1년에 딱 3일, 브루나이 왕궁이 열리는 날


올해(4월 13일~5월 12일)도 브루나이의 라마단이 어김없이 진행됐다. 이슬람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율법에 따라 낮 동안에는 물을 포함해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다음 달의 새 초승달이 떠오를 때까지 한 달간 신실한 금식은 계속된다. 비무슬림이라도 라마단 동안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먹고 마실 수 없다. 여행자들을 위해 호텔에서는 룸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일반 식당은 낮 시간에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곳들도 많다. 

잠시 일상으로 돌아갔던 브루나이는 최근 변이바이러스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8월, 15개월만에 지역 감염이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지휘 아래 모스크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공시설이 문을 닫고, 모임은 제한되고 있다. 


숭카이 뷔페 Ⓒ새벽보배


일몰과 함께 시작되는 라마단의 반전


동네 모스크의 스피커를 통해 일몰을 알리는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 순간 라마단의 반전이 시작된다. 바로 숭까이(Sungkai)라는 이름의 축제다. 이슬람교에서 라마단 기간 동안 해가 진 뒤, 금식을 멈추고 갖는 저녁 식사를 이프타르(Iftar)라고 하는데, 이슬람 국가마다 조금씩 다른 이름과 풍습을 갖는다.

브루나이에서는 숭까이(Sungkai)라고 부르며 사랑하는 가족,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전통이 있다. 브루나이의 전통적인 숭까이는 낮 동안 금식을 한 사람들이 동네 모스크에 모여 함께 저녁기도를 한 후에 뷔페 형식으로 나누는 식사였다고 한다. 

이후 대가족, 친구, 직장동료들과 함께 집이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즐기는 형태로 발전했다. 곳곳에 포장음식을 판매하는 푸드마켓이 열리고, 식당들은 다양한 ‘숭까이 뷔페(Sungkai Buffet)’ 프로모션을 준비한다.


하사날 볼키아 국립경기장 Ⓒ새벽보배


한 달만 열리는 마법의 시장


이 기간, 여행자들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곳은 하사날 볼키아 국립경기장(Hassanal Bolkiah National Stadium Complex) 옆에서 열리는 특별한 푸드마켓이다. 평소에는 채소와 과일을 파는 주말 로컬마켓인데, 라마단 기간 딱 한 달 동안만 브루나이 최대 규모의 푸드마켓으로 변신해서 매일 문을 연다. 집에서 숭까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서 뷔페에 내놓을 음식을 사 간다.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로 만남과 이동의 자유를 빼앗긴 채로 고통스러워했지만, 코로나 통제에 성공했었던 브루나이는 라마단 기간 동안 마스크가 없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했다. 이 시국 방역 협조는 필수. 정부에서 운영하는 헬스케어 앱으로 QR코드 인증을 한 뒤 시장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라마단 푸드마켓 Ⓒ새벽보배


코로나 시대 라마단 기간 푸드마켓 체험기


사탕수수 즙을 짜는 기계 소리와 힘찬 호객 소리, 신나는 음악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활기를 더했다. 제철보다 조금 일찍 나온 두리안은 멀리서부터 쿰쿰한 향으로 존재를 과시했다. 고양이 눈이라는 뜻의 과일 ‘마따쿠칭(Mata kucing)’과 로컬망고들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밥에 닭고기를 곁들인 나시아얌(Nasiayam)과 각종 볶음국수, 매운맛을 강조하며 숯불에서 몸을 뒤집던 꼬치구이, 알록달록한 디저트들이 손님들을 유혹했다. 생긴 모양 때문에 UFO라는 별명을 가진 과자 펜야람(penyaram)은 브루나이의 축제음식이라고. 


라마단 푸드마켓 Ⓒ새벽보배


혼자 네 개의 팬과 큰 튀김 솥 하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장인의 손놀림도 쏠쏠한 구경거리다. 팔뚝만한 생선들은 윤기를 반짝이며 가지런히 구워지고, 통통한 오징어들은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갔다. 한 솥 가득 쌓인 큼직한 조개와 빨간 가재들은 보기 좋게 익어가며 식욕을 자극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여행자에게 브루나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정하고 친절하다.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에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음식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 얼굴엔 행복만이 가득했다. 

코란 Ⓒpixabay


신의 축복이 가득한 밤


라마단 기간 중 마지막 열흘은 무슬림들에게 특히 의미가 깊다. ‘라일라트 알 까드르(Lailatul Qadar)’라고 하는 ‘권능의 밤’이기 때문이다. 권능의 밤은 코란이 하늘에서 처음 내려온 밤이자, 코란의 첫 구절이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밤이라는 뜻이다. 

이슬람에서는 이날을 신의 축복과 자비와 용서가 이뤄지는 특별한 축복의 날로 여긴다. 라마단의 마지막 10일 중 홀수 밤에 발생한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히 어떤 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브루나이의 많은 사람들은 열흘 동안 권능의 밤을 맞기 위해 모스크에서 밤새 기도하거나 코란을 암송하기도 한다. 



브루나이 왕족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한 달간의 금식 후에 하리라야 아이딜 피트리(hari Raya Aidil-Fitri) 라는 축제가 펼쳐진다.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며 성스러운 라마단의 종료를 축하하는 행사다. 브루나이 사람들은 하리라야 전날이면 친지와 친구들의 방문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이스타나 누룰 이만 Ⓒ새벽보배


하리라야는 아침 일찍 전국의 모스크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직 하리라야 기간 중 3일 동안만 브루나이 왕궁(이스타나 누룰 이만, Istana Nurul Iman)을 개방하는데, 왕과 왕비를 포함한 왕족을 직접 만날 수 있어 국민 모두가 일년 내내 기다리는 날이라고 한다. 



글·사진 새벽보배(이효진), 트래비(Tra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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