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진 잘 찍는 법
여행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피사체를 꼽으라면 단연 ‘사람’이다.
자연이나 도시 풍경도 여행지의 특징을 보여 주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하지만 여행지의 얼굴이 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기란 생각보다 꽤 어렵다.
어떻게 교감할 것인가?
인물사진은 촬영 전 사람 간의 교감이 필수다. 두 가지 물질이 섞였을 때 발생하는 화학작용처럼 셔터 누르기 전 촬영자가 피촬영자와 어떤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지가 좋은 인물사진 촬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위 사진은 인도 바라나시의 한 골목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을 촬영한 사진인데 셔터를 누르기 전 어떤 화학작용이 있었을까?
바라나시의 오래된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가 ‘꺄르르’ 아이들 웃는 소리를 들었다. 조그마한 학교였고 골목으로 난 창문을 통해 교실을 볼 수 있었다. 마침 수업 중은 아니었고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끌벅적 몸싸움 등을 하며 신나게 노는 중이었다. 한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어색하지만 밝게 ‘아빠 웃음’을 지으며 ‘나마스테’라고 손을 들어 인사했다.
잠시 떠드는 소리가 멈추고 수십 개의 눈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또 왁자지껄 웃으며 아이들 몇이 창가로 달려왔다.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들. 바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지! 수첩에 적어 둔 간단한 힌두어 메모가 생각났다. 주섬주섬 수첩을 열고 메모를 찾은 뒤 한 아이에게 “압캬 남 꺄 헤?”라고
이름을 물어봤다. 외국인 아저씨가 더듬거리며 한 인도 말이 웃겼던지 바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정작 질문받은 아이는 수줍게 웃기만 하고 뒤에서 ‘아비쉑’ ‘아제이’ ‘산쥬’ 등등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아이들. 그중 한 아이가 유창한 영어로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 왔다. 인도어로 이름을 물어봤던 게 머쓱해진 순간이었지만 ‘사우스 코리아’라고 답하고 다시 인도어로 “메라 남 김 해(내 이름은 김이야.)”라고 내 이름도 알려줬다. 자기들은 영어로 이야기하고 내가 인도어로 이야기한 게 어지간히 신기했던 아이들.
그렇게 2~3분을 넘게 노닥거리다 이윽고 카메라를 꺼내 아이들을 촬영했다. 다행히 골목 안이라 부드럽게 스며드는 빛이 좋았고,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찍을 수 있도록 35mm 단렌즈를 물렸다.
그렇게 아이들과 한바탕 논 뒤 바싹 들이대서 촬영한 이 사진. 단 한 번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은 뒤 바로 아이들에게 보여 줬음은 물론이다. 이 학교가 있는 골목은 이후 내가 바라나시를 갈 때마다 무조건 찾는 단골 장소가 되었다.
인상적인 인물사진을 원한다면
사람은 가장 어려운 촬영 대상이다. 잘 아는 사람을 잘 찍기도 힘든데 하물며 여행지에서 마주친 모르는 사람을 잘 찍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랴.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셔터를 누르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둬야 할 사항들도 있다.
Candid Shot
포즈 사진을 촬영한 뒤 캔디드를 시도하라
여행 중 인물사진을 찍을 때 모르는 사람을 몰래 찍어 본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찍히는 사람이 인지하지 못한 채 나온 인물사진을 ‘캔디드(Candid) 사진’이라고 한다. 번역하자면 솔직한, 꾸미지 않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연스럽긴 해도 허락을 받지 않고 찍었기에 마음이 불편하다. 여행지에서 캔디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먼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청을 하고 포즈 사진을 찍은 뒤 그 뒤에 캔디드 사진을 찍자. 포즈 사진을 찍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정도 교감을 가지면 그 사람은 촬영자를 의식하지 않게 되고 그 순간보다 더 자연스러운 인물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Wide Lens
광각렌즈를 사용해 더 가까이 다가서라
‘인물사진은 망원렌즈’란 공식이 있다. 정말 그럴까? 스튜디오 사진이나 광고사진이라면 몰라도 여행 인물사진에서 망원렌즈는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망원렌즈는 ‘인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고’, ‘평면적으로 인물이 찍히며’, ‘자칫 배경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광각렌즈를 사용할 땐 최대한 인물 앞에 다가서자. 광각렌즈로 찍은 인물사진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촬영자가 너무 어중간한 거리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사진이 나오기 마련.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두 발짝 더 인물에 다가가자.
Focusing
초점은 눈에! 측거점을 옮기는 연습을 하자!
