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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Jul 14. 2022

건축가 승효상과 함께 한
'제주 건축 투어'

제주 롯데아트빌라스 로비에서 승효상 건축가를 만났다. 긴 백발에 레옹 선글라스, 다크네이비 컬러의 셔츠와 매칭한 청바지. 70의 나이가 무색한 패션 감각에 흠칫 놀랐고, 오히려 그런 이유로 곧 함께 떠날 건축 투어를 기대했다.


이 시대의 건축가, 승효상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건축가는 ‘파주출판단지’를 코디네이팅했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 사저를 설계한,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다. 제주 롯데아트빌라스 역시 그의 열정과 건축 혼이 담긴 결과물이다. 이번 건축투어는 제주 롯데아트빌라스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단 하루, 승효상 건축가가 직접 도슨트가 되어 제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그의 작품들을 돌아보고 안내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알뜨르비행장에서 터 무늬를 읽다


승효상 건축가가 제주에서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알뜨르비행장이었다. 제주의 서남권은 도민의 눈물과 한이 서려 있는 지역이란다. ‘모슬포’란 지명의 의미도 ‘못살포구’에서 유래된 것이란다. 조선시대의 가장 험한 유배지였으며 4·3사건 때 132명이 학살당한 서달오름 또한 이곳에 있다. 중일전쟁 당시 전투기의 중간 기착지로 건설된 알뜨르비행장은 일제의 대표적 수탈과 노동착취 현장이었다. 승효상 건축가는 제주도민의 아픈 상처로 남은 광활한 대지가 건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


“터에는 본디 무늬가 있습니다. 과거의 무늬에 현재의 무늬를 접목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이 건축가의 임무죠. 알뜨르비행장에 있는 19기의 격납고도 그런 의미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이죠. 뒤쪽의 산방산과 모슬포 낙조와 어우러지면 아름다운 대지 미술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도민의 눈물과 한이 서려 있는 제주의 서남 지역


문득 조선총독부 청사와 세운상가 철거에 관한 기사가 떠올랐다. 승효상 선생은 총독부 청사 해체에 반대했고, 서울시 총괄 건축가로서 세운상가를 보존하기 위해 공중 보행데크 등 리모델링의 계획을 수립 진행한 바 있다. 어찌 보면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기억과의 단절이며 터 무늬를 지워 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 불편한 시절조차 흔적이 남아 있어야 미래의 터 무늬를 새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알뜨르비행장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추사의 성품을 고스란히 담아낸
추사관


‘대정현’은 추사 김정희가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약 9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2007년 ‘김정희 적거지’가 사적으로 지정된 후 2010년 ‘제주 추사관’이 지어졌다. 







제주 추사관


제주 추사관은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이다. 그는 처음 이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제주 대정읍의 작은 동네에 1,650여 평방미터가 넘는 큼지막한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해 어색함을 느꼈다고 했다. 60~70여 평방미터 규모의 집들이 옹기종기 만들어 낸 집합의 아름다움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 공간으로 남겨지기를 원했던 추사관 1층


그래서 결국 전시실은 지하로 밀어 놓고 지상의 공간은 비워 두기로 했다. 아래에서 추사의 세계를 읽은 탐방객이 위로 올라와 스스로 공간의 주인이 되어 자신을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추사체와 세한도라는 걸작을 만든 추사의 삶과 걸맞도록 건물도 벽과 지붕에 충실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설계했다.


추사관 동그란 창너머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추사관의 동쪽 벽에는 동그란 창이 하나 있다. 내부에서 보면 창 속에 소나무 한 그루가 들어 있는 광경이 연출되었는데, 탐방객 누구나 세한도를 연상하지만 정작 승효상 선생은 본인의 의도가 아니라 했다. 정원에는 잔디 대신 토종 억새를 가득 심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하와 지상 사이 경계의 창 너머 봄빛에 파릇이 빛나는 제주가 펼쳐졌다.
 

적거지에서 추사의 삶을 이야기하다

제주 추사관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운영시간: 화~일요일 09:00~18:00(월요일 휴무) 
전화: 064 710 6801
입장료: 무료



제주의 마지막 풍경을 담은
미스터밀크 그리고 백파


‘미스터밀크’는 승효상 건축가가 제주에 설계한 가장 최근 작품 중 한 곳이다. 미스터밀크는 제주 한림읍 성이시돌목장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이용해 치즈, 우유, 아이스크림 등의 유제품을 생산하는 유가공 공장이다. 


승효상 선생이 백파라 이름 붙인 미스터밀크 유가공 공장


승효상 건축가는 오래전 도민들의 민생을 위했던 성이시돌목장의 헌신을 높이 평가했고 그런 이유로 성이시돌목장의 협력업체이며 제주도가 지원하는 신설 제조업 투자기업인 미스터밀크 공장 설계를 기꺼이 수락했다. 


중산간에서 제주의 마지막 풍경을 담아낸 백파


미스터밀크는 금악오름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승효상 건축가는 건물의 이름을 ‘백파’라 칭했다. 하얀 언덕이란 뜻 때문인지 온통 화이트 컬러다. 한라산이 중산간을 타고 해안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백파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제주의 마지막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미스터 밀크의 내부 역시 온통 흰색이다

미스터밀크
주소: 제주 제주시 한림읍 한창로 1236 



땅의 소리에 귀 기울인
제주 롯데아트빌라스


승효상 건축가와는 ‘백파’에서 헤어졌다. 제주 롯데아트빌라스로 돌아오니 그간 무심히 보아 넘겼던 시설과 건축물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그리고 승효상 건축가의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아트빌라스의 객실


“모든 땅은 원하는 건축이 있습니다. 좋은 건축가라면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건축학적으로 제주의 지형은 한라산이란 정점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수직적 모델입니다.”


땅은 승효상 건축가에게 바람의 통로이자 생태의 통로, 그리고 막힘없는 시선의 통로를 바라지 않았을까? 제주 롯데아트빌라스의 명품 객실, 승효상을 서성이다 저녁으로 치닫는 제주의 하늘을 보았다.  


바다로 향하는 시선의 통로 아트빌라스

제주 롯데아트빌라스
주소: 제주 서귀포시 색달중앙로252번길 124  
전화: 064 731 9000  



글·사진 김민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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