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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의 기술] #5

인물사진 잘 찍는 법

by 트래비 매거진
여행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피사체를 꼽으라면 단연 ‘사람’이다.
자연이나 도시 풍경도 여행지의 특징을 보여 주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하지만 여행지의 얼굴이 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기란 생각보다 꽤 어렵다.

thumb-982933293_1478051783.61_640x426.jpg 촬영지ㅣ인도 바라나시, 카메라ㅣCanon EOS 5D, 초점거리35mm, 촬영모드 M(매뉴얼)모드, ISO 400, 조리개 F3.2, 셔터스피드 1/250초




어떻게 교감할 것인가?


인물사진은 촬영 전 사람 간의 교감이 필수다. 두 가지 물질이 섞였을 때 발생하는 화학작용처럼 셔터 누르기 전 촬영자가 피촬영자와 어떤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지가 좋은 인물사진 촬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위 사진은 인도 바라나시의 한 골목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을 촬영한 사진인데 셔터를 누르기 전 어떤 화학작용이 있었을까?


바라나시의 오래된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가 ‘꺄르르’ 아이들 웃는 소리를 들었다. 조그마한 학교였고 골목으로 난 창문을 통해 교실을 볼 수 있었다. 마침 수업 중은 아니었고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끌벅적 몸싸움 등을 하며 신나게 노는 중이었다. 한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어색하지만 밝게 ‘아빠 웃음’을 지으며 ‘나마스테’라고 손을 들어 인사했다.


잠시 떠드는 소리가 멈추고 수십 개의 눈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또 왁자지껄 웃으며 아이들 몇이 창가로 달려왔다.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들. 바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지! 수첩에 적어 둔 간단한 힌두어 메모가 생각났다. 주섬주섬 수첩을 열고 메모를 찾은 뒤 한 아이에게 “압캬 남 꺄 헤?”라고


이름을 물어봤다. 외국인 아저씨가 더듬거리며 한 인도 말이 웃겼던지 바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정작 질문받은 아이는 수줍게 웃기만 하고 뒤에서 ‘아비쉑’ ‘아제이’ ‘산쥬’ 등등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아이들. 그중 한 아이가 유창한 영어로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 왔다. 인도어로 이름을 물어봤던 게 머쓱해진 순간이었지만 ‘사우스 코리아’라고 답하고 다시 인도어로 “메라 남 김 해(내 이름은 김이야.)”라고 내 이름도 알려줬다. 자기들은 영어로 이야기하고 내가 인도어로 이야기한 게 어지간히 신기했던 아이들.


그렇게 2~3분을 넘게 노닥거리다 이윽고 카메라를 꺼내 아이들을 촬영했다. 다행히 골목 안이라 부드럽게 스며드는 빛이 좋았고,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찍을 수 있도록 35mm 단렌즈를 물렸다.


그렇게 아이들과 한바탕 논 뒤 바싹 들이대서 촬영한 이 사진. 단 한 번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은 뒤 바로 아이들에게 보여 줬음은 물론이다. 이 학교가 있는 골목은 이후 내가 바라나시를 갈 때마다 무조건 찾는 단골 장소가 되었다.






인상적인 인물사진을 원한다면


사람은 가장 어려운 촬영 대상이다. 잘 아는 사람을 잘 찍기도 힘든데 하물며 여행지에서 마주친 모르는 사람을 잘 찍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랴.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셔터를 누르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둬야 할 사항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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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id Shot
포즈 사진을 촬영한 뒤 캔디드를 시도하라


여행 중 인물사진을 찍을 때 모르는 사람을 몰래 찍어 본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찍히는 사람이 인지하지 못한 채 나온 인물사진을 ‘캔디드(Candid) 사진’이라고 한다. 번역하자면 솔직한, 꾸미지 않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연스럽긴 해도 허락을 받지 않고 찍었기에 마음이 불편하다. 여행지에서 캔디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먼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청을 하고 포즈 사진을 찍은 뒤 그 뒤에 캔디드 사진을 찍자. 포즈 사진을 찍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정도 교감을 가지면 그 사람은 촬영자를 의식하지 않게 되고 그 순간보다 더 자연스러운 인물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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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Lens
광각렌즈를 사용해 더 가까이 다가서라


‘인물사진은 망원렌즈’란 공식이 있다. 정말 그럴까? 스튜디오 사진이나 광고사진이라면 몰라도 여행 인물사진에서 망원렌즈는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망원렌즈는 ‘인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고’, ‘평면적으로 인물이 찍히며’, ‘자칫 배경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광각렌즈를 사용할 땐 최대한 인물 앞에 다가서자. 광각렌즈로 찍은 인물사진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촬영자가 너무 어중간한 거리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사진이 나오기 마련.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두 발짝 더 인물에 다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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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ing
초점은 눈에! 측거점을 옮기는 연습을 하자!


