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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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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Mar 29. 2023

쭈꾸미가 제철~
공복될 겨를 없는 '태안'의 봄날

수평과 바다 향기가 그리울 때면 문득 해변을 찾게 된다. 
특히 봄날이면 더욱 그렇다. 
동해와 남해는 다녀왔다. 
서해, 그렇지 우린 삼면이 바다라지. 
어딜 갈까. 
훈풍 불어오는 언덕에 꽃 피는 바닷가, 
충남 태안군을 떠올렸다. 

멀리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난 태안 웅도가 있다


수평선을 찾아


가는 거리도 그렇고 태안을 갈 때면 언제나 편안한 마음이다. 태안(泰安)은 클 태, 편안할 안을 쓴다. 이름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놓인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락하다는 국태민안(國泰民安)에서 나왔다. 세곡선과 무역선이 지나던 뱃길(조운로)이 있고, 이곳 물살이 빠르고 험해 지나는 배의 무사안녕을 바랐던 연유다.

금속과 유리, 시멘트로 쌓은 수직(垂直) 속에서만 살다 보니, 무언가의 방해도 받지 않는 평행이 절실하다. 우리에겐 수평선(水平線)이 있다. 광합성이나 비타민 등처럼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다. 그 지극한 수평이 태안 앞바다에는 있다.

서해 한가운데 위치한 태안은 반도 지형으로, 삼면이 바다와 접했다. 안면도를 품은 태안은 그 때문에 사연도 많다. 원래 한반도에서 폭 대비 길이가 가장 긴 반도였던 안면도는 1638년(인조 16년) 세곡을 나르기 위해 중간에 운하를 파는 바람에 섬이 됐다. 330여 년 후인 1970년대 다리(안면대교)를 놓아 다시 육지가 됐다.

안면도 덕분에 태안은 무척 긴 해안선을 지녔다. 무려 559.3km. 서울에서 부산 거리보다 길다. 도서 119개, 항·포구는 42곳이 있다. 꽃지와 만리포 등을 제외하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해수욕장만 해도 29개다. 전체가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묵묵히 바다를 지켜 온 태안은 독살(석방렴), 간장게장, 게국지, 자염(煮鹽) 등 다양한 바다 문화유산을 남겼다. 독살로 유명한 ‘별주부마을’엔 ‘토끼와 거북이’의 전설이 서렸다. 거북을 닮은 자라섬이 있고 그 아래에 용궁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독살이란 조수간만의 섭리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원시 조업 방식을 뜻한다. 돌을 주워다 작은 풀장 같은 독살을 만들어 두고 만조 때 물이 찼다가 간조에 빠지면 그 안에 갇힌 생선을 그냥 채집해 오면 된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독살로 잡은 다양한 생선도 맛볼 수 있다. 요즘 찾는 이들이 많다.



청자를 품은 주꾸미


태안엔 근사한 펜션과 호텔도 많다. 주말이면 많은 이가 태안반도에 모여든다. 가장 유명한 꽃지해변은 일 년 내내 펼쳐지는 이벤트인 해넘이 덕에 늘 인기다. 바다만 품은 것이 아니다. ‘금상첨화’라 했나. 꽃지해변에는 거대한 꽃밭이 있고, 천리포수목원, 청산수목원 등 근사한 식물원과 숲이 있어 요즘 같은 봄날이면 더욱 빛을 발한다.

천리포수목원에 시기에 따라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은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있어 더욱 그 색이 진하고 선명하다. 다양한 야생화와 수종을 모아놓은 청산수목원은 한결 여유롭다. 거닐기 좋은 수생식물원도 있다. 날이 좀더 더워지면 자라풀, 부레옥잠, 개구리밥, 물수세미, 생이가래 등이 수표에 한가득 피어오른다. 예연원(藝蓮園)에는 국내외에서 엄선해 수집한 연과 수련 200여 종이 있다.


