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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Apr 28. 2022

팔공산 기슭, 늦봄 풍경에
마음 푸근해지는 길을 걷다

대구올레(팔공산올레길) 3코스 부인사도보길


대구시 동구 동화사집단시설지구 – 팔공산순환도로가로수길 – 수태지 – 부인사 – 신무동 마애불좌상 – 농연서당 – 용수동 당산 – 미곡교를 걷는 약 8km 정도 되는 대구올레(팔공산올레길) 3코스 부인사도보길을 걸었다.


대구올레팔공산3코스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428-1


부인사 왕벚나무 고목


가로수길을 걸어 부인사에 도착하다


동화사집단시설지구에서 보리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먹을 건 많지만 이 무렵 보리밥이 먹을 만하다. 풋풋한 보리비빔밥에 갖은 나물이 들어간다. 신록에 늦은 꽃이 섞여 핀 팔공산 숲을 한 술 뜨는 것 같다.


팔공산순환도로가로수길


팔공산로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식당에서 나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앞을 지난다. 팔공산순환도로가로수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었다. 신록 물오른 가로수가 연둣빛 터널을 만들었다. 그 덕에 아스팔트 포장 도로지만 걷고 싶어진다. 소실점에 이르는 곳을 바라보면 푸른 물길이 머리 위에서 넘실대며 흐르는 것 같다. 그 끝까지 걷는다. 이 길은 봄에는 신록, 가을에는 단풍으로 좋다.


수태지


가로수길이 잠시 끊어진 곳에 작은 저수지가 있다. 수태지다. 잔잔한 수면 위에 팔공산 줄기가 드리웠다. 실제도, 반영도 고요하고 푸르다. 수태지를 뒤로하고 앞을 바라보면 푸른 숲 뒤로 겹쳐진 산줄기가 보인다. ‘화르락’ 피어나는 봄에 수더분한 자연이다.


수태지 앞 풍경


수태지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수태지를 뒤로하고 걷다보면 금세 부인사 입구다. 팔공산로를 벗어나 부인사 쪽으로 걷는다. 부인사에서 여행자를 처음 맞이하는 건 커다란 왕벚나무다. 150년 넘은 고목이다. 나무 둘레가 4m가 넘고 높이가 14m 정도 된단다. 고목을 바라만 봐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쉰다.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다 누군가 마련해놓은 먹이통에서 먹이를 먹는다. 반짝이는 햇볕 위로 바람이 건 듯 불어간다. 돌아서는 발길, 계단 아래 막 돋은 풀 옆에서 두꺼비 한 쌍을 보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는 시간이 그곳에서 흘러간다.



부인사에서 신무동 마애불좌상까지


부인사 창건 설화는 여러 개 인데,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됐다는 설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초조대장경을 봉안했었는데, 몽골의 침입 때 소실됐다고 한다.

부인사 마당 동쪽과 서쪽에 탑이 있어서 쌍탑이라 불렀다. 서탑을 복원해서 옛 모습을 살렸다. 석등도 보인다. 두 개 다 대구시 유형문화재다.

절에 있는 문화재 보다는 대웅전 뒤뜰 풍경이 마음에 남는다. 사람이 보살핀 꽃밭이 여기저기 보인다. 산신각 앞도 꽃밭이다. 여러 꽃 사이에서 할미꽃을 보았다. 고개 숙인 할미꽃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영산전으로 가는 길도 꽃밭이다.


부인사 왕벚나무 고목


부인사 창건과 관련됐다고 알려진 선덕여왕을 모신 숭모전을 뒤로하고 부인사에서 나와 팔공산로를 따라 걷는다.

건널목을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신무동 마애불좌상’ 안내판이 나왔다. 안내판 옆 좁은 흙길을 따라 내려간다. 신무동 마애불좌상이 가까운 곳에 있다.


신무동 마애불좌상


신무동마애불좌상

대구광역시 동구 용천로 438-12


신무동 마애불좌상은 큰 바위를 파고 쪼아서 만든 좌불이다. 바위 전체 면 중 오른쪽 위에 부처상이 있다. 연꽃 문양이 새겨진 광배가 독특하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불상이란다.

돌에 새겨진 부처상을 보고 가던 방향으로 걷는다. 팔공산 어느 골짜기를 흐르던 물일까?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온 물이 용수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른다.


부인사
주소: 대구 동구 팔공산로 967-28
전화: 053-982-5006



봄햇살 눈부신 시냇가 고향 같은 풍경


커다란 나무 아래 지붕 낮은 집, 돌담, 낡은 시멘트 길 옆 흙에서 자라난 들풀들과 어울려 아무렇게나 피어난 민들레꽃, 파란 하늘 맑은 햇볕에 지나가는 바람에서 고향의 냄새가 났다.

여행지도 아닌, 대구의 한적한 산기슭 마을에서 고향의 향기를 품고 걷는다. 마을을 흐르는 시냇물 물비린내, 막 돋은 풀들의 푸릇한 향기, 봄햇살에 휘발하는 흙냄새까지 섞여 온몸을 감싼다. 마음이 녹록해지고 걸음도 느려진다. 애써 내세울 것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정리(情理)가 그곳에 있었다. 터덜터덜 걸었다.


농연서당


농연서당은 그렇게 만났다. 조선시대 효종 임금의 사부였던 대암 최동집이 관직에서 물러나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 농연서당이란다. 최동집의 5대 손인 최흥원이 중수한 뒤 마을에서 향약을 시행하던 곳이기도 하다. 1925년 홍수로 인해 원래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지었다.

냇물은 여전히 길 따라 흐른다. 물가에 풀이 무성하다. 새로 돋은 풀도 보이고 지난해 마른 억새 물풀도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냇가 풍경에서 자란 커다란 나무에 연둣빛 물이 올랐다.


용수동 당산 나무와 돌무지


용수동 입구에서 당산을 만났다. 당산은 마을을 지키는 신이 머무는 곳을 일컫는다. 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를 지냈다고 한다. 안내글에 따르면 용수동 당산은 배씨와 구씨가 마을을 일구면서 마을 입구에 만들었다. 매년 정월 보름날 새벽에 당제를 지냈다. 지금은 당제를 지내지 않지만 대구시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연둣빛 물오른 나무가 냇가에서 자란다.


용수동 당산을 지나 도착지로 가는 길, 작년 가을 억새가 서걱거리고, 연둣빛 물오른 나무가 오후의 햇볕에 그윽하다. 삐쭉 솟은 미루나무도 신록으로 물들었다. 늦봄 풍경에 걸음도 게을러진다.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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