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총체적인 생존방식이라면 마을과 골목은 분명 치열한 문화의 현장이다. 영도의 깡깡이길에서 들었던 생존을 위한 망치소리, 묘지 위에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한 아미비석문화마을의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흔적이자 우물처럼 깊은 문화유산이다.
이제 막 닻을 내린
깡깡이예술마을
영도하면 국내 최초의 연륙교인 영도다리와 기암절벽의 절경을 자랑하는 태종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궤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준경 대표가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을 하나 걸어보자고 했다.
‘조선수리테마길’로 명명된 대평동 부두길에는 조선수리소들이 밀집해 있다. 골목마다 선박부품업체들과 조선소, 철공소, 공업소, 상사들이 자리잡고 있고 국제선용품유통센터도 이 곳에 있다. 부두에는 거대한 닻과 밧줄들, 폐 엔진과 부속물 너머로 수백 척의 소형 선박들이 빈틈없이 정박되어 있다. 그 역사가 구한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100년 전에 시작된 수리조선업의 태동지다.
깡깡이길이란 별칭은 선박을 수리할 때 녹은 페인트를 벗겨내기 위해 망치를 두들기던 소리에서 유래했는데, 임금이 낮았던 아낙들이 주로 그 일을 맡았다고 한다. 삶의 애환이 서린 소리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사실 마을은 고령화되어 쇠퇴하는 중이었다. 노동자들이 주로 찾는 식당과 다방이 전부라서 외국인 노동자들만 분주히 오갈 뿐 외지인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곳이다. 여행자가 잠시라도 머물 구석이 없다.
하지만 삭막했던 골목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부산시가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업을 위해 감천문화마을에 이어 깡깡이마을을 두 번째 대상지로 선정했기 때문. 그 첫걸음으로 지난 4월 낡은 창고들에는 알록달록한 새 옷이 입혀졌고, 골목 사거리에는 깡깡이예술마을이라는 닻도 세워졌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올해 가을까지 더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 하고, 영도다리 개설로 끊어졌던 영도 뱃길도 다시 복원하고, 마을박물관, 마을사랑방을 오픈 하는 등 남은 숙제가 많다. 기대도 있지만 걱정도 있다. 감천문화마을의 희비가 교훈이 되어 건강한 마을재생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깡깡이질을 마친 배가 새롭게 항해를 시작하듯 깡깡이마을에 시작된 깡깡깡, 청아한 망치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져 많은 이들이 마을로 모이게 되기를 기대한다.
*영도 ; 영도의 이름은 절영도에서 유래했다. 그림자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른 말을 절영마(絶影馬)라고 했고, 영도는 그런 명마들을 사육하던 마장이 있었기에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렸었다. 『고려사』에는 견훤이 고려 태조에 사신을 보내어 절영도의 명마 한 필을 보냈다가 되돌려 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깡깡이예술마을
주소: 영도구 대평동
www.kangkangee.com
묘지 위에 세워진 피란마을
아미비석문화마을
한해 180만 명이 방문한다는 감천문화마을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아미비석문화마을이 있다. 아미동 산19번지다. 몰라서 못 간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숨은 장소다. 두 마을 모두 전후 피난민들이 정착한 피란마을이지만 성질은 전혀 다르다. 태극도의 영향으로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던 감천마을이 열린 느낌이라면, 아미문화마을은 앞뒤도 구별되지 않는 미로 같은 골목 안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닫힌 마을이다. 태생적인 이유가 있다.
1950년대 감촌에서도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피난민들이 밀려온 곳이 일본인들이 남겨 놓고 간 공동묘지였다. 일본 귀신이 나타난다고 했지만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건축 재료도 구하기 어려운 시절 무덤의 비석과 상석, 난간석 등은 집의 주축돌과 건축 재료가 되어 주었다. 상자 위에 골판지와 상자를 덧대고, 시멘트를 발라 보강하는 식으로 딱 무덤만한 단칸방을 만들어서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 흔적들이 여전히 골목 귀퉁이 마다 남아 있다. 가스통은 바치고 있는 받침돌도, 계단의 아랫돌도 자세히 보면 잘 다듬어진 석제들이다. 발견된 묘지석들만 해도 대충 수백 개다. 묘비명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것들도 있어서 일본의 후손들이 찾아와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발굴과 보존이 잘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둡고 좁은 골목안쪽에 벽화를 그리고 형광스티커를 붙여 길을 잊지 않게 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부산의 여러 피란마을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아미비석문화마을만큼 그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귀신보다 가난과 배고픔이 더 무서웠던 시절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면 아미문화학습관에 있는 최민식 갤러리에 가서 확인할 수 있다. 실향민 출신으로 사진을 독학했던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민식1928~2013년 선생의 사진에는 부산 피난민들의 곤궁했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누구라고 먹먹해질 그 기록들 앞에 서면 연민과 감사가 동시에 느껴진다. 억척스럽게 살아야 할 각자의 이유들도 생각날 것이다.
