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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Apr 29. 2022

가장 빠르게, 가장 높게
"융프라우가 달라졌어요"

현빈과 손예진을 연인으로 맺어준 드라마(사랑의 불시착)의 촬영지에서
그들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톱스타 커플이 연인에서 부부로 발전하는 동안,
융프라우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여행의 해빙기를 맞아 스위스 중부의 알프스 삼총사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로 향했다. 이 지역의 교통을 맡고 있는 것이 융프라우철도다. ©Jungfrau Railways


여행의 해빙기, 알프스로 가다


해외입국자에 대한 격리 의무 해지 소식은 여행의 해빙이기도 했다. 냉큼 떠난 곳은 스위스 알프스였다. 빼앗겨 본 후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오래 품어 온 여행을 떠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웬만한 여행자라면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에서 컵 신라면 먹은 이야기쯤은 기본 레퍼토리인데, 이제야 알프스의 봉우리에 시선을 돌렸다. 아이거(Eiger), 묀히(Mönch), 융프라우(Jungfrau) 삼총사의 발 아래로.

사실 ‘오른다’고 하기 좀 민망한 것은, 안락하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기차 시스템 때문이다. 공항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알프스로, 그저 열차를 갈아타기만 하면 된다. 호반 도시 인터라켄을 관문으로 하는 융프라우철도는 가파른 산악마을 사이를 운행하는 7개의 산악운송 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무제한 패스만 있으면 무적이다. 그린델발트, 벵엔, 뮤렌 등 산악 지대의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작은 마을들을 방문하기 위해 알프스 빙하가 녹아 흐르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산악관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최첨단 곤돌라 ‘아이거익스프레스’가 2020년 12월에 개통했다. 기존의 이동 시간을 47분이나 단축했다. ©Jungfrau Rail


알프스를 오르는 가장 빠른 방법 ‘아이거익스프레스’


중간 산악마을인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 숙소를 정했다. 드디어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가기로 한 날, 지상에서는 분명 비였던 그것이 15분 만에 폭설로 변했다. 표고차 1,377미터를 이동하는 아이거익스프레스(Eiger Express)의 마법이다.


공항 터미널을 연상시키는 그린델발트 터미널도 아이거익스프레스와 함께 공개됐다. 티켓 구입부터 장비 렌털과 쇼핑까지, 스키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스타일러를 심어 놓은 듯한 라커룸에 스키에 대한 진심이 묻어난다. ©Jungfrau Railways


2020년 12월 5일, 코로나로 여행자의 발길이 꽁꽁 묶여 있는 동안, 융프라우철도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최첨단 기술의 곤돌라 ‘아이거익스프레스’의 개통이었다. 그린델발트 터미널(943m)과 아이거글렛쳐(2,320m) 사이를 15분 만에 주파함으로써 융프라우요흐까지 이르는 전체 이동시간을 47분이나 단축했다. 26명을 수용하는 대형 곤돌라지만 삼중 케이블로 안정성을 확보해 시속 100km의 강풍에도 안전하다고. 과연 흔들림 없고, 소음도 없었다. 아이거익스프레스의 개통으로 융프라우철도는 1912년 산악 열차 개통 이후 산악 관광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기술적인 진보 외에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2020년 본상을 받음으로써 미적 고도까지 정복했다.


©Jungfrau Railways


곤돌라를 타는 동안 아이거 북벽, 그 유명한 노스페이스의 북쪽 사면이 얼굴을 드러냈어야 했지만 ‘아닌 봄날의 폭설’로 우리 일행은 그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열선을 깐 곤돌라 통창 아래로 눈 덮인 샬레 사이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스키어들과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기차가 또렷이 보였다. 특별히 VIP 전용 곤돌라에서 샴페인을 음미하는 호사가 함께라면 초속 8m로 날아가는 15분은 누군가의 말대로 분명 ‘너무 빨라 아쉬운’ 시간일 것이다.


아이거익스프레스가 도착하는 아이거글렛처역도 새 단장을 했다. 역에서 바로 시작되는 슬로프를 타고 스키를 즐겨도 되고, 톱니바퀴 열차로 갈아타고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갈 수 있다. ©Jungfrau Railways


알프스 마을에 등장한 최첨단 스마트 터미널


곤돌라와 함께 개설된 그린델발트 터미널은 세련되고 스마트한 최첨단 복합터미널이다. 열차, 케이블카, 버스, 자동차가 모이는 교통의 허브이자, 각종 패스 구입, 장비 렌털, 식당, 마트, 기념품 숍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신속항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테스트센터 운영 중이었다.


그린델발트 터미널
그린델발트 터미널 VIP라운지


설계 단계부터 최첨단 공항 터미널을 모델로 했다는데, 진입하는 입구의 느낌부터가 딱 그러하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햇빛이 중앙 홀의 바닥에 닿으면 빛의 양탄자가 되는 디테일이 건축가의 감각을 비춘다. 전 슬로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현황판은 기본이다. 1,000여 대 수용하는 주차 빌딩도 터미널 바로 옆에 있다.