안흥성에서 바라보는 보물 같은 바다가 바로 태안 앞바다다


태안 근흥면 정죽리에 위치한 안흥성에 오르면 태안 봄 바다가 보인다. 안흥성은 군사 요새였지만 지금은 바다 전망대로서 수백 년 세월 동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정죽리 안흥성은 조선 17대 효종 6년(1655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한 석성이다. 성곽 일부와 성문 네 개만이 남아 있는데 북문으로는 마을과 농지, 호국사찰 태국사 쪽에선 인근 관장목부터 먼바다까지 보인다. 천혜의 요새이자 관광 전망대다. 

안흥성이 면한 바다는 물살이 거칠기로 유명하다. 이곳 바다에서 유물이 쏟아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을 오가던 많은 무역선이 좌초했고 큰 불행은 훗날 해양유물로 남아 후손에게 전해졌다. 인근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선 해양유물을 만나 볼 수 있다. 고려청자를 실어 나르던 태안선과 마도 1~4호선 등 태안 앞바다에서 출토한 1,100년 전 고려시대 유물을 비롯해 조선시대 유물까지 전시돼 있다.


주꾸미 전골


태안 유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단연 주꾸미가 일등공신이다. 지난 2007년 한 어선이 잡아 올린 주꾸미는 청자를 단단히 끌어안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고려청자. 긴급 탐사에 들어가 발견한 것이 바로 태안선이다. 이후 마도 1~4호선까지 보물선이 줄줄이 발견됐다. 발굴과 탐사를 통해 태안 앞바다가 조운로였으며 무역로, 외교 항로였음을 알게 됐다. 출토 선박에선 청자모란 연꽃무늬 주전자, 청자모란 무늬 베개 등 진기한 문화재와 함께 볍씨, 청동제 숟가락, 빗, 국자 등 생활 유물까지 나와 당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타임캡슐’이 되었다.



공복될 겨를 없는 봄


풍요의 태안 앞바다에서 올린 다양한 바다 먹거리가 많다. 곧 제철을 맞는 꽃게는 물론 대하, 주꾸미, 간자미, 실치, 우럭, 해삼 등 가짓수도 많다. 태안에서 대하 정도의 새우는 그저 국물 내기용이었나 할 정도다.


간재미찜
간재미 회무침


밥도둑의 원조 격인 간장게장은 전국에서도 태안이 ‘패권’을 가졌다. 달콤짭조름한 간장에 재운 암꽃게 속에는 샛노란 알이 한가득 들었다. 밥을 비비면 세상이 제 것이다. 쪄도 맛있고 탕을 끓여도 좋다. 시원한 국물에 특유의 게 향이 서려 숟가락이 쉴 겨를이 없다. 어딜 가나 게장을 판다. 존득하니 차진 게살은 둘째 치더라도 달착지근한 간장만큼은 들이켜 마신 대도 후회가 없을 듯하다.


꽃게찜


전통 가정식인 게국지는 간장게장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남은 게장 국물에 묵은 김장김치나 푸성귀(채소) 등을 넣고 팔팔 끓여 먹는다. 짭조름하고 새콤한 맛이 침샘을 누른다. 태안 안면읍에 위치한 ‘솔밭가든’이 잘한다. 


우럭젓국


우럭젓국도 기막히다. 원래부터 대가리가 커서 탕거리로 이름난 우럭을 꾸덕꾸덕 말렸으니 그 진한 맛이 더해진다. 뽀얗게 우려 낸 국물에 칼칼한 청양고추를 채 썰어 살짝 넣고 떠먹으면 해장용으로 그만이다. 두부와 무를 넣어 한층 담백하고 시원하다. 태안읍에 위치한 만리포식당이 잘한다. 갖은 반찬도 내어 준다.

태안읍 하면 오래된 중국집도 빼놓을 수 없다. 반도식당. 이름은 그냥 백반집 같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들그닥달가닥 쉼 없는 웍 소리가 들리고 춘장 볶는 향기가 코를 찌른다. 옛날 풍미 간직한 짜장면과 볶음밥은 물론 매콤한 맛을 내는 짬뽕 국물도 참 맛깔난다. 발만 디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태안에 와서 소화기관만 따로 고생한다. 공복이 될 겨를 없는 풍요의 봄날이다.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인스타그램 playeatlab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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