사람이 갖고 있는 수많은 장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다름 아닌 눈이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심지어 곤충조차 눈에 초점을 맞춰야 가장 그 존재가 돋보인다. 전신을 찍을 때도, 상반신을 찍을 때도,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도 공연히 고민하지 말고 초점은 눈에 맞추라! 그래서 풍경사진과 달리 인물사진 찍을 때 측거점(AF 포인트)을 자유자재로 순발력 있게 옮기는 연습이 중요하다. 측거점 버튼은 대부분 카메라들이 오른쪽 상단에 채용하고 있으니 측거점을 옮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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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ation
할레이션을 이용해 감성적인 표현하기


인물사진을 촬영할 때도 역광을 주목해 보자. 역광에서 촬영할 때 생기는 할레이션(Halation)이나 플레어(Flare)는 보다 인상적인 인물사진을 만들어 준다. 플레어의 경우 잘 쓰면 효과적이긴 하지만 사진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단점이 더 크다. 하지만 소위 ‘뽀사시 역광’, 즉 빛이 너무 과도해서 주피사체까지 잡아먹어 버리는 현상인 할레이션은 ①질감이 풍부한 아침이나 늦은 오후대의 빛을 활용하고 ②빛의 방향은 역광으로, 측광은 스폿으로 ③노출은 카메라가 지시하는 적정노출보다 조금 밝게 찍으면 된다. 보다 감성적인 인물사진을 찍고 싶다면 맑은 날 할레이션을 시도해 보자.






thumb-982933293_1478052700.61_640x1051.jpg 이탈리아 로마

여행에서 전통복장을 한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큰 행운이다. 급속하게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지구촌이기에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용기 내어 사진을 청하자. 로마를 찾았을 때 마침 옛 로마제국의 퍼레이드가 있었던 날, 장군 역할을 한 노인 한 분에게 정중하게 촬영을 청했다.



thumb-982933293_1478052731.09_640x1053.jpg 인도 바라나시

인도는 ‘인물사진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은 촬영에 기꺼이 응하고 또 흥미로운 피사체도 많다. 인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피사체는 전통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인도 여행을 간다면 가짜도 많긴 하지만 이렇게 사두(힌두교 수행자)를 마주쳤을 때 박시시(시주)를 아끼지 말고 사진을 찍도록 하자.



thumb-982933293_1478052749.11_640x446.jpg 미얀마 바간

풍경사진에서도 역광이 인상적이지만 인물사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함께 간 여행친구들의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는 순광이 좋지만 타인을 촬영할 때는 역광을 잘 활용해 보자. 미얀마 바간의 시장통에서 멋지게 잎담배를 피고 있는 할머니. 담배 연기가 더 부각되도록 역광 방향을 잡고 노출을 조금 어둡게 해 어둠 속에서 담배연기가 또렷이 빛나도록 했다.



thumb-982933293_1478052765.1_640x446.jpg 일본 효고현

여행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촬영자에 달렸다. 일본 효고현의 한 어촌 시골마을에서 담은 여중생 삼총사. 이 소녀들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얻기 위해 잘 안 되는 일본어와 표정을 써가며 웃기는 ‘오지상(아저씨)’이 되어야 했다. ‘얼음땡’처럼 딱딱하게 표정이 굳어 있던 소녀들도 그렇게 계속 웃기며 사진을 찍자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촬영자에 달렸다. 일본 효고현의 한 어촌 시골마을에서 담은 여중생 삼총사. 이 소녀들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얻기 위해 잘 안 되는 일본어와 표정을 써가며 웃기는 ‘오지상(아저씨)’이 되어야 했다. ‘얼음땡’처럼 딱딱하게 표정이 굳어 있던 소녀들도 그렇게 계속 웃기며 사진을 찍자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촬영자에 달렸다. 일본 효고현의 한 어촌 시골마을에서 담은 여중생 삼총사. 이 소녀들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얻기 위해 잘 안 되는 일본어와 표정을 써가며 웃기는 ‘오지상(아저씨)’이 되어야 했다. ‘얼음땡’처럼 딱딱하게 표정이 굳어 있던 소녀들도 그렇게 계속 웃기며 사진을 찍자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thumb-982933293_1478052779.11_640x444.jpg 한국 서울

할레이션 또한 여행에서 인상적인 인물사진을 담기에 좋은 기법이다. 할레이션은 맑은 날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 해가 지평선에 가까운 시간에 시도하면 좋다. 특히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데 효과가 크므로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과 아이들을 담을 때 할레이션 기법을 사용해 보자.



*여행사진가 김경우 | 10년간의 잡지 기자 생활을 마치고 틈만 나면 사진기 한 대 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 좋아 발 닿는 대로 다녔으나 늦둥이 아들이 태어난 뒤, 아이에게 보여 줄 오래된 가치가 남아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니고 있다.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아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소중한 것들이 아직 무한히 많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www.woosra.com



글•사진 김경우 작가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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