그린델발트 터미널 스키 라커룸


부러움과 감탄을 자아낸 것은 스타일러를 통째로 심어 놓은 듯한 스키 라커룸이다. 송풍 기능이 있어서 젖은 스키복과 부츠를 걸어 두면 금세 뽀송하게 건조된다. 야외에 설치된 눈 제거용 에어건들은 평창올림픽 때 한국을 방문했다가 알게 되어 전격 도입한 것이라고. 스키 슬로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늘 뭔가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다면, 이곳은 과장 없이 ‘스키어들의 천국’이다. 빈손으로 가도 중급 스키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유럽의 정상’이자 스위스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융프라우요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자, 수많은 여행자를 알프스로 초대하는 마을 그 자체다. 톱니바퀴 철도를 물고 올라가는 기차에서 내리면 놀라운 광경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Jungfrau Railways



융프라우가 ‘정상’을 지키는 방법


대략 마름모꼴을 이루는 융프라우철도 노선들이 해발 2,061m에서 다시 만나는 곳이 클라이네 샤이텍이다. 여기서 톱니바퀴 열차로 갈아타야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차역 융프라우요흐역(3,454m)에 올라갈 수 있다. 새로 개통한 아이거익스프레스는 클라이네샤이텍보다 조금 높은 아이거글렛처에서 융프라우 톱니바퀴 열차와 합류한다. 유일한 이동 수단이자 운송 수단이다.

불굴의 의지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할 이 철도의 개통은 1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술도 기계도 부족하던 시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창시자 아돌프 구에르 첼러(Adolf Guyer-Zeller)의 꿈은 거의 맨손으로 이뤄졌다. 계획보다 2배 이상 길어진 16년의 공사 끝에 1912년 융프라우 산악철도가 개통됐다. 1,400m 고도를 높이기 위해 기차와 철로는 톱니로 깍지를 끼며 천천히 올라가 아이거 북벽을 관통하는 7km의 터널 끝에서 멈춰 선다.


융프라우요흐 철도역


융프라우철도의 개통으로 융프라우요흐는 대중들이 알프스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스위스 여행의 전진 기지가 되었다. ‘역’이라고 말했지만, 융프라우요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 목적지다. 전망대는 물론이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상연구소, 1,000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 초콜릿 가게, 기념품점, 역사와 인물을 조명한 전시와 영상관, 얼음 궁전과 우체국, 여름에도 스키와 썰매를 즐길 수 있는 펀 파크까지 있어 작은 마을을 방불케 한다.


융프라우요흐 전망대


원래는 융프라우 정상까지 철로를 놓으려 했던 계획은 봉우리 아래 산마루인 융프라우요흐에서 멈춰 섰는데, 결과적으로는 더 잘된 일이다. 스위스 최고봉 융프라우(4,158m)는 지금까지도 사람들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알프스에서 가장 길다는, 그래서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22km의 알레취 빙하(Aletsch Glacier)도 덕분에 조금은 천천히 녹고 있다고 믿는다.


중간 산악 마을인 그린델발트를 포함해 융프라우 지역의 많은 마을들은 모두 관광산업으로 살아간다. 코로나 기간 동안 그만큼 고통이 컸다. 많은 투자를 통해 다 빠르고 좋아진 융프라우 지역에 찬란한 계절이 돌아오는 중이다. ©Jungfrau Railways



긴 가뭄이 해갈되는 최고의 풍경


머물렀던 4일 동안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의 정령들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갔노라, 보았노라, 먹었노라’ 중 성취된 것은 아직 ‘갔노라’ 밖에 없다. 해발 3,454m 고지의 컵 신라면도 그리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카이사르 이후 모든 개선장군의 승전보가 된 ‘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숱한 패배와 도전의 결실이 아니겠는가. 팬데믹으로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도 아직 뜨겁지만, 지역 경제 대부분이 관광산업으로 돌아가던 융프라우 지역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유난히 적설량이 적었던 지난겨울을 보내고 비로소 봄에 찾아온 폭설이 융프라우 지역 사람들은 오히려 반가운 기색이었다. 길었던 겨울 가뭄이 해갈되듯, 이제 융프라우로 방문객들이 돌아올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서설이었다. 그것이면 족했다. 희망의 풍경보다 아름다운 건 없었다.


아이거익스프레스


TIP▶ 융프라우 필수 아이템


융프라우 여행은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만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컵라면이 대표적이다)을 포함하는 VIP 패스 구입에서 시작된다. 융프라우철도 한국 총판을 맡고 있는 동신항운과의 오랜 신뢰로 제공되는 혜택들이다. 할인 쿠폰이나 패스를 예약하면 아이거익스프레스를 기존의 산악 열차와 동일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www.jungfrau.co.kr



융프라우 = 글·사진 천소현 / 취재협조· 사진제공 융프라우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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