최민식 갤러리
위치: 서구 천마산로 410-6
최민식갤러리
부산광역시 서구 천마산로 410-6
천마산산복도로전망대
감천문화마을과 아미비석문화마을이 이쪽저쪽으로 등을 기대고 있는 산은 천마산이다. 이 곳의 전망대는 부산 3대 아경의 명소다. 산위에도 전망대가 있지만 차로 갈 수 있는 산복도로 전망대로 훌륭하다. 북항에서 남항까지 부산의 연안과 그 사이에 걸쳐 있는 여러 다리들을 풍경을 두고 이준경 대표는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 같다고 했다.
위치: 서구 초장동 천마산로 27 목화빌라 앞
부산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산 맛집
시락국과 선어회
영도 달뜨네
인테리어도, 메뉴판도, 상차림도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역시 주인이 그러하다. 함경도에서 온 피난민이었던 시어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았다는 안주인 박정원 대표와 화가 출신으로 인테리어를 했다가 이제는 숙수가 된 남편 위승진 씨의 ‘합’이다. 한식에 대한 두 사람의 애정은 한식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의 곰장어껍질묵, 갈치식해편의 출연으로도 이어졌을 정도다.
바다에서 직접 채취해 온 곰피의 진액을 넣어서 끊인 시락국(시래깃국)이 유명하지만, 공동어시장에서 구입해 적당히 숙성시킨 자연산 선어회가 최상의 상태로 나온다. 맑은 동동주를 곁들이면 달뜬 마음에 행복이 차오른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절영로 205 1470
메뉴: 회밥 1만원 자연산 숙성회 2~5만원 코스요리 2인기준 만원부터(하루 전 예약 필수)
오픈: 주중 17:00~23:00 토,일 12:00~23:00, 화요일 휴무
문의: 051 418 2212
갈매기브루잉
Galmegi Brewing
한국에 왔더니 맥주가 너무 맛이 없어서 직접 주조하기 시작했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티븐 올솝(Steven Allsopp)이 미국에서 온 라이안 블라커(Ryan Blocker)와 함께 창업해 부산의 대표적인 수제맥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14년 광안리해변에서 소형양조장과 펍으로 시작해 지금은 해운대, 서면, 남포동 등지에도 매장을 운영 중이다. 미국에서 공수해 온 좋은 맥아와 홉은 아끼지 않고 사용한 맥주들은 캐릭터가 강한 편이다. 계절마다 혹은 수시로 개발하는 새로운 맥주들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홈페이지: www.galmegibrewing.com
명성횟집
이름은 횟집이지만 오뎅탕 마니아들의 성지다. 오뎅만 둥둥 떠다니는 오뎅탕이 아니라 스지탕이라고 불러도 좋을 푸짐한 건더기와 국물에 입이 탁 벌어진다. 오뎅뿐 아니라 소고기, 계란, 낙지, 소라, 무, 유부주머니 등이 다 들어있다. 여기에 회백반까지 주문하면 얼큰한 국물과 횟접시, 스지탕과 갖가지 반찬이 진수성찬으로 차려진다. 1968년 개업 당시에는 부산에서 손꼽는 고급 일식집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대중적인 노포로 사랑받고 있다.
주소: 동구 고관로 128-1
메뉴: 오뎅백반 8,000원 회백반 1만3,000원 생선초밥 1만원
문의: 051 468 8089
해운대기와집대구탕
부산에서 복국은 많이 먹었지만 대구탕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구탕을 더 자주 먹을 것 같다. 두툼한 대구살과 진한 국물. 전날 먹은 술뿐 아니라 열흘 묵은 숙취까지 날아갔다. 식당 벽에 온통 유명인과 명사들의 서명이 빼곡한 이유를 알겠다.
주소: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 104번길 46
메뉴: 대구탕 1만원
문의: 051 731 5020
글·사진 천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