사람이 갖고 있는 수많은 장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다름 아닌 눈이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동물, 심지어 곤충조차 눈에 초점을 맞춰야 가장 그 존재가 돋보인다. 전신을 찍을 때도, 상반신을 찍을 때도,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도 공연히 고민하지 말고 초점은 눈에 맞추라! 그래서 풍경사진과 달리 인물사진 찍을 때 측거점(AF 포인트)을 자유자재로 순발력 있게 옮기는 연습이 중요하다. 측거점 버튼은 대부분 카메라들이 오른쪽 상단에 채용하고 있으니 측거점을 옮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보도록 하자.
Halation
할레이션을 이용해 감성적인 표현하기
인물사진을 촬영할 때도 역광을 주목해 보자. 역광에서 촬영할 때 생기는 할레이션(Halation)이나 플레어(Flare)는 보다 인상적인 인물사진을 만들어 준다. 플레어의 경우 잘 쓰면 효과적이긴 하지만 사진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단점이 더 크다. 하지만 소위 ‘뽀사시 역광’, 즉 빛이 너무 과도해서 주피사체까지 잡아먹어 버리는 현상인 할레이션은 ①질감이 풍부한 아침이나 늦은 오후대의 빛을 활용하고 ②빛의 방향은 역광으로, 측광은 스폿으로 ③노출은 카메라가 지시하는 적정노출보다 조금 밝게 찍으면 된다. 보다 감성적인 인물사진을 찍고 싶다면 맑은 날 할레이션을 시도해 보자.
여행에서 전통복장을 한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큰 행운이다. 급속하게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지구촌이기에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용기 내어 사진을 청하자. 로마를 찾았을 때 마침 옛 로마제국의 퍼레이드가 있었던 날, 장군 역할을 한 노인 한 분에게 정중하게 촬영을 청했다.
인도는 ‘인물사진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은 촬영에 기꺼이 응하고 또 흥미로운 피사체도 많다. 인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피사체는 전통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인도 여행을 간다면 가짜도 많긴 하지만 이렇게 사두(힌두교 수행자)를 마주쳤을 때 박시시(시주)를 아끼지 말고 사진을 찍도록 하자.
풍경사진에서도 역광이 인상적이지만 인물사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함께 간 여행친구들의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는 순광이 좋지만 타인을 촬영할 때는 역광을 잘 활용해 보자. 미얀마 바간의 시장통에서 멋지게 잎담배를 피고 있는 할머니. 담배 연기가 더 부각되도록 역광 방향을 잡고 노출을 조금 어둡게 해 어둠 속에서 담배연기가 또렷이 빛나도록 했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촬영자에 달렸다. 일본 효고현의 한 어촌 시골마을에서 담은 여중생 삼총사. 이 소녀들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얻기 위해 잘 안 되는 일본어와 표정을 써가며 웃기는 ‘오지상(아저씨)’이 되어야 했다. ‘얼음땡’처럼 딱딱하게 표정이 굳어 있던 소녀들도 그렇게 계속 웃기며 사진을 찍자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촬영자에 달렸다. 일본 효고현의 한 어촌 시골마을에서 담은 여중생 삼총사. 이 소녀들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얻기 위해 잘 안 되는 일본어와 표정을 써가며 웃기는 ‘오지상(아저씨)’이 되어야 했다. ‘얼음땡’처럼 딱딱하게 표정이 굳어 있던 소녀들도 그렇게 계속 웃기며 사진을 찍자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촬영자에 달렸다. 일본 효고현의 한 어촌 시골마을에서 담은 여중생 삼총사. 이 소녀들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얻기 위해 잘 안 되는 일본어와 표정을 써가며 웃기는 ‘오지상(아저씨)’이 되어야 했다. ‘얼음땡’처럼 딱딱하게 표정이 굳어 있던 소녀들도 그렇게 계속 웃기며 사진을 찍자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할레이션 또한 여행에서 인상적인 인물사진을 담기에 좋은 기법이다. 할레이션은 맑은 날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 해가 지평선에 가까운 시간에 시도하면 좋다. 특히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데 효과가 크므로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과 아이들을 담을 때 할레이션 기법을 사용해 보자.
*여행사진가 김경우 | 10년간의 잡지 기자 생활을 마치고 틈만 나면 사진기 한 대 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 좋아 발 닿는 대로 다녔으나 늦둥이 아들이 태어난 뒤, 아이에게 보여 줄 오래된 가치가 남아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니고 있다.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아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소중한 것들이 아직 무한히 많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www.woosra.com
글•사진 김경우 작가 에디터 트래비