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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Apr 27. 2022

전설과 역사의 숲, 신록의 바다.

서울 호압사에서 불영사까지


관악산 서쪽 삼성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깃대봉에서 북서쪽으로 머리를 틀어 이어지다 낭떠러지를 만드는 곳이 호암산 전망 좋은 너럭바위다. 그 절벽 바로 아래 호압사가 있다. 호압사부터 호암산 전망 좋은 너럭바위를 지나 불영사까지 이어지는 숲에 깃든 전설과 역사 이야기 위에 연둣빛 신록이 바다를 이루었다.


호암산. 전망 좋은 너럭바위에서 굽어본 풍경. 신록의 숲에 둥지를 튼 호압사가 보인다.



호압사,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켜라


호압사에 전해지는 두 이야기.

첫째, ‘금천 동쪽 산의 형세가 호랑이가 걸어가는 것과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호암산 바위 군락을 묘사한 문구다. 그 기세를 누르기 위해 절을 세워 ‘호갑’이라 했다고 전한다.

둘째, 조선의 문을 연 이성계는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짓는다. 궁궐이 완성되기 전에 괴물이 나타나 궁궐을 무너뜨리는 꿈을 계속 꾸게 된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꿈 이야기를 한다. 무학대사는 수도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형국을 살폈다. 무학대사도 호암산에서 수도 한양을 향해 달려가는 호랑이의 형국을 간파했다. 그리고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절을 지어 그 기세를 누르게 했다. 그 절이 호압사다.


호압사. 절 마당에서 자란 500년 넘은 느티나무에 연둣빛 물이 올랐다.


호암산 호압사에 전해지는 두 이야기의 맥은 ‘호랑이의 기운을 눌러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켜라’이다. 약한 기운을 도와 채우고 지키는 비보사찰 중 하나가 호압사였던 것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한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뜻이었다.


호압사. 절 마당에 있는 500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


호압사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른다. 포장된 찻길 옆 숲길로 걷는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호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절 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 서서 하늘을 본다. 절 마당에서 500년 넘게 살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 우듬지까지 연둣빛 물이 올랐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푸르니 몸이 가벼워진다. 구름 위를 걷듯 절 마당으로 올라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호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숲에서 쉰다.


호압사에서 호암산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 숲 풍경


호압사
주소: 서울 금천구 호암로 278 요사체(B동)
전화: 02-803-4779
홈페이지: http://www.hoapsa.org



신록의 바다를 보다


호압사 위 하늘은 비행기의 길이어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낮게 떠서 난다. 어느 때는 500년 넘은 느티나무 고목 위로 배가 다 보일 정도로 날고, 어떨 때는 풍경 달린 추녀와 어울린 풍경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 바람이 불어 풍경이 울리는 우연 같은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호압사. 비행기가 낮게 날고 추녀 끝 풍경이 울린다.


땅을 굽어보면 발아래 핀 민들레꽃과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의 세상이다. 쉽게 눈길을 거둘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의 생동은 더 강하다. 신록도 그렇다.


호암산. 연둣빛 신록이 공중에서 하늘을 가리고 보호막을 만들었다.


호압사를 뒤로하고 호암산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부터 연둣빛 신록의 장막이다. 발치부터 공중에서 하늘을 가린 나뭇가지까지 온통 푸르게 빛난다. 숲 밖의 세상에서 숲 안에 든 생명을 보호하는 푸른 보호막이다. 길 밖 산비탈에 사선으로 자라는 나무들 사이에 붉은 진달래가 여기저기 피었다. 숲이 만든 색의 조화다.

하늘이 열리고 숲 밖이 보인다. 낮게 퍼져 자란 작은 소나무가 있는 절벽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본다. 문명의 색은 무채색인데, 자연의 색은 푸르고 푸르러 밝고 맑다. 산하가 온통 생동한다.


호암산. 전망 좋은 너럭바위 일부


맞은편 봉우리 높은 곳에 둥지를 튼 불영사가 보인다. 그곳까지 가서 산을 내려갈 것이다. 호암산 너럭바위 전망 좋은 곳으로 올라간다.


호암산. 키 작은 소나무가 있는 절벽에서 바라본 맞은편 봉우리. 봉우리 정상부에 불영사가 보인다. 숲속의 둥지 같다.


밖에서 보면 봉우리 하나가 다 바위다. 그 꼭대기는 암반바위처럼 보인다. 그 바위 절벽 끝에 서서 숲을 굽어본다. 신록의 바다다. 펼쳐진 연둣빛 세상 끝에서 도시가 시작된다. 그 풍경의 끝이 아득하다.



숲속의 연못과 석구상


전망 좋은 너럭바위는 쉬어가는 곳이다. 푸른 숲의 바다, 통쾌하게 펼쳐진 전망, 쉬지 않고 부는 바람, 따뜻한 햇볕, 곁에 누군가가 있어 더 없는 세상이다.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 숲길을 걷는다. 불영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전망이 몇 번 더 열리는데, 전망 좋은 너럭바위의 그것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호암산. 숲속의 석구상. 둥그런 몸과 입가에 미소가 귀엽다.


그렇게 걷다 숲에서 뜻밖의 석상을 만났다. 안내판에 ‘석구상’이라고 적혔다. 아무 것도 없는 이 산속에 생뚱맞은 석구상이라니! 자세히 보니 귀엽다. 둥그런 몸과 돌돌 말린 꼬리, 입가에 미소까지, 누가 왜 여기에 이런 석구상을 만들어 놓았을까?


호암산. 불영사와 한우물


석구상에서 가까운 곳에 불영사가 있고, 불영사 마당 한쪽에 한우물이 있다. ‘큰 우물’이란 뜻의 한우물은 연못 같다. 이곳에 호암산성이 있었다. 한우물은 산성 안에 있는 커다란 우물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만든 연못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연못도 발견됐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만든 연못에서 ‘석구지’라는 각자가 발견됐다고 하니, 숲속의 석구상과 연못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한 풍수와 맥이 닿는다.


호암산. 불영사를 지나 내려가는 숲길.


수도 한양으로 달려가는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운 절, 호압사와 한양 도성의 화재를 막기 위해 세운 산속의 석구상을 생각하며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호암산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7-13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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